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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우비 Jun 25. 2024

한국인이 운영하는 도쿄 게이바들

도쿄를 퀴어하게 여행하는 법 6

서울의 게이바들이 종로와 이태원으로 나뉘어 있듯이, 도쿄의 게이바는 신주쿠와 우에노/아사쿠사로 나뉘어 있다. 우에노/아사쿠사는 중년게이, 신주쿠는 젊은 게이. 구분도 확실해서 본인이 중년 게이이고, 또래를 원한다면 그 동네에 숙소를 잡고 게이바를 탐방하는 게 여러모로 편리하다. 신주쿠와 우에노는 야마노테선으로 30분 거리지만, 전철역에서 게이바까지 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하루에 두 군데를 가는 건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중년의 나이이고, 나 역시 중년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서울에 가면 종로, 도쿄에 가면 우에노에 가야 마땅하지만, 우리의 도쿄 여행은 언제나 "옷쇼핑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숙소는 무조건 신주쿠였다.


첫날, 금요일은 쇼핑 후 호텔에 돌아왔을 때 이미 상당히 늦은 시간이었다. 여행 첫날 특유의 피곤함까지 겹쳐 나가지 않고 그냥 잠을 자고 싶었다. 빗방울까지 심심찮게 떨어지는 상황. 하지만 오랜만에 도쿄에 온 오스씨는 아직 엔진이 꺼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의 재촉으로 거리에 나섰다.

신주쿠 니초메의 거리는, 처음 방문하는 한국 게이라면 깜짝 놀랄 정도로 개방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성인용품과 비디오를 파는 가게들이 길가에서 버젓이 영업 중이고, 1층에 있는 게이바들 역시 문을 열어두고 술과 음식을 판다. 무지개 깃발로 가게를 장식해서 헷갈릴 일도 없다. 수 백개의 게이바가 뭉쳐 영업을 하는 동네라서 이 정도의 개방성을 얻어낼 수 있었을 것이다.

거리의 분위기는 마치 이태원과 종로가 혼재되어 있는 듯하다. 술 한 병 들고 길가에서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게이들이 많은데 이는 이태원스러운 모습이다. 이용자들은 대체로 서양인(과 그들을 좋아하는 동양인)으로, 그들이 즐겨 찾는 가게 역시 일본어보다 영어가 흔하게 통용된다. 나름 흥미롭지만 우리의 관심을 끌진 못한다.

진짜 일본 게이바는 니초메 거리 건물 1층에 없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 지하나 2층, 3층으로 가거나, 골목으로 들어가야 일본 게이바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

오랜만에 찾은 니초메 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프라이드 축제 기간이어서인지, 아니면 관광객들이 많아서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거리를 서너 번은 왔었지만 이렇게 사람 많은 건 처음 보았다. 마지막 날 간 게이바 사장 말에 따르면, 거의 역사적일 만큼 사람이 많은 주말이었다고 한다. 초엔저가 만든 역대급 관광객 숫자와 프라이드가 겹쳐서 만든 현상이겠지.

일본 게이바는 아주 작아서, 주로 바 형태로 되어있다. 기껏해야 열 명 남짓 수용할 수 있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꽤 비싼 1인당 테이블 차지를 내야 하는 것도 다른 나라에선 볼 수 없는 독특한 방식이다. 그래서 한번 들어가면 좀체 일어나지 않고 오랫동안 가게에 머물게 된다. 가게에 들어가서 물 좀 보다가 아니다 싶으면 바로 다른 가게로 가는 식으로 즐겼다가는 테이블 차지로만 엄청난 돈을 쓸 수 있다. 물론 앞서 말한 거리에 인접한 서양인 위주의 가게는 테이블 차지가 없다. 다들 가게 밖으로 나와 서서 마시니까.

"오늘은 그냥 거리만 싸돌아다니자."

몸이 피곤하니 게이바에 들어가 오래 앉아있기가 싫었다. 예전에 갔던 게이바가 아직도 있나 살펴보면서 거리 탐방을 시작했다.

한 삼십 분 정도 돌아다녔더니 다리도 아프고, 가랑비도 내리고 해서, 밖으로 테이블을 내놓고 장사하는 바에 들어갔다. 오스씨는 하이볼을, 나는 위 사진 속 파르페를 시켜서 먹었다. 용케 바깥을 내다볼 수 있는 테이블을 잡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할 수 있었는데, 정말 다양한 게이들이 지나다녔다. 서양인들은 대체로 청바지에 티셔츠 같은 평범한 옷차림, 일본인들은 머리 모양에서 이미 구분이 가능했고, 한국말 쓰는 애들은 평범한 듯 하지만 깔끔한 스타일이었다. 조합이 조금 낯선 명품을 걸치고 있으면 대부분 중국어 사용자였다. 한, 중, 일이 쉽게 구분이 되니 재미있었다. 우리가 넥스에서 봤던 "G-Man 스타일"의 덩치 좋은 남자들도 우르르 몰려다니면 존재감을 뽐냈다. 화장에 잔뜩 힘을 주고 여장을 한 사람들(드랙퀸이라고 하기도, 트랜스젠더라고 하기도, 여장남자라고 하기도, 크로스드레서라 하기도 힘들어서 그냥 일본말로 "오까마"라고 하는 게 딱 적당한)까지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하는 모습은, 퀴어 해방구로써 신주쿠 니초메의 모습을 상징하는 풍경이다.

첫째 날이 간단한 거리 스케치였다면, 둘째 날 토요일은 본격적으로 게이바를 탐방했다.

사실 이날도 엉덩이 떼기가 쉽지 않았다. 저녁으로 채소 요리 전문점에 갔는데, 먹은 채소들이 위장에서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었다. 완전 배 뽈록이 상태여서 게이바에 갈 수 있나 싶었는데, 역시 오스씨는 들썩들썩 상태. 빨리 나가자고 재촉이었다.

오스씨는 일본의 "스나쿠 문화"를 엄청나게 좋아한다. 한국의 게이바가 넓은 공간에 꽉꽉 들어찬 게이들을 구경하는 맛으로 간다면, 일본은 작은 바에서 술 한잔 시켜놓고 사장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재미로 간다. 워낙 작은 가게라 손님도 몇 없고, 한 손님이 사장을 독점할 수도 없으니 결국 손님들끼리 안면 트고, 인사하고, 대화를 나누게 되는 구조다. 그것이 스나쿠 문화.

"조금 더 있다가 소화되면 나가자."

질질 끌어봤지만, 사실 좁은 방엔 침대 밖에 없어서 누워있어 봐야 배가 꺼질 리 없었다. 숙소의 방음 상태도 안이나 밖이나 매일반이어서, 엄청난 데시벨의 함성과 웃음소리가 창문을 넘어 쉬지 않고 들려왔다.

우리 호텔 바로 뒤편에 <걸즈걸즈걸즈>라는 작은 레즈바가 있었는데, 니초메 거리에 레즈바가 거의 없다 보니 도쿄 레즈들은 거기로 다 모인 듯했다. 가게에 들어가지 못한 레즈들이 골목 안을 점령한 채 시끄럽게 떠들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퀴퍼 말고는 이렇게 많은 레즈 군중을 본 적이 없었다.

전날도 사람들로 넘쳐났던 거리는 이제 사람들이 쓸려 다닌다는 표현에 가까워져 있었다.

한국인 사장이 하는 게이바 <천국의 계단>으로 들어갔다.

전형적인 게이바 사이즈 공간에 딱 두 자리가 남아있었다. 주인과 종업원은 젊었고, 손님은 나이가 중구난방이었다. 한국바들은 대체로 한국문화를 좋아하는 일본인, 조선인, 재일동포 등이 오기 때문에 외모와 나이로 그룹핑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그만큼 본토 한국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서 니초메에서 주목받길 원하는 한국 게이가 있다면 입문용으로 가보길 추천한다.

술을 주문하고 기다리는데, 5명의 손님이 더 들어왔다. 만석이니까 당연히 나가겠지 했는데, 주인이 어찌어찌 자리를 조율하더니 그 사람들을 다 앉게 만들었다. 맨 끝에 앉아있던 나는 몸을 거의 세로로 해서 강제로 좌중을 볼 수 있게 되었는데, 게이바에서 이런 자세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아니, 모두와 눈을 마주칠 수 있어서 오히려 좋다.

<천국의 계단>의 종업원은 한국말을 쪼금 할 줄 아는 일본인인데, 가게 이름의 유래를 몰랐다. 그래서 “이게 지우히메가 출연한 한국에서 대박 친 드라만데…” 하며 오스씨가 신이 나서 설명해 주었다. 오스씨는 나를 만나기 전만 해도 그 시절의 드마라 DVD를 사서 반복 시청하던 열혈 드라마팬이었다.

그가 사람들의 주문으로 바빠지자, 이번엔 오스씨 옆에 앉은 젊은 일본애가 말을 걸어왔다. 최근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면서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친절한 오스씨는 이번에도 신나서 설명 삼매경.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가게에 있는 어느 누구에게도 호기심이 동하지 않아 케이팝 뮤직비디오가 나오는 티비만 봤다. 빅뱅, 소시, 인피니티 등 2세대 아이돌들 뮤직비디오는 오랜만이라 즐겁긴 한데, 문제는 더위. 좁은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의 열기로 온몸에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안 더워?"

오스씨에게 물어도 자기는 괜찮단다. 당장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오스씨가 오래간만에 신나게 떠드는 모습에 계속 꾹 참고 있었다. 마침내, 이 사우나에서 더 버텼다간 진짜 천국의 계단에 오르겠다 싶어 오스씨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 갑자기 대화하던 상대가 밖으로 나가버려 살짝 실망한 듯한 옆 자리 청년아, 미안하다. 애인이 너랑 떠드는 꼴에 질투가 나서 나갔던 게 아니야. 너무 더웠어, 너무!

우리가 두 번째로 간 가게는 니초메에 올 때마다 들르는 <서울 소울>이라는 가게였다. 원래는 가장 먼저 오려고 했는데, 구글지도에 가게 정보가 사라져서 망한 줄 알았다. <천국의 계단> 사장이 아직 영업한다는 정보를 알려줘서 찾아갔다. 지하에 위치해 있는 가게인데, 문을 열자마자 짙은 담배연기와 함께 열기가 훅 뿜어져 나왔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그냥 문을 닫고 나왔다. 사장이 따라 나와서 들어오라고 여러 번 권했지만, 찜통에 들어가고 싶지 않아 연신 미안하다 꾸벅꾸벅했다. 아무리 4월 중순이지만 이렇게 더우면 에어컨 좀 틀어야 되는 거 아닌가. 다른 데 가도 마찬가지일 거 같아서 오늘은 그만하기로 했다. 내일은 중요한 퍼레이드가 있는 날이니 무리하지 말아야지.

호텔에 들어와 씻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레즈들의 웃음소리는 여전히 크게 들렸다. 귀마개를 하고 잠에 들었고, 새벽에 오줌이 마려워서 깼는데, 그때까지도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5시 30분이었다. 참 대단들 하다 싶었다.

셋째 날, 일요일에 퍼레이드를 마치고 찾은 게이바는 <안녕>이었다. 오스씨는 예전에 온 적이 있다고 했지만, 들어가 보니 다른 가게였다. '추억저장고' 관리직에서 오스씨를 해고하기로 했다.

한국인-일본인 커플이 운영하는 가게인데, 이미 25년째 함께 하는 사이다. 가게의 역사는 18년. 이렇듯 일본은 아주 오랫동안 운영되는 가게들이 많다. 임차인 보호가 확실하다는 의미다. 종로 게이 거리가 익선동의 발달로 젠트리피케이션의 위기에 놓인 것과는 사뭇 대조되어 더욱 부러웠다.

일요일은 전통적으로 게이바에 손님이 없는 날인지라, 가게에 손님은 네 명 정도였다.

"어제는 평소 주말에 비해 두 배 넘는 손님이 왔었어요."

어제 오면 좋았을 거라는 그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람이 많아봐야 게이 커플에겐 다 그림의 떡. 이렇게 사장하고 노닥거리는 시간이 더 재미있다.

사장에게 평소 도쿄 게이바에 대해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았다. 아래 이야기는 <안녕> 사장님 피셜. 그리고 중년 게이바임을 감안하고 읽어주시길.


"한국바는 소녀시대, 카라가 인기 있을 때 가장 전성기였어요. 그때 니초메에도 8갠가, 9개 정도 있었죠. 지금은 정리가 돼서 여섯 개 정도? 한국인이 하는 소주방도 있는데, 일본 게이들은 게이바에서 음식을 거의 안 먹어서 잘 안 돼요."

음식값이 비싸서일까? 아니면 아무에게나 식사하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서일까. 나같으면 후자일 거 같다. 일본 게이바는 아주 좁은데, 바로 옆에서 떡볶이 먹으면서 고추장으로 입술 빨갛게 물드는 모습 같은 거 보기도, 보이기도 싫다!

"가게 손님들이 한국 게이를 좋아하는 이유요? 글쎄, 한 번도 안 물어봐서 모르겠네요."

개인 정보를 교환하는 걸로 애정과 신뢰를 확인하는 한국의 게이바 문화와 가급적 개인적인 것을 묻지 않는 일본 게이바 문화. 당신은 선택은?  

일본 사회의 동성애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이 감지되냐 물었더니, 체감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는 사실 한국도 비슷한데, 게이바는 원래 가장 보수적인 공간 중 하나다. 현실로부터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현실의 혹독함을 느낄만한 주제는 잘 다루지 않는다. 급진적인 퀴어운동도 언급되지 않는다.

물론 이런 문화는 우리가 다니는 중년 게이바 한정이다.

젊은 게이들이 다니는 가게는 훨씬 개방적이고 급진적이다.

게이바에서 "우리는 오래 사귄 부부"라고 말하면 인기도 없지만 대화의 한계가 분명해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안녕>에서는 커플이 아닌 척하며, 여러 가지 므흣한 정보도 물어보았다.

주인장은 한국에는 없는 SM바나 훈도시바 등도 소개해주었는데, 그중 훈도시바의 설명이 재미있었다. 직접 훈도시를 입어볼 수 있고, 혼자서 입기 힘들면 주인장이 도와준다고 한다. 이성애자들이 아사쿠사에서 유카타 체험할 때 게이들은 니초메에서 훈도시 체험을 할 수 있다. 말 그대로 훈도시를 입고 서서 술을 마실 뿐, 별다른 일이 벌어지는 곳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 자체로도 충분히 흥미롭다.

술도 알딸딸하게 취했고, 내리는 비에 분위기도 나른해져 훈도시바에 가보자고 오스씨를 꼬드겼다. 하지만 입구에 들어서자 몸매에 자신이 없다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버티는 오스씨. 때 마침 사장님이 밖에 나와 가게를 나서는 손님이 훈도시 벗는 걸 도와주는데, 그 모습을 본 오스씨는 샤이한 얼굴을 하고는 나 혼자 체험하고 오라며 밖으로 나갔다. 잔뜩 들어갔던 콧바람이 싱겁게 빠져나가버려 나도 밖으로 나왔다. 짜증은 났지만 이제는 이런 걸로 싸우진 않는다. 대신 삐진 척은 좀 해야지.

다음 날 일어났더니 머리와 뱃속이 숙취와 정상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왔다 갔다 했다. 훈도시바에 가서 한잔이라도 더 마셨다면 분명 여행의 마지막 날, 대망의 쇼핑 투어 최종장이 엉망이 되었을 것이다. 말려준 애인아, 땡큐. 하지만 만약 시간을 되돌린다면 분명 또 가자고 꼬드겼을 것이다. 그게 나란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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