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사무실로 달려가며 대체 무슨 사연일까 생각해봤다. 좋은 집이 파격적으로 싸게 나왔다면 대부분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연로한 노인이 돌아가시면서 상속문제로 빨리 해결하고 싶은 자식들이 내놓은 물건이거나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사람들의 집일 경우가 많다. 최악의 경우 자살이겠지만 부동산 사장님의 어조로 봐서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재밌는 사연이라고 해서 나는 더욱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재밌는 사연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집주인은 허경영의 팬이라고 했다.
이 분의 말씀에 의하면 허경영은 곧 대통령이 될 것이 틀림없는데 공약 중 하나가 신혼부부에게 무상으로 집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현재 20대의 아들과 함께 실거주를 하는 집이 있으므로 아들이 결혼을 하면 물려주려고 마련했던 이 집은 이제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허경영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지금 얼른 팔아야 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나면 모두들 집을 팔려고 할 것이므로 곧 집값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심 있는 부동산 사장님은 과거에 이 집을 사 준 장본인이었고 집주인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말렸으나 의지가 확고해서 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라고 했다. 사람들이 알게 되기 전에 지금 빨리 이 집을 파는 것.
음...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래서 부동산 사장님은 나에게 묘한 웃음을 흘린 거였구나. 전화로 할 수는 없었겠구나. 나에게 직접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믿어지지 않았다. 집주인이 오기 전 사장님이 나에게 브리핑한 이 물건의 사연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고 심지어 듣다 보니 의심마저 들었다.
이게 사실일까?
그러나 곧 등장한 집주인의 모습은 내 의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화장에 씩씩한 말투와 태도를 가진 50대의 집주인은 역시 이 동네에서 유명인이라 불릴만했다. 방금 전까지 지하철역 앞에서 허경영 홍보활동을 하느라 몸통만 한 패널을 앞뒤에 걸고 나타난 집주인은 진짜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강렬했다.
입고 온 빨간 바지만큼이나.
집주인은 이미 부동산과도 다 얘기가 끝난 듯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어 했고 노련한 사장님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다.
시원시원한 허경영의 팬은 빨리 홍보를 하러 다시 나가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얼굴을 본 지 30분도 안돼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집주인은 다시 패널을 몸에 걸었다. 인사를 하고 나가면서 아차 싶었는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쥐어준다.
허경영의 홍보 명함이었다.
모든 홍보물은 자비로 만들고 있으며 이 패널 또한 직접 손으로 만든 거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나에게 잠시 본인의 우상을 소개하기 시작해서 집을 싸게 산 나는 기꺼이 들을 준비를 했지만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아는 듯 짧게 끝내고 쿨하게 나가셨다.
아...그녀는 너무 멋졌다.
그리고 나는 허경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예전부터 싫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살면서 나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허경영은 분명 그중에 한 명이었음을 잊고 살았다. 게다가 이번엔 나를 더 크게 웃게 해 주었으니 나는 팬카페라도 가입하고 싶어 졌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요 며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내가 최초로 실감한 나비효과였다. 허경영의 날갯짓은 내가 아파트를 사는 데 있어서 폭풍 같은 위력으로 다가왔다. 또한 허경영의 공약, 이를 믿는 팬의 매도 결정, 마침 그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던 나, 어그러질 뻔한 기회를 다시 살린 부동산 사장님이 만들어낸 훌륭한 컬래버레이션 그 자체였다.
감동적이기까지 한 이 스토리는 나에게 선물 같았다.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면 별의 별일이 다 있다고는 했지만 이런 경우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정도로 유쾌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