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산에서 내려오지 않는 방법

by 파란동화


산도 좋아했지만 집콕도 좋아했던 나는 한번 집에 들어가면 좀처럼 나오기 힘들었기 때문에 이왕이면 오래오래 산행을 이어갈 수 있도록 일정을 짰다. 그럼에도 하산해서 집으로 돌아올 때면 언제나 아쉬웠다.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계속 등산만 하는 방법은 없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덕유산을 올랐던 어느 날이었다. 향적봉 대피소에 미리 예약을 해두고 오후부터 산행을 시작했는데, 아침부터 햇볕 쨍쨍 숨도 못 쉴 정도로 덥던 여름 날씨가 어느 순간부터 비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날은 비만 내린 것이 아니었다. 한여름이었는데도 바람이 엄청 거세었고 우비를 입고 땀을 뻘뻘 흘리는 된비알을 오르면서도 추위로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였다.



이런 날씨에 등산이라니 조난 당하기 딱 좋겠네, 라는 생각을 하며 향적봉 대피소에 도착한 것이 아마도 7시 전후였을 것이다. 아직도 밝아야 할 한여름의 저녁시간인데도 그날은 한밤처럼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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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대피소에는 나보다 먼저 도착한 커플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나에게 물을 나누어 주었다.



"여기 대피소는 음수대까지 거리가 멀어서 오늘 같은 날씨에는 가기 힘들 거예요. 다행히 우리가 물을 많이 받아왔거든요. 남으면 어차피 버려야 하니까 이걸로 저녁 지어 드세요."



오! 이럴 수가!

이 날씨에 산에서 물을 선물받다니!

이 언니는 분명 천사일 거야!



등산을 해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산에서는 물이 제일 귀하고 등산배낭은 항상 물 때문에 무거워지는 법이다.



천사임에 틀림없는 커플은 나에게 물 사용권을 주고 서둘러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내가 도착했을 시간에 이미 저녁식사를 모두 마치고 난 이후였던 것이다. 아무도 없는 취사장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먹었다. 몸은 으슬으슬 떨렸지만 마음만은 따뜻했다.



식사를 마치고 대피소 안으로 들어갔더니 그들은 침낭을 깔고 누워있었다. 커플 중 남자는 잠을 청하는 듯 눈을 감고 있었고, 여자는 엎드려 누워 지도를 보고 있었다. 그날의 대피소에는 그들과 나, 우리 셋이 전부였다.



물을 나눠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며 여자 곁으로 갔다.


"근데 언니, 이건 다 뭐예요?"


여자가 들여다보고 있던 지도는 한 장이 아니라 다발이었다. 10장이 넘는 지도를 펼쳐놓고 있었던 것이다. 하룻밤 등산에 지도를 10장이나 펼쳐놓고 있는 게 신기했다.



"아~ 이건 백두대간 지도에요.

우리 백두대간 종주 하고 있어요."



"그게 뭐예요?"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등산으로만 가는 거예요. 우리나라 등산로가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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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 말도 안 돼요. 우리나라 고속도로가 얼마나 잘 닦여 있는데요. 전라도 경상도에서 강원도까지 어떻게 산이 다 연결돼요? 말도 안 돼."



"신기하죠? 근데 그게 말이 돼요. 고속도로는 백두대간 등산로 아래로만 가거든요. 고속도로는 터널로 연결되고 백두대간은 터널 위로 이어지는 거예요. 우리는 그 길을 걸어서 설악산까지 가는 거고요."



그런 것이 있다고? 믿을 수 없었다. 지리산을 시작으로 등산에 입문한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던 나는 '백두대간' 이라는 단어조차 처음 들었었다. 그런데 그 백두대간이라는 것이 하나로 다 연결되어 있다고?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 등산으로만 갈 수 있다고? 이것은 뭔가 말도 안 되는 허황된 신기루를 설명하는 것 같았다.



"상상해봐요.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산으로만 다닐 수 있는 거예요.

대단하죠?"



그 언니의 마지막 말이 내 심장에 불을 지폈다. 마을로 내려오지 않고 산으로만 산으로만 다닐 수 있다는 말. 내가 찾고 있던 것이 바로 그런 거였잖아!



다음날 서울로 돌아오자마자 그 언니가 보여줬던 백두대간 등산지도를 주문했다. 그리고 해외여행 비행기 티켓값으로 생각해두었던 돈으로 비박 산행에 필요한 장비를 사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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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3일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강원도 고성에 있었다. 등에는 배낭이 있었고 그 안에는 텐트와 침낭도 들어있었다. 그리고 내 손에 들린 것은 '백두대간 등산지도' 였다.



지리산을 시작으로 등산을 시작한 지

3개월째 되는 날이었다.





「한번쯤은 도망쳐도 괜찮아」


- 3 -



이 두근거림 뭐죠? ㅎㅎ

처음 백두대간 타던 날 만큼

심장이 콩닥콩닥 ㅎㅎㅎ


월화 목금 주4일 연재합니다.

다음주 월요일에 다시 만나요~






파란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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