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택임대사업이 어느 정도 체계를 잡았다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 서울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솟더니 정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각종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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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신속한 나라였는지 의아했다.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는 정부는 뭔가를 바꾸려면 족히 몇 개월은 걸리는 게 당연했는데 역시 돈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개인이나 정부나 다를 것이 없었다. 서울의 집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불타오르자 과거 정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재빨리 손을 쓰는 모습이 내 눈에도 보였다.
국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두려웠던 건지 정말 강남 집값을 잡고 싶었던 건지는 모르겠으나, 정부는 사람들에게 빨갛게 표시된 지역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듯해서 규제책은 오히려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한동안 서울 대부분의 지역에서 매물이 잠기고 호가가 치솟았다. 각종 부동산 카페에도 불이 붙어 지금이라도 서울에 집을 사야 하냐는 질문이 이어졌고 답글은 늘 같았다.
오늘이 가장 쌉니다. 무조건 사세요!
영끌.
영혼을 끌어모아서라도 서울에 집을 사야 한다고 외쳤다. 저기 보라고. 집값을 잡고 싶어 하는 정부조차 바로 그곳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곳이라는 신호를 주고 있지 않냐면서 부동산 전문가들도 한 목소리를 냈다.
선생님이 시험문제에 꼭 낼 거라고 해서 열심히 빨간펜으로 칠해둔 족집게 예상문제 같은 저곳들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나는 한강을 사이에 두고 점점 붉게 물들어가는 서울을 보며 쓴 침을 삼켜야 했다.
아울러 방송에서는 집값을 잡기 위해 정서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고전적이고도 가장 손쉬운 방법인 '놀부는 나쁜 놈' 전략인데 이것은 역시 수많은 흥부들을 자극시키기에 충분했다.
주택임대사업자에게 너무 많은 혜택이 있다며 다주택자들의 또 다른 부의 축적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PD수첩 방송은 빅히트를 치며, 이후 임대사업자의 혜택을 대폭 축소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과 몇 주전까지도 다주택자들로 하여금 계속해서 임대주택으로 등록하라고 독려를 하더니 하루아침에 당근을 빼앗아버리는 정부는 내가 봐도 믿을 것이 못됐다. 게다가 흥부들 입을 빌려 놀부를 아주 나쁜 놈으로 만들어 버리더니 '국민 정서상'이란 이유로 마치 나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놀부의 입을 막아버렸다.
나는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그동안 정치는 이런 식으로 작동되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과거에 나는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었으므로 정치인들이 알아서 우리나라를 잘 들 꾸려나가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나는 처음으로 내가 관심 있는 분야의 정책이 세워지고 변화하는 과정을 지켜봄으로써 정치 또한 관심 있는 사람들의 눈에만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차원적인 방식으로 국민들을 이용하는 것이 정치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가두리 양식장에 갇힌 임대사업자들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이미 등록을 마친 경우는 기존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 '그럼 그렇지' 정도의 반응이었다. 그 보다는 앞으로는 어떤 틈새를 이용해 돈을 벌 수 있는지에 집중하는듯했다.
나부터도 '이제부터는 어떤 방법으로?'를 고민할 뿐 변화된 환경이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부동산 공부를 하면서 정부에 맞서지 말라는 이야기를 많이 접했던 나는 비로소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래 봤자 얻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부자가 되고 싶으면 정부의 규제를 탓하거나 바꾸려고 노력할 시간에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훨씬 이득이다. 이들은 잘잘못을 따지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할 뿐이다.
왜 우리나라의 각종 법과 규제가 이해하기 어렵고 땜질식인지 알 것 같았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들은 계속해서 틈을 찾아내고 정부는 미처 생각지 못한 부분을 다급하게 막는 과정이 반복되면서 법은 계속 누더기가 되어 간다.
나중엔 알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고 이것은 또한 새로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겐 장벽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여기서도 먼저 움직이는 놈이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늦게 진입할수록 규제는 촘촘해지고 장벽은 높아진다.
나는 그동안 투자했던 지역이 조정대상지역으로 편입되는 걸 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발만 늦었어도 좋은 혜택들을 많이 놓쳤을 거라 생각하니 내가 단점이라고 생각했던 급한 성격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내가 주택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아는 몇 안 되는 지인 중 한 사람이 물었다. 괜찮은 거냐, 이제 큰일 난 거 아니냐. 심지어 정부가 이렇게 난리니 이제 집값이 떨어질 거라며 나를 안쓰럽게 쳐다봤다.
그러나 지인이 나를 걱정해주는 그 순간 나는 내가 이미 이전과는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었음이 느껴졌다.
나도 예전엔 그랬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면서 아홉 시 뉴스에서 떠드는 게 진실이고 모든 모험은 위험하다고 생각한 시절이 불과 일이 년 전이다. 나는 이번 조치를 겪으면서 지인을 포함한 많은 흥부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