중년 게이 부부의 제주 한달살이

중년 게이 부부의 제주 한달살이 1

by 선우비

“만약 제주도에서 한 달을 살게 되면 뭐하고 싶어?”


오스씨는 음, 뜸을 들이다 단호한 어조로 선언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 대충대충 차려 먹고 산책, 하얀 백사장에 놓인 캠핑 의자에 앉아 책 읽기, 면 위주로 가볍게 점심 식사, 힙한 카페에서 시그니처 메뉴 맛보기, 5월이니까 유명 정원에서 꽃구경, 신명 나게 어트렉션 즐기기. 흑돼지, 갈치, 옥돔 등 제주제주한 재료로 저녁 식사, OTT에서 입 소문난 영화나 드라마 몰아보기로 하루 마무리.

그는 이 모든 것을 합쳐서 ‘아무것도 안 하기’라 말했다.


올해 들어 오스씨는 입만 열면 스트레스 타령이었다. 환갑이 지나 은퇴가 코 앞인데도 직장에서 처리할 일은 점점 늘어났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런 것까지 해줘야 해?”

동료들에 대한 험담도 늘었다.

작년 겨울 어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특히 힘들다, 피곤하다 노래를 불렀다.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었다.

마침 컴퓨터만 있으면 어디서든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우리는 요즘 유행인 한달살이를 해보기로 했다.


장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제주도였다.

요즘 시대에 낯선 곳에서 한 달을 지내려면 자동차는 필수다. 제주도는 섬이라는 특성상 자동차 보내기가 골치 아픈데, 제주행 화물선이 정박하는 우암부두가 집에서 이십 분 거리다. 부산 시민으로서 누리는 몇 안 되는 특권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런데, 뭐랄까.

오스씨가 하고 싶다는 일들은 사실 나의 일상과 별로 다르지 않다.

딱히 몰두하는 직업 없이 집안 살림하고, 책 읽고, 바다에 인접한 공원에서 노르딕워킹하고, 유튜브 시청으로 아이패드 배터리를 소비하는 삶, 오십을 통과하는 요즘의 나다.

예전에는 국내로 해외로 정신없이 쏘다니며 일상의 지루함을 잊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물갈이 안 한 꽃병이 된 기분으로 살아왔다. 뭐라도 해서 고여있는 것들을 다 쏟아내고 싶었다.

그런데도,

“그럼 이번에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볼까?”

호응해주었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나 먹여 살린다고 새벽까지 일해온 그는 양보를 받을 자격이 충분했다.

그렇게 ‘제주에서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기’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일단 살 집부터 골랐다.

요즘 제주 한달살이가 그야말로 대유행이어서 숙소는 넘쳐났다.

하지만 우리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중년 남자 둘만 살 거라고 하면,

“낚시도 안 하시고? 아, 그러시구나.”

단밖에 끄덕이는 사람이 없다. 잘못 들었나 되묻거나, 심하면 사연을 캐내려는 시도와 부딪친다. 아파트로 이사하고 반상회에 나갔다가 집중포화를 맞은 이후로 이웃사촌 없이 십수 년을 살아왔다.

삐딱한 호기심을 근본적으로 차단해줄 단독주택이어야 했다.

내부는 흰색 페인트와 원목이 잘 어우러진 벽에 천으로 된 포스터나 마크라메 장식이 걸려 있어 어딘가 인스타스러운...

아, 맞다! 위치는 조용하게 책 읽기 좋은 카페들이 많은 해수욕장 근처가 좋겠다. 아침에는 시원한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고 저녁에는 노을을 보며 칵테일을 한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거기다 대고, 오스씨가 생활밀착형 조건 하나를 더했다.


“바람 잘 통하는 마당 반드시 추가! 생선 맘껏 구워 먹게.”


오스씨는 평생 부엌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살아왔다.

어쩔 수 없이 혼자 먹어야 하면 사 먹거나, 즉석식품을 데우는 정도다.

이런 사람들은 보통 아무거나 다 잘 먹는데, 그는 쉽지 않은 식성을 가졌다.

그는 한국식 반찬 문화 자체를 거부하는데, 특히 김치는 젓가락만 닿아도 경기를 일으킨다.

냉장고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온 음식도 먹지 않는다. 매 끼니 찌개건, 탕이건, 볶음이건, 구이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반면 나는 오첩반상은 기본으로 깔려야 숟가락을 드는 한식 애호가다. 반찬을 한꺼번에 쫙 만들어뒀다가 보관 용기 채 꺼내먹는다.

따로 살 땐 이런 차이를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살림을 합치고 내가 식사를 담당하면서부터 어찌나 많이 싸웠던지. 초반에 식성을 길들이지 않으면 평생 고생한다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지만, 결과는 나의 패배였다. 열두 살이나 많은 남자의 굳어진 식습관을 무슨 수로 바꿀 수 있겠는가.

물론 좋은 점도 있다.

생선을 좋아해서 여러 마리를 한꺼번에 조려두면 여러 끼를 그것만 먹어도 불만을 표하지 않는다.


이처럼 편한 면도 있어서 그간 타협하며 살아왔는데, 몇 해 전 기습적으로 나를 찾아온 우울증 때문에 우리의 식생활은 큰 위기를 맞았다.

갑자기 생선(미끄덩거리는 해산물 포함)을 싫어하는 몸으로 바뀐 것이다. 마치 임산부처럼 몸에서 거부반응이 나타날 정도였다. 날생선을 만지며 손질하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어찌어찌 노력해서 조리를 한다해도 냄새가 또 문제였다. 아무리 후드 팬을 돌리고, 향초를 태워도 코끝에 붙은 비린내가 사라지지 않았다. 생선을 굽다가 엉엉 우는 일이 잦아졌다. 값비싼 ‘생선전용 그릴’ 찬스를 써봤지만, 기름에 지져지지 않아서인지 맛이 밍밍, 텁텁하다는 불평이 따라왔다.


“주택에 살면 탁 트인 마당에서 냄새 걱정 없이 실컷 구워 줄 텐데, 아파트 사는 죄지 뭐.”


생선 요리를 멀리할 참 요긴한 핑계였는데, 진짜로 주택에 살 기회가 와버릴 줄이야.


“거기서는 생선 매일 구워 먹을 수 있는 거지?”


거부할 수 없는 주문이었다.


그런데 중년 게이 둘이 매일같이 마당에서 생선을 구우며 까르르거려도 관심을 끌지 않을 만큼 사생활 보호가 가능한 집, 한달살이의 천국 제주라면 차고 넘칠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또 조건이 얼추 맞겠다 싶으면 말도 못 하게 비쌌다. 있는 힘껏 무리하면 가능했지만, 그 돈이면 차라리 생선구이를 파는 식당 옆에 숙소를 구해 매일 사 먹는 게 나았다.

계획한 돈을 집에 몰빵하느냐, 여유 있게 노는 데 쓰느냐. 고민은 길었고, 인터넷 서치에도 완전히 지쳐버렸을 즈음 마침내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아냈다.


꽃이 가득한 잔디밭과 멋진 열대 나무들로 둘러싸인 단독주택이었다. 널따란 비가림 발코니에는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이 있고, 생선 기름이 사방으로 튀어도 끄떡없을 적당히 낡고 커다란 나무 테이블도 있었다.

다만 해변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제주 동부 다랑쉬오름 근처로, 아침 먹고 해변을 우아하게 산책 어쩌고는 포기해야 했다. 가장 가까운 편의점도 6분은 운전해 가야 했다. 내부도 인스타와는 거리가 먼, 필요한 물품 외엔 아무런 장식이 없는 전형적인 K-펜션 인테리어였다.

그렇지만 정원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음악을 크게 틀고 춤을 춰도 뭐라 할 사람 없는 완벽한 독립구조, 거실은 족구를 해도 될 정도로 넓었으며, 무엇보다 우리가 각오한 집값의 딱 절반이었다.


“두 사람이시라고요? 원래 6인 기준이라 그 가격인데, 두 분이 쓰신다니 십만 원은 더 빼 드릴게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계약금을 보내버렸다.

덕분에 우리의 제주 생활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져 버렸다.


202205제주 (91).jpg 원래 우리가 꿈꾸었던 집의 이상형, 사진은 세화의 한 카페.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