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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전소 Nov 09. 2019

허경영과 빨간 바지 아줌마

마흔 살 욜로족의 부동산 힐링 에세이 10


혹시, 자살?



부동산 사무실로 달려가며 대체 무슨 사연일까 생각해봤다. 좋은 집이 파격적으로 싸게 나왔다면 대부분 죽음과 연결되어 있다. 연로한 노인이 돌아가시면서 상속문제로 빨리 해결하고 싶은 자식들이 내놓은 물건이거나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올 기약이 없는 사람들의 집일 경우가 많다. 최악의 경우 자살이겠지만 부동산 사장님의 어조로 봐서 나쁜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심지어 재밌는 사연이라고 해서 나는 더욱 상상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재밌는 사연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집주인은 허경영의 팬이라고 했다.


이 분의 말씀에 의하면 허경영은 곧 대통령이 될 것이 틀림없는데 공약 중 하나가 신혼부부에게 무상으로 집을 제공해 준다는 것이라고 했다. 본인은 현재 20대의 아들과 함께 실거주를 하는 집이 있으므로 아들이 결혼을 하면 물려주려고 마련했던 이 집은 이제 필요가 없게 됐다는 것이다.


심지어 허경영이 대통령이 되기 전에 지금 얼른 팔아야 하는 이유가 사람들이 이것을 알고 나면 모두들 집을 팔려고 할 것이므로 곧 집값이 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양심 있는 부동산 사장님은 과거에 이 집을 사 준 장본인이었고 집주인의 말도 안 되는 주장을 말렸으나 의지가 확고해서 꺾을 수가 없다고 했다. 집주인이 원하는 것은 단 하나라고 했다. 사람들이 알게 되기 전에 지금 빨리 이 집을 파는 것.


...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래서 부동산 사장님은 나에게 묘한 웃음을 흘린 거였구나. 전화로 할 수는 없었겠구나. 나에게 직접 오라고 한 이유가 있었구나.


믿어지지 않았다. 집주인이 오기 전 사장님이 나에게 브리핑한 이 물건의 사연은 현실적이지 않았다. 나는 잠시 꿈을 꾸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고 심지어 듣다 보니 의심마저 들었다.


이게 사실일까?


그러나 곧 등장한 집주인의 모습은 내 의심을 불식시키기에 충분했다.


화려한 화장에 씩씩한 말투와 태도를 가진 50대의 집주인은 역시 이 동네에서 유명인이라 불릴만했다. 방금 전까지 지하철역 앞에서 허경영 홍보활동을 하느라 몸통만 한 패널을 앞뒤에 걸고 나타난 집주인은 진짜 만화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했다.


강렬했다.

입고 온 빨간 바지만큼이나.




집주인은 이미 부동산과도 다 얘기가 끝난 듯 길게 말할 것도 없이 계약서를 작성하고 싶어 했고 노련한 사장님은 이미 준비를 해두었다.


시원시원한 허경영의 팬은 빨리 홍보를 하러 다시 나가고 싶어 했으므로 우리 셋은 그 자리에서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얼굴을 본 지 30분도 안돼서 모든 절차를 마무리하고 집주인은 다시 패널을 몸에 걸었다. 인사를 하고 나가면서 아차 싶었는지 뒤를 돌아보더니 나에게 무언가를 쥐어준다.


허경영의 홍보 명함이었다.


모든 홍보물은 자비로 만들고 있으며 이 패널 또한 직접 손으로 만든 거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나에게 잠시 본인의 우상을 소개하기 시작해서 집을 싸게 산 나는 기꺼이 들을 준비를 했지만 역시나 많은 사람들이 보는 곳에서 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것을 아는 듯 짧게 끝내고 쿨하게 나가셨다.


아...그녀는 너무 멋졌다.


그리고 나는 허경영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예전부터 싫지 않았음을 고백해야겠다. 살면서 나에게 큰 웃음을 주었던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허경영은 분명 그중에 한 명이었음을 잊고 살았다. 게다가 이번엔 나를 더 크게 웃게 해 주었으니 나는 팬카페라도 가입하고 싶어 졌다.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요 며칠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이것은 내가 최초로 실감한 나비효과였다. 허경영의 날갯짓은 내가 아파트를 사는 데 있어서 폭풍 같은 위력으로 다가왔다. 또한 허경영의 공약, 이를 믿는 팬의 매도 결정, 마침 그 부동산에 전화를 걸었던 나, 어그러질 뻔한 기회를 다시 살린 부동산 사장님이 만들어낸 훌륭한 컬래버레이션 그 자체였다.


감동적이기까지 한 이 스토리는 나에게 선물 같았다. 부동산 투자를 하다 보면 별의 별일 다 있다고는 했지만 이런 경우라면 얼마든지 환영할 정도로 유쾌한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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