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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Nov 06. 2019

사장님이 되기로 했습니다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7


준공공 주택임대사업자



너무나 매력적인 사업자였다.


집값에 신경 쓰는 노력을 하기 싫고, 한 번 사면 팔기 귀찮으므로 거의 평생 가지고 있으면서, 월세는 받고 싶은 나 같은 욜로족을 위한 상품이었다. '준공공'이라는 단어가 붙은 건 임대료 인상을 5% 이상 할 수 없고 8년 동안은 매도할 수 없는 등 제한이 몇 가지 있어서지만 이마저도 나한테는 해당이 없다.


지난번에 거금을 다 써버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임대료가 상승할 확률이 높은 곳은 집값도 비싸므로 내가 갈 있는 곳이 아니었다. 또한 임대료를 5% 이상 올리기도 쉬운 일은 아닌 것이 주인 입장에서는 임대료 인상 없이 같은 세입자가 계속 사는 것이 마음 편하다. 실제로 주택임대사업자 중에는 임대료를 올리지 않는 사람도 많다.


게다가 8년 동안 팔지 못하는 제약은 나 같은 팔랑귀에게는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졌다. 나는 성격도 급하지만 변덕도 심한 사람이다.


그럼 그냥 집을 사서 월세를 놓으면 되지 왜 굳이 준공공 주택임대사업자를 해야 할까?



그 답은 획기적인 대출 서비스에 있다.


국토교통부에서는 '주택도시 기금'이라는 것을 마련해 임대사업자에게 저리로 대출을 해주고 있다. 여러 가지 상품이 있지만 '민간임대주택 매입자금'은 내가 원하는 소형 아파트의 경우 2.5%로 8천만 원까지 대출을 해주고 있었다.(현재는 중단됨)




강의에서 이 내용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뛰면서도 어안이 벙벙했다.


이렇게 좋은 제도를 왜 사람들이 모르는 거지?



하지만 곧 알게 되었다.


그 교실에서 나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을.


대출을 받으면 이자를 내야 하고 그러면 월세를 받는 것이 무의미해진다고 생각했었다. 이자를 제외하면 남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었는데 나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


처음 투자한 아파트를 살 때 이 제도를 이용해 8천만 원을 빌렸다면 나는 가만히 앉아서 92만 원을 버는 효과가 있다. 월세 수익률이 3.65%이므로 이보다 돈을 더 싸게 빌릴 수 있다면 그 차이만큼 나의 이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인데 이 제도가 아니더라도 나는 3.65% 보다 낮은 이율의 대출을 사용해야 했음을 깨닫게 되었다.


이외에도 준공공 주택임대사업자는 양도세나 재산세 등 여러 가지 세금 혜택이 많다. 귀찮은 걸 싫어하고 단순 명료한 것을 좋아하는 나는 드디어 운명적인 투자방식을 만난 것 같았다.


물론 각종 요건을 갖춰 사업자를 등록하고 종합소득세도 신경을 써야 하는 등 유의할 부분은 있지만 그 정도 일을 하고 1년에 92만 원 이상을 벌 수 있다고 생각하면 별로 힘들게 느껴지지 않았다. 지금도 하루에 8시간씩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시간당 페이를 계산하면 이 일이 훨씬 가성비가 좋았다.




나의 투자원칙을 세우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보유해야 하므로 되도록 안정적인 상품인 아파트만 생각하기로 했다. 특히 세제혜택과 대출 혜택을 생각하면 소형이 유리했다.


1인 가구의 폭발적인 증가율을 떠올리면 더욱 소형이 답이었지만 나는 너무 작은 집보다는  2인 가구가 살 수 있는 49제곱미터의 집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1인 가구가 살 수 있는 33제곱미터는 내가 살기에도 너무 비좁아 보였고 요즘 젊은이들의 집콕 문화와 함께 오래된 아파트라도 좀 넓게 살고 싶은 1인 가구의 수요도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월세를 많이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오랜 기간 스트레스 없이 임대사업을 운영하기 위해서 역시 소확행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나처럼 현실에 집중하는 사람에게 월세는 수시로 찾아오는 행복이므로 놓칠 수 없었다. 나는 행복하게 살기로 마음먹은 터였으므로 눈에 보이는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길 것이다.


이렇게 정리를 하니 조건에 맞는 곳들은 당연히 경기권이었다. 서울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지만 혹시나 알아보니 역시 월세 비율이 너무 낮았다. 현재의 행복을 포기하는 대신 미래의 행복을 기대하는 곳이 바로 서울이라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기를 쓰고 서울에 집을 사려는 하는 이유가 오늘 포기한 행복이 나중에 더 큰 수익으로 돌아오기 때문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건지도 모르겠다는 불안이 밀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임대사업을 통해서 '사장님'이 될 수 있다는 희망에 부풀어올랐다. 이건 월세 70만 원의 행복으로 살아가는 직장인과는 노선부터 달랐다. 소비자에서 생산자의 위치로 나를 바꿔줄 '주택임대사업'은 나의 새로운 목표가 되었다.



사장님이 되기 위해 난생처음 직장을 벗어나 이리저리 경험을 하러 쏘다녔다.


세상은 넓었고 할 일은 많았다. 멋진 사람도 많았고 위험한 사람도 보았다. 그러나 나는 용기를 냈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지 않을 것이고 얌전히 살다 간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온전히 내가 선택하고 결정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나이 마흔이 넘도록 이렇게 신나게 살아 본 적이 없었음을 느끼며 뭔가에 열중해 있는 내가 좋았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딸에서 엄마로, 여자에서 아내로 살아온 내 인생이 사실은 내 의지로 한 것이 아니었음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을 때의 덧없음을 또다시 느끼고 싶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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