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 게이 부부의 제주 한달살이 4
어떤 게이든 자신만의 디바 한 명쯤 품고 산다는 말이 있다.
나에겐 이효리다. <효리네 민박>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렸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효리처럼”은 다시금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녀는, 스몰웨딩, 유기견 돌보기, 가죽 제품 사용금지, 요가, 명상, 비건 등 생각만 해도 골치 아픈 일들을 현대인들이 추구해야 할 힙한 무언가로 바꿔버렸다.
나도 힙스터가 되고 싶었지만, 50대 게이 꼰대, 자존감 낮은 몸매, 코스트코 중독자, 개를 살짝 무서워하는 고양이 집사.
사실상 이번 생은 글렀다고 봐야지.
그래도 기왕 제주도에 왔는데, ‘효리처럼’의 맛은 살짝 보고 싶었다.
“우리도 명상이나 해볼까?”
제주살이 5일 차 되는 날, 성산 근처 요가센터에서 진행하는 <초보자를 위한 명상수업>에 참여했다.
명상이라면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눈 감는 것’ 정도의 지식밖에 없어서 제주에 있는 다양한 명상센터들의 차이는 알 수 없었다. 순전히 홈페이지에서 본, 화산석과 화초로 꾸민 제주식 정원을 통창으로 감상할 수 있는 명상실 이미지에 반해서 그곳을 골랐다. 수업을 마칠 때쯤이면 그 창으로 노을이 스며든다고 했다.
혹시 사이비 종교가 운영하는 업체 아니냐며 걱정하는 오스씨에게 “요즘이 어떤 시대인데, 촌스럽게!” 놀렸지만 솔직히 살짝 걱정됐다. 우리 세대에게 명상은 뉴에이지 종교와 동일어였다. 뉴에이지 종교는 광신도들의 집단자살을 연상케 했다. 참석자들의 극찬으로 빼곡한 네이버 평점만이 유일한 믿음의 지표였다.
맑다는 표현이 적절한 느낌의 젊은 여성이 들어와 긴장한 참석자들을 다독이며 수업을 시작했다.
명상 안내자의 말에 따라 호흡하고 잡생각을 밀어내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무리 머릿속을 비우려고 해도, 걱정거리, 내일 할 일, 한참 전에 친구랑 싸운 일 등 서로 관련 없는 생각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지금 우리 머릿속에 생각이라는 필름을 틀어주는 영사기사가 있어요. 그런데 그게 원숭이인 거예요. 아무거나 마구 영사기에 집어넣고 있는 거죠.”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생각의 선후(先後)도, 연관성도 전혀 없었다.
내 머릿속의 원숭이, 일 열심히 하네.
점차 마음이 평온해지면서 생각들을 하나씩 지워갔다. 더불어 귀를 간질이는 싱잉볼 소리와 코끝을 맴도는 수선화 향냄새 덕분에, 언젠가 태국 여행에서 경험했던 고급 스파에 온 듯 몸이 나른해졌다.
어쩌면 그때 난 아주 잠시나마 이효리가 되었던 것 같기도 하다.
오스씨는 아무리 호흡에 집중해도 잡생각만 더 나더라며 ‘그저 그랬다’라는 총평이었다.
“<효리민박>에서 이효리가 일어나자마자 향 피우고 차 마시는 거 자기도 봤지? 그러고 나서 명상하면 더 잘 될지도 몰라.”
염불보다 잿밥이 나의 좌우명이다.
명상실 앞에 자리한 명상물품 판매소에서 수선화향 인센스와 명인이 구증구포했다는 흑차를 잽싸게 집어 들었다.
“또 시작이다, 또 시작!”
오스씨는 마지못해 카드를 꺼내며 투덜거렸다.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고가의 요가 방석까지 집어 드는 나를 한참 노려보더니,
“저것도 같이요.”
사줘, 사줘 하며 어린 판매원들 앞에서 징징거릴 내가 창피해서가 아니라, 오랫동안 요가 다리 자세를 유지하기 버거운 내 무릎을 걱정해 준 거라고 믿는다.
그렇게 마음은 비우고 양손은 꽉 채운 생애 첫 명상이 매우 만족스럽게 끝이 났다.
명상이 일상으로 들어오자 제주에서의 삶이 어느 정도 체계를 갖추었다.
아침 해가 뜰 때쯤 일어나면 일단 명상과 스트레칭, 오전엔 오름 오르고 오후엔 책방 산책, 생선 구워서 저녁 먹고, 책 읽다가 10시쯤 잠든다.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기, 야외활동과 사색이 적절하게 어우러진, EBS <명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의사들이 추천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의도치 않게 완성됐다.
오기 전만 해도 밤 11시에 업데이트되는 포털사이트 웹툰 챙겨보느라 자정이 넘어 벌게진 눈으로 잠드는 게 일상이었다.
어느새 명상은 내가 가장 기대하는 시간이 되었다. 유튜브로 명상 음악을 찾아 틀어놓고, 향을 피우고, 차를 마시고, 명상 의자에 앉아 눈을 감으면 소란스럽던 머릿속 잡음들이 점차 잦아들었다. 잡념이 고개를 빼꼼 내밀 때마다 머릿속으로 “사루, 사루”라고 중얼거렸다.
그날 샀던 명상입문 책에 따르면, 누구나 특별히 집착하는 생각 또는 걱정거리가 있다. 명상할 때마다 이것들은 “단골손님”처럼 찾아온다. 이 손님들을 통칭할 이름을 지어두면 떨쳐내기가 한결 쉬워진단다.
난 명상 안내자가 말했던 원숭이 영사기사를 떠올리며, 사루라고 이름 지었다. 사루는 원숭이의 일본어로 어딘가 귀여운 느낌이다. 사루사루~ 속삭이며, 바나나를 훔치는 원숭이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무거운 걱정들이 어느새 사라졌다. 신기한 경험이었다.
사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에게는 힘든 일이 많았다.
오스씨의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고, 아웃들과 마찰이 끊이질 않았다. 아파트 같은 동에 사는 조현병 환자가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현관에다 달걀, 우유 같은 치우기 귀찮은 물건들을 던져대질 않나, 천정에서 물이 새서 윗집과 긴장 관계에 놓이질 않나. 온통 부정적인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날 새가 없었다.
심지어 누수를 잡았다고 생각해 천장 도배공사를 마쳤는데, 제주도로 출발하기 한 달 전에 다시 누수가 시작됐다.
그런 일이 벌어질 때마다 정신과를 찾았고, 끊었던 우울증약을 다시 먹었다.
명상이 단순히 이효리 따라하기만은 아닌 셈이다.
한편, 오스씨는 저녁 식사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우리는 생선구이를 위해 횟집 등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비닐식탁보를 잔뜩 준비해 갔다. 베란다 나무 테이블이 꽉 차게 두 장 깔고, 휴대용 버너와 프라이팬을 세팅한다. 기름은 평소보다 더 넉넉하게 두른다. 팬이 달궈지면 생선을 투하하고 후다닥 도망간다. 부드러운 ‘치이익’이 아니다. 연금술로 연성이라도 하듯 ‘파지지직’ 소리와 함께 기름이 공중으로 흩날린다.
안전거리에서 생선살이 기름에 먹히는 과정을 차분하게 지켜보다 소음이 좀 잦아들었다 싶으면 재빨리 뒤집개로 파바바박. 다행히 뭉개지지 않고 멋스럽게 뒤집히면 안도의 한숨을 쉬며 남은 과정을 즐긴다.
기름은 정확히 비닐 위로만 흔적을 남겼다. 여행 전 시뮬레이션이 완벽하게 구현된 유일한 경우다.
집에서는 도전조차 금기시된 냉동만두도 튀기고, 불고기도 불맛이 나도록 세게 볶을 수 있었다. 치울 때는 비닐 두 장만 빼서 버리면 땡. 적어도 식사에 관해서는 최고의 숙소였다.
오스씨의 입은 마냥 행복했다.
신령스러운 신선이 산다는 의미의 영주산에 오르기 전까지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