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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Nov 14. 2019

그렇다면 나는 권력자가 되고 싶었던 걸까?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12


사업자등록증을 받아 든 나는 목구멍 깊숙한 곳이 간질거리는 것을 느끼며 드디어 사장님이 된 것을 실감했다.


나는 이제 누가 뭐래도 어엿한 사장님인 것이다.


현실은 직장인일 뿐이지만 나는 마치 큰 기업이라도 하나 가진 듯 마음이 부유해졌다. 남에게 종속되어 사는 것이 익숙했던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생산수단을 소유한 지배계급이 된 것만 같아 해방감마저 들었다.


알량한 종이 쪼가리 하나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니...




나는 더욱 당당해졌고 날이 갈수록 노련한 사장님이 되어가고 있었다.


사업가는 모름지기 계약이 주 업무임에 틀림없었다. 부동산중개소의 모든 거래는 계약서로 작성이 되어야만 효력이 발생했다. 각종 서류에 사인을 하고 물건이 내 소유가 되면 이때부터는 동네에서 괜찮다는 인테리어 사장님을 물색해 견적을 받고 계약을 했다. 수리가 끝나면 임차인과의 월세 계약이 남아있었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각종 계약이 끝나면 이걸 토대로 나라에 신고를 해야 하고 때가 되면 세금을 내고 수입을 보고하는 등 의무를 다해야 한다. 사장님은 스케일이 큰 사람보다는 꼼꼼한 사람에게 더 적합한 직종인 것 같다.


또한 나는 매너 좋은 사장님이 되고자 했으므로 임차인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재빨리 해결해주고 어지간한 것은 배려를 했다. 내 고객이라는 생각에 명절이면 직접 선물을 들고 가 인사를  만큼 정성을 들였다.


나는 이런 것들을 챙기면서 기분이 좋아짐을 느꼈다. 원래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것에는 젬병인 내가 내 사업을 위해서라면 눈이 펑펑 오고 태풍이 부는 날에도 길을 나섰다. 붙임성마저 좋아져 내가 살지도 않는 아파트의 경비아저씨와 넙죽넙죽 이야기를 하고 있는 나는 내가 봐도 타고난 사업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낯을 많이 가린다고 생각하며 산 수십 년 세월이 무색하게도 나는 낯선 사람과의 대화가 익숙해지고 있었다.




사업자가 된 것은 내 생활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직장에서는 갈수록 느긋해졌는데 나는 그동안 사실은 돈이 없어서 직장을 그만두지 못했음을 인정해야만 했다. '돈도 돈이지만 어쩌고 저쩌고...' 시작되는 변명은 사실 돈이 없어서 일을 계속해야만 함을 의미한다. 내가 당장 직장을 그만두지 않는 여러 가지 이유 중 돈을 제외시킬 수 있다는 것은 큰 특권처럼 느껴졌다.


아, 오해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임대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는 뜻이 아니라 월급이 아니라도 돈이 나오는 구석을 만들 수 있다면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훨씬 가볍다는 의미다.


실제로 아직 내 급여에 비하면 적은 돈이지만 오로지 내 판단과 결단으로 매달 어느 정도의 돈을 손에 쥘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것 자체가 나에겐 무한한 자신감의 원천이었고 그것은 마음의 여유로 이어졌다. 나는 이제야 비로소 돈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내 안에서 일어났는데,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제야 제대로 사회의 일원이 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이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 중에 시시한(박봉의) 월급쟁이는 보지 못한 것 같았다. 월급쟁이는 생산 수단을 소유한 이들의 부속품 같은 존재이므로 엄밀히 말해 회사의 도구로 이용될 뿐 혼자서는 돈을 벌 수 없는 위치에 있다. 그러나 어떤 형태로든 사업을 한다면 최소한 수단이 되는 상황은 면할 수 있기 때문에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물론 요즘 같은 불경기에 주도권을 쥔다는 것이 좋은 일만은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경제의 주체가 되는 경험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신나는 일이었던가?



사업은 나를 내 인생의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결정권자의 위치에 있어 본 적이 없었음을 떠올리며 사실은 이것이 없어서 그동안 직장에서 괴로웠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는 최소한 교감 정도나 되어야 무언가를 주도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 교사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의 결정은 종례를 언제 할 것인가, 수행평가를 어떻게 할 것인가 정도에 그쳤으므로 전부 학생들에 대한 것뿐이었다. 큰 틀에서 학교를 운영하는 가치관이나 중점사업을 선정하는 일 등에서 교사는 배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나는 권력을 원하고 있었던 걸까?


글쎄, 학교에서 권력은 누려보지 못했기에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나는 내 힘을 느끼고 싶어 했던 것 같다. 무슨 일이든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가 원해서 하고 싶었지만 조직사회는 그것을 허용할 만큼 개방적이지도 않고 시간도 없다. 더구나 내 직장은 변화의 속도가 가장 늦다고 하는 학교가 아닌가. 


평소에 권력은 남을 누르고자 하는 부정적인 감정이라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이 아닌 나에게로 향하는 힘은 그 어떤 감정보다 달콤했다. 어떤 상황을 내가 주도할 수 있는 힘은 남을 내 발밑에 종속시키는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긍정적이고 기분 좋은 것이다.


직장에서 임원이 되고 관리자가 되면 퇴직을 할지언정 다시 내려오기는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힘을 느껴 본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어느 기업의 CEO 출신이 아파트 경비나 택시 운전 같은 것을 하며 인생 2막을 살고 있다는 소식의 주인공들도 보통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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