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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un 24. 2024

2024 도쿄 레인보우 프라이드

도쿄를 퀴어하게 여행하는 법 5

퍼레이드의 날이 밝았다. 말 그대로 밝았다. 전날부터 비가 올 거라는 예보가 있어서 제발, 기도했는데 응답을 받았다. 구름이 많았지만 오히려 전날처럼 덥지 않아 아스팔트 위를 걷기에는 좋은 날씨였다. 오늘 조식은 우리가 예전에 한번 묵었던 도큐스테이신주쿠점에서 운영하는 뷔페레스토랑에서 먹었다. 근처이고, 호텔 투숙객이 아니어도 먹을 수 있고, 무엇보다 웬일인지 가격도 쌌다. 전체적인 구성은 괜찮았지만 음식의 퀄리티가 편의점 수준이었다. 예전엔 이렇게 맛없지 않았던 것 같은데... 요즘 일본 호텔업계가 관광객은 미어터지는데, 그들을 접대할 '퀄리티 있는 장인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일본 여행 시 호텔조식을 신청하실 분은 가급적 가장 최신 버전의 후기를 검색하고 가시라.

식사를 하고 호텔에 돌아와 남은 시간에 호텔로비에서 여행기를 정리했다. 생각보다 집중이 잘돼서 글이 술술 써졌다. 보통 호텔에 오면 자고, 먹고, 씻는 거 말고는 이용하는 시설이 없는데, 이제 테이블이 있는 호텔로비나 비즈니스센터도 이용하는 프로 여행객이 되었다.

퍼레이드 행렬은 요요기 공원에서 출발해, 시부야->하라주쿠를 거쳐 다시 공원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다. 일본에서 사람 제일 많은 곳을 관통하는 코스라니, 멋있고, 부럽고, 상상만으로도 짜릿했다. 전날 퍼레이드 행렬에는 들어가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파르코백화점 앞에서 구경하기로 했다.

"행진하는 사람들을 향해 손을 흔들어주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야. 본래 퍼레이드란 인도에 늘어선 열정적인 구경꾼들이 있어야 완성되는 거니까."

"암만!"

파르코 백화점은 이미 퀴어들을 환영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서구권 퀴어퍼레이드에서만 볼 수 있는 대형 간판들의 무지개 채색을 일본에서도 볼 줄이야, 일본이 이렇게까지 나아갔구나, 새삼 놀라웠다. 어제의 지나친 상업화 어쩌고의 감상은 역시 꼰대의 푸념이었다.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지는 걸.

뭐라도 좋으니 축제의 날, 하루만이라도 온 세상이 무지개빛으로 빛났으면 좋겠다.

행렬 시작은 12시. 우리는 한 시간 전에 도착해서 시간도 때울 겸, 기특한 백화점 물건도 팔아줄 겸 파르코 내부의 매장을 구경했다. 가볍게 훑어볼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아웃도어 편집매장에서 마음에 쏙 드는 아웃도어 조끼를 발견하고는 잔뜩 흥분해 버렸다. 오스씨도 하라주쿠 쏘다니는 애들이나 입을 법한 멜빵바지를 몸에 대보고 눈을 반짝였다. 아, 쫌! 그의 손을 끌고 옆집으로 갔는데, 난데없이 나카메구로에서 패스했던 <비즈빔> 매장이 나타났다. 작은 매장에, 고급 미술관 마냥 적은 수의 작품을 진열해 두었다. 가격표를 보고 헉, 숨을 들이켰지만 이내 안심했다. 그 돈이 있었어도 사서 입지 않았을 디자인들.

"아, 다행이다. 우리가 아방가르드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게 우리는 RM의 예술세계에 공감하지 못한 채, 옆 가게에서 양말 한 짝을 사서는 백화점 밖으로 나왔다.

5분 정도 지체했을 뿐인데, 이미 행렬은 공원을 빠져나와 백화점 앞을 지나가고 있어서 선두를 보지 못했다. 정말 칼 같이 시간을 지키는 일본인들. 한쪽 차로를 이용해 행렬이 지나가고 맞은편 차로는 교통경찰의 통제하에 차들이 지나다녔다. 인도엔 이미 우리처럼 "열혈 응원 모드"를 장착한 사람들이 도로를 즐기는 사람들에게 열정적으로 손을 흔들며 "Happy, Pride!"를 외치고 있었다. 우리도 재빨리 그들 옆에 서서 크게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최근 아시아에서 연이어 승전보를 날리고 있는 결혼 평등권 운동(동성결혼 법제화)인 "모두의 결혼" 행렬이 지나갔다. 한국에도 같은 이름의 운동이 조직되어 작년부터 아주 활발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 그다음으로 유럽연합과 미국, 뉴질랜드, 호주, 대만 등 여러 나라의 성소수자들이 저마다 자기 나라의 특색을 드러내는 상징물을 들고 지나갔다. 참가자들이 꽤 많아서, 메트로폴리탄 도쿄의 위상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참가자들의 다양성은 외국인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 무지개 상징물 아래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사람들의 조합이 지나갔다. 한 손을 흔들며 다른 손으로 능숙하게 휠체어를 밀고 지나가는 장애인, 성소수자 가족 깃발을 든 할아버지와 할머니, 유모차에 아이를 싣고 지나가는 젊은 남녀, 유모차에 개를 싣고 손을 흔드는 남자 둘, 요란하게 입은 사람들, 점잖게 입은 사람들, 얼굴을 몽땅 가린 사람, 화려한 페이스페인팅을 한 사람, 하라주쿠 스타일, 전통의상 스타일, 코스프레의 나라답게 다양한 캐릭터로 분한 사람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모두가 질서 정연하게 라인을 지키며 걷고, 경찰의 수신호를 잘 따랐지만, 그들의 모습은 자유와 해방감으로 팡팡 터지고 있었다.

인터넷에서 혐오를 퍼트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성소수자들이 음침하고, 문란하고, 마이너 한 기운을 퍼트린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퀴어퍼레이드를 옆에서 지켜만 봐도 그것이 새빨간 거짓말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광장에 모여 행진하는 군중들은 상상해 보라. 대체로 한 가지 이슈에 대해 모두가 똑같은 소리를 내며 목청을 높인다. 그 이슈에 관심이 있건 없건 때로는 그들의 일산분란한 모습 자체가 징그럽게 보일 때가 있다. 그들이 목이 쉬어라 주장하는 모습도 무섭게 보일 때가 있다. 한국에서 퀴어 퍼레이드만 열리면 그에 대응한답시고 집회를 여는 보수기독교 단체들의 모습이 딱 그렇다. 그들이 사용하는 극단적인 단어들(멸망, 지옥, 불벼락, 남자 며느리, 항문섹스)은 그들이 그렇게 지킨다고 떠들어대는 "우리의 아이들"이 들을까봐 겁이 날 정도로 끔찍하다. 마이크를 들고 귀청 찢어지도록 큰 소리로, 잠시도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소위 반동성애 목사들을 행동을 보면, 그가 아름다운 김소월의 시구를 낭독하는 중이라고 해도 소름 끼친다. 하물며 성경을, 타인을 저주하는 목적으로 이용하다니.

인류가 "신"과 "믿음"을 이용해서 벌인 광기와 배제의 역사를 누군가에게 가르치고 싶으면, 그들의 집회에 데려가면 된다. 아주 생생하다.

반대로 자기 자신의 모습 그대로 자유롭게 살아가길 원하는 퀴어들은 군중 행진을 벌일 때도 한 목소리로 처절하게 울부짖지 않는다. 왜냐면 우리는 각기 다른 존재이고, 함께 있어서 행복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할 만큼 스스로에게 자긍심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저 웃고, 춤을 추고, 손을 흔들고, 함박웃음을 서로 나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고 싶은 세상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행렬은 그들을 이끄는 차량의 뒤를 따라가는 형태인데, 독특하고 흥미롭게 꾸며진 차량마다 장르가 다른 흥겨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차량 앞에는 행렬의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가 커다랗게 적혀있었고, 20번째 차량이 지나갈 때 시계를 보니 두 시간이 지나있었다. 너무 신나게 손을 흔들어대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아이고! 어쩐지 허리가 아프더라니."

"배 고프다.."

도쿄 프라이드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준비된 차량은 60개였다! 두 시간이 지났는데, 이제 겨우 3분지 1이 지나갔다.

"안 되겠다. 일단 밥부터 먹고 오자."

밥을 먹고 나와도 행렬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계속 손을 흔들고 해피 프라이드를 외쳤지만, 배가 부르니 슬슬 졸리기 시작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스씨에게 고갯짓으로 전철역 방향을 가리켰다. 마돈나의 흥겨운 노래 <보그>를 배경으로 우리도 어깨를 으쓱으쓱하며 골목으로 골목으로 프라이드 행렬을 이어나갔다.


<퀴퍼 단상>


1. 퍼레이드 차량들은 단체의 이름을 걸기도 하고, 후원하는 기업의 이름을 걸기도 한다. 기업의 경우엔 차량 뒤를 따라오는 사람들에게 기업 로고가 크게 박힌 티셔츠를 나눠주었는지 모두 같은 옷을 입고 있어서 마치 해당 기업 사원들의 행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행진에 참여하는 연령대에 남녀노소가 다 포진해 있어서 더 기업행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설마 아니겠지.


2. 고령화가 일찍부터 시작된 나라답게 퍼레이드 행렬에도 정말 노인이 많았다. 초등학생 나이 대의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부부도 많았다. 너무 멋진 그림이다. 한국은 어떨까? 퀴퍼에 남녀노소가 다 참여하고 있을까? 궁금해졌다.


3. 2007년 이후로 한 번도 서울퀴퍼에 가지 않았다. 부산퀴퍼도 오래전 딱 한번 참여했었다.(그 후 기독교세력과 해운대구청의 극렬 방해 행동으로 부산 퀴퍼는 없어졌다)

오스씨는 한 번도 퀴퍼행렬에 참여해 본 적이 없었다. 내가 그동안 퀴퍼를 패스해 온 핑계를 대자면 아마 그게 이유였을 것이다. 명색이 게이 부부인데, 오스씨는 밖에 있고, 나 혼자만 행진하는 그림이 탐탁지 않아서였다.

"올해는 서울 퀴퍼 가자! 가서 행렬 안에서 같이 걷자"

오스씨… 깜짝 놀라는 얼굴에, 곤란한 표정이 떠오를까?

그럴 리가! 작년부터 오스씨의 게이 프라이드 곡선은 연일 상종가를 치는 중이다. 지난겨울에는 부산 서면 번화가에서 동성결혼 법제화 서명운동까지 한 양반이다. 환갑을 넘고 나니 사람이 아주 대담해졌다. 어른으로서 해야 할 일을 찾아가는 그가 자랑스럽다.

"가자!"

흥분한 오스씨가 맞장구를 친다.

도쿄에서 얻은 이 에네르기를 한 달 후 한국에서 다 발산하겠다고 결심하며 주먹을 불꾼!


4. 어젯밤의 전야제 파티, 그리고 오늘의 애프터파티는 모두 참석하지 않기로 했다. 전날은 비가 와서 가기가 꺼려졌고, 오늘은 "아마도 몸이 너무나 힘들 것"이라는 예측에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았었는데, 진짜 딱 예측이 맞아떨어졌다. 우리도 나이 들어서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다. 밤에 놀려면 무조건 낮잠을 자 둬야 한다. 그것이 세월, 그것이 인생이다.

푹 자고 생생한 몸으로 신주쿠 니초메 게이거리를 활보한 퀴어한 도쿄 여행기가 계속해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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