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0 - 3 일본
가장 완벽하게 패배했다. 역대 한·일전 15번째 패배이자 3번째 3골 차 패배다. 10년 전, 삿포로 스타디움에서 카가와 신지에게 농락당하며 패배했던 경기가 오버랩이 될 정도로 완패했다. 일반적으로, 실력 차이가 큰 팀에게 당하는 세 골 차 패배보다 실력 차이가 크지 않은 두 팀의 대결, 특히 라이벌팀과의 대결에서의 세 골 차 패배가 주는 의미가 사뭇 다르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히 분개할 수밖에 없는 성적표임은 분명하다.
경기 종료 이후 수많은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굴욕, 참사, 졸전과 같은 단어들이 국내 축구 기사란을 도배하다시피 했고, 패배의 원인이 무엇인지 분석하는 기사들이 끊임없이 양산되었다. 해외파의 부재, 벤투 감독의 전술적 역량 미달, 선수들의 소멸된 투지와 투혼, 더 나아가서는 코로나 시국에 왜 굳이 일본까지 가서 경기를 치렀어야 했는지에 대한 경기 외적인 부분과 그 과정까지 패배의 원인으로 지명되었다.
반면에, 일본축구협회는 달랐다. 그들은 한·일전에 특수한 의미 - 예를 들면, 국가주의나 애국주의 - 를 부여하여 한·일전 승리에 대한 찬사와 환희의 기사를 쏟아내기보다는 한·일전을 그저 A매치 경기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다가오는 올림픽 축구에 타겟팅을 하여 여러 가지 준비를 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이런 점에서 연이어 한·일전 패배에 대한 감정만을 쏟아내는 기사들과 패배의 원인을 표상적으로만 다루는 기사들은 대한민국 축구가 지금 명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그냥 덮고 넘어가는, 한마디로 유예시키는 꼴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이제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분석이 필요한 시점이다.
아직까지도 2002년 월드컵의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2002년 월드컵은 신화가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저주'에 가깝다. 안타깝지만 대한민국 축구는 월드컵 4강을 이루어낼 수 있는 실력과 수준을 결코 갖춘 적이 없었다. 월드컵 4강은 세계 어디에도 전례가 없는 '프로리그 중단'과 '대표팀 합숙 훈련'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다. 한마디로 월드컵 4강은 수많은 개인과 단체들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결과라는 것이다.
(간혹 월드컵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 않느냐며 반론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국가의 위상과 명예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자유와 프로리그의 희생이 당연하다는 그 말이 얼마나 파시즘적인 발상이며, 장기적으로 축구를 퇴보시키는 일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생각된다. 더 나아가 안타까운 것은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운동 선수들을 여전히 내셔널리즘을 기반으로 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월드컵 효과가 대한민국 축구 발전에 기여한 부분도 어느 정도는 있다. 그것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거시적·장기적으로 봤을 때, 득보다는 실이 많은 사건이었다는 점에서 2002년 월드컵을 신화로 격상시키는 일은 대한민국 축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회피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제는 2002년의 환상을 깨고, 그것이 우리에게 어떠한 실을 가져다주었는지를 명확하게 짚고 성찰해야 한다.
모든 스포츠가 그러하듯이 경기에서 승리를 이끄는 요소의 8할은 선수들의 기량과 재능이다. 아무리 훌륭한 감독이 와도, 완벽한 전술이 존재해도, 심지어 최첨단 인프라가 구비되어 있어도 선수들의 기량과 재능이 받쳐주지 않으면 이 모든 것들은 무용지물이다. 경기는 결국 선수가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감독 탓, 전술 탓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현재 선수들의 기량이 어느 정도인가다. 그렇다면, 한일전에서 보여준 선수들의 기량은 어땠나? 말할 것도 없다. 정말이지 처참한 수준이었다. 볼터치, 패스, 탈압박, 슈팅, 드리블, 볼 키핑 등등 기본적인 기량, 즉 기본기가 너무 부실했다. 일본이 특출나게 잘한 것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를 쉽게 리드할 수 있었던 것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우위를 점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은 기본기가 너무나도 부실했다.
월드컵 9회 연속 진출의 위업을 달성한 대한민국이 아직까지도 기본기를 논하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의견이 있다. 하지만 모든 스포츠 아니 모든 분야들이 그렇듯, 훌륭한 기량은 탄탄한 기본기에서 나오는 법이다. 손흥민 선수의 아버지 손웅정 씨가 손흥민에게 기본기 훈련을 그렇게나 강조했던 것도 탄탄한 기본기가 뒷받침되어야 훌륭한 기량을 꽃피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어렸을 때부터 기본기를 잘 다져놓아야 하는 유소년들이 엘리트 스포츠 중심의 교육 체계 속에서 즉, 성과중심의 교육 체계 속에서 과연 얼마나 기본기를 다지며 자랄 수 있을지가 의문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승리를 이끄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선수들의 기량과 재능이다. 그렇다면, 뛰어난 기량과 재능을 지닌 선수들이 많이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앞서 기본기에 대해 언급했다. 하지만 이것은 개인적이고 미시적인 차원에 불과하다. 대한민국 축구가 발전하려면 개인적이고 미시적 차원의 혁신과 더불어 사회·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의 혁신도 병행되어야 한다. 물론 이 둘 사이에 연결점 역시 존재하기는 하지만.
대한민국이 e스포츠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는가? 그것은 PC방이라는 저변이 전국적으로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디서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그런 저변의 존재가 수많은 인재풀을 형성하고, 그 속에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하도록 만든 것이다. 스포츠도 이 원리와 같다. 아니 어쩌면 모든 산업이 이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다. 바로, '저변 확대의 원리'다.
저변이 넓을수록 인재풀이 넓어지고, 인재풀이 넓을수록 스타플레이어를 배출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좋은 재능을 가진 선수들을 발굴하려면 먼저 저변 중심의 문화가 양성되어야 한다. 이것은 '교육'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저변과 교육은 같이 간다. 스포츠를 삶의 습관으로 만드는 교육, 다양한 스포츠를 많이 접할 수 있는 환경과 토대를 만드는 교육, 스포츠의 대중화·생활화를 위한 교육 등 이 모든 교육들이 저변을 넓히는 토대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어렸을 때부터 받은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스포츠를 하고, 스포츠에 소비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단순히 엘리트 선수를 육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스포츠를 교육이 아닌 국위선양의 도구로 인식하고 있는 사회 속에서, 스포츠 하는 학생과 공부하는 학생을 분리하는 교실 분위기 속에서 과연 저변이 얼마나 넓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4년 전, 대한민국은 월드컵 최종 예선에서 카타르에게 2-3으로 패배한 이후, 슈틸리케 감독과 이용수 기술위원장을 경질하였다. 그 후 천신만고 끝에 월드컵에 나갔으나, 결과는 2014년 월드컵과 동일하게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국 축구가 정녕 쇄신하고 개혁해야 할 문제들을 외면하고 있다는 소리다. 많은 이들이 감독의 역량 미달을 원인으로 꼽는다. 대한축구협회도 매 주기마다 감독 자르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축구의 문제는 홍명보의 잘못도, 슈틸리케의 잘못도, 신태용의 잘못도, 벤투의 잘못도 아니다.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대한민국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 축구 구조 체계 속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들을 바라봐야 한다. 한·일전 참패의 원인을 단순히 감독의 역량 미달, 전술의 부재, 투지의 실종 그리고 해외파의 부재 같은 겉보기 현상들로 바라보고 진단한다면, 4년 뒤에도 그다음 4년 뒤에도 똑같은 레퍼토리가 반복되고 말 것이다. 이제는 현상 너머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진짜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것들을 발견해 공론화할 수 있는 팬덤이 형성되어야 한다.
개혁은 위로부터가 아니라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