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코 내 발로 찾아가고 싶지 않았지만 명절이라 어쩔 수 없이 가야만 했던 그 집에, 나는 명절이 되기 직전, 밤 11시에 도착했다. 미루고 미루다 그 시간에 도착한 것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타향살이를 하고 있던 오빠와 언니는 이른 저녁에 도착해서 아버지와 새엄마와 함께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고, 아버지 혼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대문을 열어주며 샛노랗게 변한 나의 헤어스타일에 대해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나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헤어스타일이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방으로 들어가 씻지도 않고 이불을 펼쳐 누우려는데 아버지가 들어왔다. 그리고는 나를 내려다보며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 지금 당장 짐 싸서 다시 가라."
나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되지 않았다.
"너 그 꼴을 해서 내 딸이라고 이 동네를 돌아다닐 참이냐?"
아, 무슨 말인지 이제 알겠군! 대번에 아버지의 말을 파악했다. 나는 재빨리 이불을 다시 개고 가방을 들쳐 메었다. '죄송해요'라거나 막내딸 특유의 애교로 언짢아진 자신의 기분을 달래줄 거라 생각했던 어린 여식이, 자신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 미련없이 일어서자 아버지의 눈빛이 흔들렸다. 하지만 자존심만큼은 어디서도 지지 않을 아버지였다.
"내 집에 올거면 그런 꼬라지로는 안 돼. 머리 다시 까맣게 물들이고 옷차림도 단정하게 하고 와."
아버지는 내가 아직도 자신의 발 아래 존재한다고 믿고있는 모양이었다. 시키면 시키는대로 때리면 때리는대로 욕하면 욕하는대로, 자신이 뱉은 오물을 군말없이 받아내는, 여전히 힘없는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하며 대답했다.
"글쎄요. 이 집에 다시 올 일이 있을지 모르겠네요. 안그래도 오기 싫은거 오빠랑 언니 때문에 억지로 온 거였어요. 두번 다시 아버지 눈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바라던 바였어요."
나는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나서며 덧붙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꼭 드려야겠네요. 아버지가 우리에게 티끌만큼이라도 괜찮은 아버지였는지 생각해보세요. 아버지가 할머니에게 티끌만큼이라도 괜찮은 자식이었는지 생각해보세요."
나는 주저함이란 느껴지지 않는 빠른 걸음으로 그 집을 빠져나왔다. 현관에서부터 아버지가 따라 나와 나의 뒷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약간은 화난 척, 그렇게 아버지로부터 등을 돌리고 멀어졌다.
아버지는 대문 앞에 서서 멀어지는 나를 계속 보고 있었다. 아마 아버지도 알았을 것이다. 세 명의 자식 중 자신을 가장 많이 닮은 내가 스스로 뱉은 말을 번복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자신을 꼭 닮아 자존심만큼은 어디서도 지지 않을 저 아이가, 스스로 자존심을 굽히고 이 집에 돌아오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을. 이 밤이 저 아이를 보는 마지막 날이 되리라는 것을.
그럼에도 아버지는 나를 다시 불러세우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꼭 닮은 두 개의 자존심만이 팽팽하게 늘어서있을 뿐이었다.
코너를 돌아 아버지의 시야에서 벗어나자마자 나는 달렸다. 죽을 힘을 다해 달렸다. 아무렇지 않은척 쎈 척을 했지만, 사실은 죽을만큼 무서웠다. 아버지가 나에게 돌진할까봐 무서웠다. 나의 성장기 내내 그래왔던 것 처럼 아버지가 제 분을 못 이기고 폭력을 휘두를까봐 무서웠다. 이 밤에 이 길바닥에서 아버지의 허리띠에 짐승처럼 맞게 될까봐 무서웠다.
아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사실은 사실은, 나의 두려움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사실은 사실은...
아버지가 나에게 사과할까봐 무서웠다. 아버지가 자존심을 굽히고 나에게 부드러운 말을 할까봐 무서웠다. 그래서 영영 아버지와 새엄마에게서 벗어나지 못할까봐 무서웠다. 이 사람들 앞에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고 시덥잖은 농담을 하고,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고 명절마다 찾아와 친밀감을 코스프레 하고, 생일이나 어버이날마다 '낳아주고 길러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할까봐...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할까봐... 무서웠다.
나는 계속 달렸다. 폐가 찢어지도록 달렸다. 아버지가 나를 잡을 수 없도록 그 야심한 밤에 골목 골목을 돌며 멀리 멀리 도망쳤다...
이후로 20년 간,
나는 아버지와 새엄마를
단 한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먼 발치에서도 본 적이 없었다. 가족의 대소사와 경조사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의 결혼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일이 있었지만, 나는 가지 않았다. 오빠와 언니에게는 결혼식이 있기 한달 전부터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눈물로 호소했다.
화를 낼 것이라 예상했던 오빠는 그저 슬픈 목소리로 얘기했다. 일생에 한번뿐인 오빠 결혼식인데 와 줄 수 없겠느냐고...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은 그저 "오빠 미안해"가 전부였다.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날 수 없는 이유는 분노가 아닌 공포여서 이것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고. 아직도 그 사람들과 닮은 사람만 봐도 가슴이 막히고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고...
처음엔 자식된 도리를 운운하며 화를 내던 친척들도 시간이 흐르자 당연한 듯 나를 제외시켰다. 아버지가 참석하는 자리에는 나를 부르지 않았고, 내가 꼭 왔으면 하는 자리에는 아버지께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언니 오빠와 친척들의 보호 아래 아버지를 피할 수 있었다.
그랬는데...
"어, 오빠다. 어... 너한테 이런 말을 해야하는게 조심스럽긴 한데... 너도 미리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아서.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시거든. 오늘 내일 하시나봐. 언제 돌아가실지 몰라. 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다른 건 몰라도 그건... 너도 알아야 할 거 같아서..."
올해 7월,
오빠가 전화를 걸어 이런 소식을 전할 때까지만 해도 긴장하지 않았다.
그저,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나는 해외에 있었으면 좋겠다, 아주 오랫동안 해외에 있고 일년에 한 번도 귀국할 일이 없어서 언니 오빠가 아버지의 부음을 전달할 필요조차 느끼지 못했으면 좋겠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귀국했을때 '너 몰랐지? 아버지 몇 년 전에 돌아가셨어. 너는 어차피 올 수 없으니까 연락 안했어' 라는 뒤늦은 소식만 전해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바란 소원이 이뤄지지 않았구나... 그렇게만 생각했다.
그랬는데
그로부터 일주일 후,
이번에는 숙모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중환자실에 입원해 계신지 꽤 오래 되었다는 말로 시작된 숙모의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졌다.
지금 네 아버지는 의식도 없고 자가호흡도 어렵고 힘들게 명을 이어가고 있다... 원래 노환과 병환으로 숨이 꺼져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꼭 보고싶어하는 사람을 봐야만 돌아가시는 거라고 하더라... 내 생각에는 네 아버지가 너를 보고싶어서 이 생의 끈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서울에서 지방까지 주말마다 병문안을 가야하는 오빠와 언니도 힘들고... 의식도 없고 식사도 못하는데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네 아버지도 힘들테니... 네가 네 아버지 얼굴 한 번만 들여다 봐주면 안되겠니... 다들 편할 수 있도록 네가 도와주면 안 되겠니...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무엇을 결정한 것도 아닌데
벌써부터 눈물만 솟구쳤다.
그때가 오후 5시쯤이었다.
눈물이 명치를 때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스물셋의 그 밤에 마지막으로 그 집을 빠져나온 이후로도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단 한번도 벗어난 적 없었다. 불면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들이 줄줄이 이어졌고 그럴때마다 아버지와 새엄마에게 당했던 학대가 아직도 나를 따라다니며 고막을 찢고 뇌를 헤집어 놓았다.
3살때 친엄마가 돌아가시고 7살때 새엄마가 들어왔다. 이후로 우리 삼남매는 낮밤으로 새엄마와 술취한 아버지에게 두들겨 맞아야 했다.
초등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6살 터울인 오빠가 서울로 떠나고, 중학교를 졸업함과 동시에 3살 터울인 언니마저 서울로 떠나버렸다. 누군들 그 집에서 도망치고 싶지 않았을까. 오빠와 언니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들도 살아야 했으니까.
하지만 오빠도 없이 언니도 없이, 새엄마와 아버지의 폭력 속에 홀로 남아 살아야 했던 고등학교 3년은, 결국 나를 갈가리 찢어놓고야 말았다.
그랬는데... 나보고 그 사람을 만나달라고 한다. 그 사람이 편히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찌 해야 하는 것일까?
그 사람을 만나야 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이미 나를 집어삼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숙모와 전화를 끊은 오후 5시부터 퇴근시간인 6시까지 한 시간 동안 명치를 부여잡고 울다가, 남편의 부축을 받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해서 시어머니께 인사도 드리는둥 마는둥 방으로 들어가... 그대로 기절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