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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Nov 08. 2019

쓰잘데기 없는 짓을 계속했을 때 생기는 일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9


나는 중독자가 되어 가고 있었다.

틈이 날 때마다 주택임대사업에 적합한 아파트를 검색하던 것이 습관이 되어 나는 네이버 부동산에 주식을 하는 사람처럼 들락거렸다. 한 단지에 아파트 매물이 나와봤자 일주일에 몇 개뿐이고 실제로 거기에 기재된 정보가 정확하지도 않은 걸 알면서도 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심지어 이미 산 아파트의 시세까지 매일 확인했다.


부동산 시세와 더불어 빼놓을 수 없는 나의 일과 중 하나는 부동산 카페에서 내 관심지역 게시판을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어이없는 시간 낭비에 불과했지만 난 그렇게 하는 것이 열심히 부동산 공부를 하고 있는 것인 줄 착각했다. 행여 내가 사고 싶은 아파트에 대한 글이 올라오면 답글을 일일이 확인하며 울고 웃었다. 누가 쓴 글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초딩이 적었어도 할 말 없는 온라인상의 잡담을 나는 정보로 오해하고 있었다.


이 짓도 몇 개월 동안 반복하다 보니 패턴이 보였다.


누군가 자기가 산 아파트가 어떤지 물어보면 곧 좋다, 나쁘지 않다 정도의 젠틀한 답글이 달리다가 중간쯤엔 꼭 왜 거기를 샀느냐 거기보다는 여기가 낫다는 김 빠지는 글을 적는 사람들이 있다. 이미 산거 그냥 덕담 한마디면 될 것을 그렇게 함으로써 분쟁은 시작된다. 이렇게 몇 번 설왕설래하다 보면 서로 상대방이 과거에 적은 글을 근거로 서울에 집도 없으면서 아는 척을 한다는 둥 유치한 인신공격을 하고 그 와중에 뜬금없이 제삼자가 나타나 둘 다 틀렸고 자기 지역이 최고라며 훈계를 한다.


아수라장이었다.




유명한 부동산 카페는 분명히 도움이 되는 정보도 있었지만 너무나 많은 소음에 가려 진짜 정보를 가려내는 건 쉽지 않았다.


그에 비해 뚜렷한 목적이 있는 카페는 나쁘지 않았다. 회원수가 많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구체적일수록 좋은 카페일 확률이 높았다. 역시 요즘은 확실한 콘셉트가 있어야 살아남는 세상이다.


내게 가장 도움이 많이 된 것은 역시 책이었다.


책을 읽고 마음에 들면 그 저자가 개설한 블로그나 카페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 단편적인 정보보다는 일관된 메시지를 주는 책은 나 같은 초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함께 동기부여가 잘 된다는 장점이 있다. 또 저자가 블로그나 카페에서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은 책에 대한 신뢰도를 높여줄 뿐만 아니라 그가 쓴 방법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여러 가지 글을 읽으면서 시세를 수시로 확인하던 나는 어느 날부터는 전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기 시작했다. 매일 들여다보던 시세보다 싼 물건이 올라오면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 조건을 확인해 보기 위해서였다.


전화를 걸면 부동산 사장님들은 자꾸 집을 보여주려고 시도했다. 아마도 내가 마음 약한 팔랑귀라는 걸 이미 눈치챈 듯하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나를 안다.  명확하게 숫자로 표현된 확실한 메리트가 없다면 함부로 몸을 움직여선 안된다. 투자에서 경거망동은 금물이다.


메리트가 확정된 물건은 내친김에 약속을 잡아 가능한 한 빨리 보러 갔다. 처음엔 살 것도 아니면서 집을 보러 간다는 것이 불편하고 어색했지만 한 두 번 해보니 재미가 있었고 부동산에서도 잠재고객을 얻는 셈이니 싫어하지만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눈으로 직접 보면 잊히지 않는 효과가 있었다. 한 번 본 물건은 두고두고 내 관심 영역에 머물러 있다가 언젠가 때를 만나게 될 것이므로 집을 보러 간 것이 헛수고로 느껴지지 않았다.




지나가다 부동산에 불쑥 들어가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고 슬슬 재미까지 느껴지던 즈음 못 보던 번호로 부재중 전화가 여러 건 찍혀 있었다.


전화를 걸어보니 엊그제 통화를 했던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내심 좋다고 생각한 지역이었지만 적당한 매물이 계속 없었다. 거래가 활발할 때도 아니고 실수요가 탄탄한 곳이라 급매도 없었지만 그날도 매물 검색을 하다가 아무 부동산에 전화를 걸어서 분위기를 묻고는 급매 있으면 연락 달라는 말을 기계적으로 하고 끊었던 터였다.


사장님의 목소리가 묘하게 다급했다.


로열동에 로열층임에도 1층 가격에 물건이 나왔는데 사연이 있다고 했다. 함부로 말할 수는 없으니 집도 볼 겸 사무실로 오면 좋겠다 했고 나는 뭔가 비밀이 있는 이 집에 운명처럼 이끌렸지만 계산기를 두드려봐야 했다.


매력적인 가격임엔 틀림없었지만 여기저기 빌려준 돈까지 회수한다 쳐도 몇 백이 모자랐다. 아쉬웠지만 급한 성격 탓에 손해 본적이 많은 나는 서둘러서 좋을 것이 없음을 기억하며 다음을 기약했다.


그러나 내 인내심의 한계는 여기까지였다.


이삼일 후 다시 걸려온 사장님의 전화를 받고 나는 길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집주인이 빨리 정리하고 싶어 하는데 거래가 뜸한 시기라 500만 원을 더 낮춰놨다는 소식이었다. 본능적으로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퇴근 후 곧바로 가겠다고 했다.


왠지 미루면 안 될 것만 같았다.


나는 어쩌면 그동안 네이버 부동산을 들여다보고 있던 시간을 한꺼번에 보상받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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