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_02

by 파란동화


아버지는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었다. 6인용 병실 6개를 합친 것 같은 넓은 그곳에, 말 그대로 '위중한' 환자들의 침대가 벽면을 따라 나란히 횡대로 줄지어 있는 곳이었다.




나의 조건은 두가지였다.

새엄마와 마주치지 않게 해줄 것.

그리고 언니가 함께 가줄 것.




첫번째 조건은 굳이 내가 요청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누군가 아버지 병문안을 가겠다고 하면 새엄마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안그래도 아버지의 오랜 병원생활에 지쳐있던 새엄마는 누군가 병원에 와주는 날이면 집에서 쉬고 싶어 했다고 한다.




두번째 조건은 병원의 운영 방침상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다. 망할놈의 코로나때문에 병문안은 하루에 딱 두 번, 한 번에 딱 30분씩, 한 번에 딱 한 사람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대신 언니는 중환자실 문앞에서 나를 기다려 주겠노라 했다. 어쨌든 병원에 함께 가주겠다 했다.




8월의 어느 일요일, 나는 시엄마께 아이들을 맡기고 집을 나섰다. 화장은 하지 않았다. 화장을 할 기분도 아니었고, 시도때도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 때문에 화장을 할 수도 없었다.




형부의 차가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세련되게 차려입은 언니가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언니는 조수석이 아닌, 뒷좌석의 내 옆에 앉았다. 그리고 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영 내키지 않으면 안가도 돼.

병실 앞에 도착해서도 마음이 바뀌면 얘기 해.

굳이 안 들어가도 되니까. 너는 너만 생각 해.

숙모가 하신 말씀 때문에 억지로 갈 필요는 없어. 알았지?"




나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까지 가는 동안 나는 말이 없다가, 병원 주차장에 도착해서야 폭풍 눈물을 쏟아내며 왜 모든 마음의 짐은 피해자의 몫인지 모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한 평생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데, 그 기억을 털어내지도 못했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다고 나를 욕해. 그래도 너를 낳아준 아버지가 아니냐, 그래도 너를 길러준 새엄마가 아니냐,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니가 어떻게 태어났겠냐, 자식된 도리로 그럴순 없는거다 라고 말해. 내가 당한 고통에 대해서는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보고만 독한년이라고 손가락질을 해. 그 사람이 내 아버지라는 이유로 나는 용서하지 않을 권리마저 박탈당했어.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해? 잘못을 저지른건 그 사람인데 왜 내가 욕을 먹으면서 살아야 해? 왜 나만 이렇게 고통받으면서 살아야 하는 거냐고!"




언니는 다급히 나를 안아주며 말했다.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해. 숙모도 너한테 그렇게 말하고 나서 계속 미안해 하고 계셔. 나한테 전화 와서 너 좀 살펴주라고 부탁하셨어. 우리가 어떻게 컸는지 아는 사람들은 그렇게 말 안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우리에 대해 자세히 모르는 사람들뿐이야. 그런 사람들의 말은 들을 필요 없잖아. 너는 너만 생각해. 다른 사람들 말은 듣지 말고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돼. 강요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언니는 지금이라도 차를 돌려 집으로 돌아가도 된다고 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눈물을 닦았다. 그리고 차에서 내려 병실로 향했다. 그러는 동안 언니는 계속 나의 어깨를 안아주고 있었다.










"들어갈 수 있겠어?" 언니가 물었다.




"응." 내가 대답했다.




"6번 침상이야. 왼쪽 벽으로 입구에서부터 1번 침대니까 이쪽으로 쭉 가면 돼."




나는 언니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두 개의 자동문을 거쳐 아버지가 누워있는 중환자실로 향했다.




처음부터 나의 시선은 침대 위쪽에 걸려있는 숫자만을 향해 있었다. 2, 3, 4, 5... 그리고... 6... 거기서 시선을 떨구지 말았어야 했다. 끝까지 숫자만 보고 걸었으면 되었을 것을... 거기서 그만 시선을 내려 숫자가 아닌 침대 위의 아버지를 본 것이 나의 실수였다.




아니다. 나의 가장 큰 실수는

생각보다 내가 용감하고 강단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




나의 걸음은 3번 침상 앞에서 딱 멈추어 버렸다. 거기서 6번 침상에 누워 있는 아버지의 옆 얼굴을 본 순간, 다리가 굳어버렸다. 온 몸이 굳어버렸다. 아무리 노력해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 곳에 서서 손에 쥔 휴지만 쥐어 뜯고 있었다. 오한이 든 듯 지랄같이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눈물이 쉬지 않고 쏟아지고 있었다.




산소 콧줄을 두른 아버지는 눈을 감고 있었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는 아버지의 비스듬한 옆 얼굴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런데도... 그 얼굴이 너무나 무서웠다. 늙고 약하고 병색이 가득함에도 여전히 무서운 얼굴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늙고 약하고 병색 가득한 몸뚱이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허리띠를 휘두를 것만 같았다. 나에게 욕을 하고 빌어먹을년이 여긴 왜 왔냐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다.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도, 그렇다고 등을 돌려 되돌아 나가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 서서 계속 울고만 있었다. 몸은 점점 뒤틀리듯 떨리고 신음소리같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왔다. 간호사들이 나를 흘끔 거리다가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가씨 왜 여기 서 있는 거에요?

누구 보호자에요? 누구 만나러 왔어요?"




중년의 의사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대답 대신 덜덜 떨며 6번 침상을 가리켰다.




"안ㅇㅇ 환자분 보호자에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 딸... 이요..."




간호사들의 수군거림이 더욱 커졌다. '어? 저 분 딸은 저렇게 안 생겼는데?'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딸 맞아요?"




의사가 내게 다시 물었다.




"네.... 막내딸이요..."




그제야 의사는 나의 팔꿈치를 당겨 아버지 앞에 나를 데려갔다. 아니, 끌고 갔다. 의사는 내가 아버지의 병약한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 것인지, 지금은 이렇지만 곧 나을 거다, 점점 좋아지고 있다, 곧 일반 병실로 옮길거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하는 말들을 쉬지 않고 쏟아내었다.




"할아버지, 정신 차려 보세요. 눈 떠보세요.

여기 딸이 왔네요. 할아버지 막내딸이래요."




의사가 아버지의 가슴팍을 세게 흔들며 말했다. 아버지가 눈을 떠 나를 바라볼까봐, 그 눈과 내 눈이 마주치게 될까봐, 그리하여 그가 나를 알아보게 될까봐... 너무 무서웠다. 너무 너무 무서웠다. 주저앉고 싶었다. 사라지고 싶었다. 하지만 의사는 아직도 나의 팔꿈치를 잡고 있었다. 내가 도망가지 못하게 잡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쓰러지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일까?




의사가 뭐라고 뭐라고 내게 질문을 했다. 질문이 뭐였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이렇게 대답하고 있었다.




"너무 무서워요... 아버지 얼굴 보는 것도 무서워요..."




"네? 왜요?"




"...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 학대를 너무 심하게 당했어요... 무서워요..."




의사는 아까보다 더욱 세게 나의 팔꿈치를 잡아 끌고, 이번에는 병실 출입문 쪽으로 향했다. 나는 이번에도 의사에게 끌려갔다. 의사는 말했다.




"그런데 왜 왔어요?"




글쎄요... 제가 왜... 왔을까요?

모르겠다. 나도 내가 왜 왔는지.




첫 번째 자동문이 열리고 두 번째 자동문이 열리자 언니가 화다닥 내게로 뛰어왔다. 의사는 수화물을 던지듯 언니에게 나를 전해주고 휭 하니 돌아 들어갔다. 나는 여전히 펑펑 울고 있었고 걱정스레 나를 기다리던 언니는 나의 얼굴을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다 끝났어...

너는 니 할 일 다 했어...

고생했어... 정말 고생했어..."




그로부터 정확히 3주 후,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올해 7월부터 9월까지 있었던 일이다.

그리고 지금은 12월이 되었다.




이제는 정말 다 끝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아무리 노력해도 하늘을 날 수 없었던 것은, 나의 발목에 가느다란 실 하나가 묶여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실 하나가 나를 묶어두고 오도가도 못하게 했었다. 죽을 힘을 다해 파닥거려도 나는 하늘을 날 수 없었다. 아버지를 피해 멀리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했지만, 아버지에게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나는 안다.




하지만 이제 다 끝났다.

정말로 다 끝났다.




앞으로도 내가 하늘을 날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버지 때문이 아니다.

나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로 끝을 낼 것이다.

과거의 나와 결별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아버지의 딸이 아닌

나의 인생을 살아갈 것이다.










힘든 글임에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올 한해, 제 자신에 대한 글을 참 많이도 썼습니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이젠 과거에 대한 넋두리는 집어 치우려구요.




2022년에는

나를 위한 글이 아닌

읽는 사람을 위한 글을 쓰고 싶습니다.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젠 다 털어낸 것 같습니다.




언제나 저를 응원해주시는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언제나 저를 보호해준 가족들과 친척분들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죽고 싶었던 순간마다 저를 붙들어 준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과 연둣빛의 나무와 숲에도 감사를 전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있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살아가기에 참 좋은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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