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종주를 계속 이어갈 수 있을까?

by 파란동화


고백하는데 나는 길치에 방향치다. 살던 동네에서도 매일 다니던 경로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길을 잃고, 지하로 내려가면 방향감각은 더욱 심각해져서 원하는 출구를 한번에 찾아내지 못한다.



지도를 보면서 눈 앞의 길을 봐도 왜 여기가 거기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런 내가 동행도 없이 홀로 산을 타는 것이다.



산에서는 길을 잃어도 상관이 없었다. 목적지는 언제든 수정하면 되었고 나는 시간이 남아도는 백수였으니까. 그리고 우리나라 산은 정말이지 등산로 정비가 잘 되어 있다!



우리나라 산은 등산로도 널찍하고 돌계단이나 데크길 정비도 잘 되어있고, 중간중간 전망대도 조성되어 있으며, 500m나 1km에 한번씩 이정표가 나타난다. 아무리 초보라도 혼자서 산행을 하는데 무리가 없다.



그런데 그것은 국립공원이나 도립공원,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명한 산일때만 적용되는 것이었다. 지리산과 덕유산, 유명 국립공원만 다녀봤던 나는 백두대간도 국립공원만큼 수월할 줄 알았다. 융단처럼 펼쳐진 등산로를 그저 걷기만 하면 되는줄 알았던 것이다.



나에게 백두대간을 알려주었던 언니 말로는, 백두대간 코스마다 대간 타는 사람들이 리본을 달아놓는다고 했다. 그래서 등산로가 여러갈래로 나뉘는 지점에서는 백두대간 리본만 따라가면 되며, 그렇기 때문에 '절대' 길을 잃을 염려는 없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왜

대간길의 시작점조차 찾지 못하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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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러들의 리본은 커녕 등산로 입구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기가 아닌가? 한참을 헤매다가 드디어 길을 찾았는데, 알고보니 백두대간 기념비에 정신이 팔린 내가 등산로 입구를 놓쳐버린 것이었다. 사실은 딱 보면 보이는 곳이었는데 말이다.



이렇듯 눈 앞에 뻔히 보이는 것도 이상하게 내 눈에만 보이지 않는 경우가 계속 생겼다. 그러니 처음 접하는 낯선 길이 순탄할 리 없었다.



백두대간은 강원도 고성의 진부령에서 시작하여 설악산과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속리산 덕유산을 거쳐, 경남 산청과 함양이 맞닿아 있는 지리산 천왕봉에서 끝이 난다. 우리가 어릴때 사회시간에 배웠던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합친 것이 바로 '백두대간'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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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잠깐!

우리나라 지형을 14개의 산맥으로 분류한 것은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 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태백산맥 소백산맥은 일제교육의 잔재인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 지형을 1대간 13정맥으로 분류한 것은 조선 영조때 '신경준' 이 편찬한 『산경표』 가 기준이다.

일본 학자의 14산맥은 땅 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고 (우리나라의 자원 수탈을 위해 조사한 것으로 보인다)

1대간 13정맥은 땅 위의 지형을 기준으로 분류한 것이니 '산 맥'을 얘기할 때는 1대간 13정맥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참고 : www.openchang.com/news/articleView.html?idxno=22085



진부령에서 지리산으로 향하는 걸음을 남쪽으로 향한다 하여 '남진' 이라 하고, 지리산에서 진부령으로 향하는 걸음을 북쪽으로 향한다 하여 '북진' 이라 하는데



처음 나에게 백두대간을 알려준 언니는 지리산에서 시작해서 '북진' 중이었고, 당시 서울에서 살고 있던 나는 가까운 고성에서 시작하는 '남진' 을 택했다.



강원도 고성의 진부령에서 시작하는 백두대간 남진은 '마산봉'을 첫번째 목적지로 한다. 말의 모양을 닮은 馬山 의 정상이 마산봉이다.



산 하나 타는 것이 무에 그리 어려웠던 것인지, 나는 등산로 입구를 찾지 못해서 시작부터 산비탈을 헤치고 올라가서 마산봉 정상석을 카메라에 담은 후 또 다시 길을 잃고 산비탈을 헤매고 있었다. 이쯤 되고보니 그렇게 길을 잃는 와중에도 정상석을 찾아낸 것이 오히려 기적이었달까.



평일의 대간길에서는 아침부터 밤까지 하루종일 걸어도 산객 한명 만날 일이 없다더니 과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진부령에서부터 마산봉을 오르고 정상석에서 아래쪽으로 내려가기까지 사람의 그림자도 보지 못했다. 누군가 만나면 대간길 입구라도 물어볼텐데 시골의 마을길에서도 사람이라곤 만나지 못했다.



그래, 사실은 내가 원한것이 이런것이기는 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조용히 지내길 바랐던 것이다. 사람도 미디어도 없는 곳에서 자연의 소리만 듣고 싶었다. 사람의 소리는 내가 내쉬는 숨소리만 있으면 그걸로 된다 싶었다.



하지만 계속해서 길을 잃어 경사가 가파른 산비탈에서 마른흙과 자갈때문에 쭉쭉 미끄러지기만 하는 산행은 진정 내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나는 좀 편하게 걷고 싶었다. 아무도 없는 깊은 산길을 편하게 걸으며 머릿속을 비워내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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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알고보니 마산봉에서 병풍바위를 지나 동쪽으로 이동하는 것이 대간길인데 나는 그 길을 놓치고 남쪽으로 직진을 했다. 남쪽으로 직진이라니. 모든 경로를 뚫고 그대로 지리산으로 직행하려던 게 아니라면 도대체 뭐였을까. 이럴거면 도대체 나침반은 왜 구매했단 말인가!



대간길 첫날부터 엄청나게 알바를 하고 (가고자 하는 방향에서 이탈하여 산에서 길을 잃는 것을 '알바한다' 고 하는데, 왜 그렇게 표현하는 것인지는 나도 모른다.) 산비탈에서 나무기둥을 껴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산이 왜 이래... 길이 왜 이래...

나한테 길 좀 알려줘... 제발 알려달란 말이야!"



하지만 나무는 말이 없었고 나는 엉엉 울면서 이 나무 저 나무를 껴안으며 산길을 내려와야 했다. 너무 심한 비탈길에 자갈길이라 발이 계속 미끄러져 나무를 껴안지 않으면 그대로 굴러서 갈비뼈가 으스러질 것 같았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해까지 지고 있었다. 계속 비탈을 내려가느라 가방을 내려 헤드랜턴을 꺼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하면서 내려가다 눈 앞에 막이 쳐진 것 처럼 보이지 않게 되자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배낭을 내려 랜턴을 찾았다. 그런데 니미랄! 도대체 랜턴을 어디다 쑤셔넣은 것인지 찾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허겁지겁 가방을 뒤졌다. 해가 기울어 사물이 거의 분간되지 않았기에 정말로 정신이 반쯤 나갔었다. 드디어 랜턴을 찾아 불을 밝히고 시계를 봤을 때가 오후 5시 50분. 아직 6시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나 어두웠던 것이다.



그러고도 50분이나 더 비탈을 내려온 후에야 드디어 평평한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고 싸구려 랜턴은 그저 희미한 빛을 보여줄 뿐이었다. 랜턴 불빛으로는 이것이 아직도 비탈인지 평지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고, 발에 닿는 감각이 평지임을 알려주고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나는 드디어 무릎을 펴고 제대로 걸을 수 있었다.



참았던 숨이 일시에 터져나왔고 그와 동시에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귀에 잡혔다. 나는 물소리가 더욱 크게 들리는 방향으로 걸었다. 희미한 랜턴의 불빛은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달빛에 반짝이는 계곡물을 보았을 때 드디어 살았다 싶었다. 눈물은 이미 씨가 말라버렸고 나오는건 한숨 뿐이었다. 희미한 랜턴 불빛에 의지해 배낭을 내리고 텐트를 쳤다.



나의 텐트는 겨우 몸 하나 누일 수 있는 1인용 비비쌕 이었는데, 무게도 가볍고 부피도 작은데다 설치한 이후에도 여전히 작은 그런것이었다. 입구가 낮아서 들어갈 때도 누우면서 들어가야 했고 식사는 반드시 텐트 밖에서만 해야하는 그런 것. 그 작은 텐트 하나 설치하는데도 기합인지 신음인지 모를 나의 소리가 온 산을 울렸다.



텐트를 설치하고 침낭을 펼치는 그 단순한 행동도 기력을 쥐어짜서 해야 했다. 더이상은 꼼짝달싹 할 수 없었다. 방석도 깔지않고 맨바닥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밥을 지으려면 물이 필요했고 그러려면 아래의 계곡물을 떠와야 했다. 그런데... 그런데... 도저히 힘이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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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밥짓기를 포기하고 250ml의 물에 오뚜기 간편육개장 블럭을 넣어 국을 만들었다. 그리고 국물만 후루룩 마셨다. 다 먹은 코펠과 버너를 정리하지도 않고 텐트 안으로 기어들어가 기지개를 켜듯 다리를 쭉 뻗었다. 무릎 위 근육이 찢어질 것 같았다.



텐트에 누워 나뭇잎 사이로 비쳐드는 달빛을 보았다. 종주고 나발이고 다 때려치고 싶었다. 인적없는 자연에서 머리를 비워내려고 종주를 시작했는데 머리를 비우기는 커녕 첫날부터 일년치 스트레스가 한번에 몰려왔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내가 가는 길은 왜 이렇게 힘들기만 한 것인가?

이놈의 팔자는 도시에서도 산에서도 길이 아닌 곳으로만 나를 끌고 가는구나



그래

도시에서 힘겨웠던 인생이

산에서라고 순탄할 리 없지

환경이 바뀌어도 '나' 라는 사람은 그대로니까



눈을 감았다. 다 말라버렸다고 생각한 눈물이 또 다시 흘러내렸다. 그렇게 대간 종주의 첫번째 날이 끝나고 있었다.





< 오늘의 백두대간 >

고산자 지도/ 북쪽에서 남쪽방향으로
총 24구간 중
24구간
(남쪽 끝이 1, 북쪽 끝이 24)

진행 구간 : 진부령(강원도 고성군) - 알프스 리조트 - 마산봉 - 병풍바위 - 길을 잃고 계곡 옆에서 비박 (나중에 알게된 정보에 의하면 '마장터'라는 곳에서 비박을 했던 것 같다)

진행 날짜 : 2011년 10월 3일 / 월요일

episode04.png?type=w1 * 지도 : 고산자의 후예들/ 백두대간24 *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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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부터 밝지 못한 마무리

죄송해요. ^^,,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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