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여행기 3
후쿠오카에도 게이바가 많다. 도쿄 여행 글에서도 썼듯이 오스씨는 일본식 스나쿠 문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여행에도 게이바 방문은 필수였다. 후쿠오카 게이바는 스미요시 신사 주변으로 주로 포진해 있는데, 우리가 묵은 호텔(텐진 미나미 소재) 근처에도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게이바 하나가 있었다. 심지어 오스씨가 좋아하는 GMPD스타일(GMPD는 ガチ(가치:근육) ムチ(무치:체지방 높은 근육) ポチャ(포챠:통통한) デブ(데브:뚱뚱한)을 뜻하는 일본어의 앞 글자를 영어로 줄임말)이 주로 오는 가게다. 월요일에도 영업을 하고, 다른 가게보다 일찍 문을 열어서 오픈시간부터 들어갔다. 한 시간 반을 떠들었는데, 손님은 우리 둘뿐. 요일과 시간을 생각하면 당연한 귀결인데, 상관없었다. 통통한 베어 스타일의 마스터 한 명만으로도 눈요기(오스씨 한정. 난 마른 사람 좋아함)는 충분했고, 다른 손님이 없던 덕에 실컷 수다를 떨 수 있었다. 도쿄의 신주쿠를 방문할 때는 대체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술집에 가기 때문에, 이렇게 체형에 특화된 가게를 가는 건 오랜만이었다.
평소 일본어 공부를 열심히 한 오스씨는 대체로 마스터의 말을 알아듣는 눈치였고, 난 절반 이하만 이해했지만, 파파고라는 훌륭한 번역기의 도움으로 우리는 거의 쉬지 않고 수다를 떨었다. 마스터는 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좋아하며, 매일 김치를 먹고, 한국에도 자주 놀러 온다고 했다. 블랙핑크가 아니라 솔로 리사를 좋아하고, 좋아하는 배우는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에 나왔던 엄혜란 씨라고. 주연 배우도 아니고 엄혜란 씨? 어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일본 배우로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 상으로 유명한 '마츠시게 유타카' 상이라고 말했더니 일본인이 깜짝 놀라더라, 라는 글을 봤었는데, 딱 그런 느낌이었다. 하긴 나도 일본 가수 중에서 '사장오르스타즈'를 가장 좋아한다고 하면 다들 뜨악한 시선으로 보긴 한다.
내가 좋아하는 일본 가수는 수십 년째 '사장오르스타즈'(サザンオールスターズ, Southern All Stars : 다양하게 발음하지만, 리더인 '쿠아타 케이스케'상이 발음하는 사장오르스타즈가 가장 좋다)지만, 배우는 큰 줄기로 계속 바뀌어왔다.
일본문화가 개방되어 한창 극장에서 일본 영화가 상영되던 시기에 가장 좋아하던 배우는, 조금은 뜬금없지만, 히로스에 료코를 국민 여동생으로 만들어준 영화 <비밀>에서 상대역으로 나온 중년 남자 배우 '고바야시 카오루'다. 한국에서는 드라마 <심야식당>의 마스터로 더 알려져 있다. 51년생인 그가 비밀에 나왔을 때의 나이가 40대 후반. 어린 여배우가 상대역이어서 나이보다 귀엽게 스타일링해서인지 그는 사십 대 초반으로 보였고, 당시 서른을 앞둔 내가 딱 좋아하는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 외, '아야세 하루카'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어준 드라마 <호타루의 빛>에 나오는 영원한 부쵸 '후지키 나오히토'라든지(한때 이런 꽃미남 류도 좋아했었구나 싶다), 어쩐지 툭 치면 픽 하고 쓰러질 것 같은 '카세 료'라든지, 외유내강형의 끝판왕 같은 <드라이브 마이카>의 '니시지마 히데토시'라든지. 호리호리하고 (겉으로 보기엔) 힘없어 보이는 남자들을 좋아했다.
나의 이상형 나열에 마스터는 당연하게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가 좋아하는 한국 남자 배우는 <경이로운 소문 시즌2> 8번째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악역의 비서(퉁퉁하고 수염이 났다) 같은 배우다.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배우의 이름은 찾지 못했다. GMPD스타일의 배우가 적은 나라에서 사는 그쪽 성향의 게이들은, 이런 식으로 조연과 단역들까지 샅샅이 훑어야 겨우 마음 붙일 캐릭터를 만날 수 있다.
가게 특성상, 그리고 오스씨와의 공통의 화제를 찾다 보니 역시나, 최근 몇 년간 동아시아 GMPD 계열 게이들 사이에서 단연 화제인 웹드라마인 <신바시 사랑이야기(シンバシコイ物語)>가 튀어나왔다. 도쿄 신바시에 있는 GMPD 계열의 게이바 TUGBOAT에서 제작해 유튜브로 서비스했던 한 회당 15분 내외의 짧은 웹드라마인데, 따로 배우를 섭외한 것이 아니라 가게의 사장과 스탭, 손님들이 직접 출현해서 더 인기를 끌었었다. 내 눈엔 다 그 사람이 그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쪽 스타일을 좋아하는 게이들에게는 벨기에 초콜릿 상자처럼 각기 다른 맛의 캐릭터가 매력을 겨룬다.
"난 타츠야가 좋은데, 마스터는 누구?"
오스씨가 묻자, 마스터도 타츠야파라고 대답했다.
드라마는 타츠야가 친구와 함께 터그보트바에 입장하며 시작한다. 맥주를 마시며 친구(고테츠)와 수다를 떠는데, 문이 열리고 준노스케가 들어온다. 잠시 후 둘은 서로를 의식하며 눈이 마주친다. 첫눈에 반한다는 설정인데, 이때 타츠야가 준노스케를 바라보는 눈빛은 사랑에 빠진 남자라기보다는 배틀을 앞둔 결의가 느껴진달까, 사뭇 비장해서 실소가 터져 나온다. 이런 어색한 연기가 나름 재미를 주는 요소이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렇다. 두 번째 실소는 고테츠가 타츠야에게 "저런 남자는 무리야. 그림의 떡이야."라고 말할 때였다. 준노스케 팬들에게 미안하다. 뭐 찬찬히 뜯어보면 귀엽긴 하지만 내 눈엔 아무래도… 쩝.
내가 이성애자 연애물을 영 신통찮아하듯이, 취향이 아닌 게이들만 나오는 드라마는 보기가 버겁다. 아무튼 그건 내 얘기고, 마스터와 오스씨는 아주 신이 났다. 준노스케가 마스터의 가게에 왔었다는 이야기, 준노스케가 한국인 친구들과 골프를 쳤다는 이야기(그 골프 멤버 중에는 우리가 아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게이바에서도 이 드라마를 벤치마킹해서 웹드라마를 만들었는데, 어떤 미친 스토커 때문에 제작이 중단되었다는 이야기 등,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잔뜩 들을 수 있었다.
이렇게 일본 게이바의 마스터는 일본인 특유의 친절함으로 무장한 채 언어 장벽이 있는 한국인 손님들에게도 꽤 호의적인 접대를 보여주는데, 지역마다 조금씩 분위기는 다른 것 같다. 도쿄는 조금 거리를 두고 조곤조곤 떠드는 분위기. 선을 넘지 않는다. 오사카는 손님까지 가세해서 왁자지껄, 부어라 마셔라 아주 난리다. 아차 하다 보면 너무 퍼마셔서 필름 끊기기 딱 좋다. 교토는 음... 말을 잘 안 걸었던 듯... 하고, 삿포로는 확실히 차분하다. 밤이 긴 도시니까 뭐든 서두르는 법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후쿠오카는 적극적이다. 일본에서도 큐슈 남자는 저돌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게이바 마스터나 게이바에서 만난 사람들도 손님을 대하는데 거침이 없다. 지난 십 년 동안 여러 번 후쿠오카 게이바를 찾았는데, 마스터 주도로 술 게임을 하면서 옷 벗기를 하질 않나(나도 빤스만 남기고 다 벗었음), 옆 사람이 어깨동무를 해온다든지, 우리가 아는 일본인들의 이미지완 다르게 아주 적극적으로 몸을 부딪쳐온다. 쭈뼛쭈뼛하고 있어도 잘 이끌어주고,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적극적인 사람이라면 더욱 환영한다.
당신이 만약 일본에 놀러 가서 게이바에서 역사를 쓰고 싶다면?
후쿠오카는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파파고 앱만 깔아 두면 된다.
주저하지 말고 놀러 가시라!
‘일본 술집은 사람당 자릿세를 받는 곳이 많은데, 게이바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 게이바처럼 하룻밤에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니면 자릿세만으로 꽤 큰 금액을 낭비할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 한 곳에 마음을 붙이고 오랫동안 즐기는 것이 좋다. 마스터와의 궁합이 좋아야 하는 이유다. 물론 여행을 갔는데, 삼십 분이 지나도 마음에 드는 손님이 없고, 마스터도 재미가 없다면? 눈치 보지 말고 바로 일어나 당신을 원하는 사람이 "있을" 곳을 찾아 구글맵을 펼쳐보자. 몸이 달아올랐는데 자릿세 운운하며 지폐를 세는 것보다, 조금은 거침없이, 무모하게 도전하는 것이 여행을 즐기는 올바른 방법!’
이 이상의 이야기는 아래 링크에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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