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캠핑을 갑니다] 열 번째 이야기_1
유난히 태풍이 많았던 여름을 보내고, 여전히 정신없는 현생을 살다 보니 어느새 아침과 저녁 기온이 뚝 떨어지면서 하늘이 파랗게 깊어지기 시작했다.
가을이다.
어느덧 우리가 캠핑을 시작한 지 일 년 하고도 오 개월이 흘러 있었다. 대충 세어보니 그동안 스무 번 남짓 캠핑을 다닌 것 같았다. 게 중의 대부분은 우리 가족만의 시간이어서 행복했고, 때론 가족과 함께, 때론 캠핑에서 만난 인연과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분명 그 하루하루를 보낼 당시 그것은 하루의 무게감이었을 텐데, 지나고 나서 돌아보면 왜 이렇게 깃털처럼 가볍기만 한 것인지. 거세게 불어오는 세월의 바람에 그날의 깃털은 한낱 티끌이 되어 추억을 흩날리듯 날아가 버린다. 이미 지나간 것은 잡고 싶어도 절대 잡을 수 없게.......
원하든 원하지 않든 시간은 착실하게 흐르고, 마침내 우리가 가장 사랑했던 가을 시즌이 돌아왔다.
이번 가을 캠핑은 자동차 모임 카페에서 주최하는 정식 캠핑(일명 정캠)에 참여하기로 했다. 거의 일 년 만이었다. 그동안 모임 카페에서는 한 번의 정식 캠핑과 또 한 번의 이벤트 캠핑을 주최한 후였다. 물론 두 번의 캠핑 모두 참여하고 싶었지만 한 번은 일정이 맞지 않아서, 또 한 번은 선착순이 순식간에 마감되어버리는 바람에 실패하고 말았었다. 그 때문에 이번 정식 캠핑은 꼭 참여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었고, 오픈하자마자 일찍부터 신청을 마쳤다.
대략 일 년여 전 처음 시작하여 지금까지 흘러왔던 우리들의 캠핑 이야기처럼, 비슷한 시기에 시작된 카페 정캠 역시 몇 번의 캠핑을 거치며 몰라보게 성장했다.
처음에는 딱히 주최 '팀'이라고 부를만한 것이 없었지만, 이젠 주최자를 주축으로 함께 행사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스태프 팀이 생겼다. 모두 카페 회원들로, 스스로 자청해서 스태프가 되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또 놀라웠던 것은 카페 정캠 행사를 협찬해주는 기업들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건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이렇게 공식 기업에서 협찬하는 행사는 이름난 페스티벌이나 잡지사 등에서 추진하는 행사쯤에만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적이라고 하면 사적일 수 있는 모임 카페의 캠핑에도 협찬을 해주다니 말이다. 듣자 하니 규모가 더 크고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들이 많은 동호회 모임일수록 협찬해주는 기업도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그것 나름 기업의 마케팅 전략이겠구나 싶었다. 원래 사보고 써본 사람이 구매할 확률이 높다. 캠핑용품은 더더욱 그랬다.
"카페 행사 규모가 정말 커졌네."
"응. 유벤투스님이 판을 키웠어."
남편이 보내온 캡처 이미지를 보고 놀란 내 말에 남편이 대답했다. 유벤투스님은 카페 캠핑 행사를 도맡아서 하고 계신 분이었다(4화 참조).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번 행사의 모든 협찬을 직접 받아오셨다고 했다. 그분은 우리 카페 정캠을 시작하신 선구자(?)이셨기 때문에 굉장히 열정적인 분이라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이제 보니 행동력 또한 타의 추종을 불가하는 분이었다. 적어도 우리 카페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분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말이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다.
놀랄만한 것은 또 있었다. 정캠에 공식적인 프로그램이 생겼다는 것이었다. 이름난 페스티벌처럼 2박 3일을 시간 단위로 잘라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색적인 카누 체험이나 카페 회원들이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까지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모두 다 이번 정캠을 주관하고 있는 스태프 팀이 다양한 의견을 내어 만든 프로그램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반가운 소식이 있었다.
이번 정캠이 열리는 장소는 다름 아닌 황금박쥐 캠핑장이었다. 우리 가족이 가장 처음 캠핑을 시작했던 그 장소. 지금도 그날 어느 자리에 어떻게 텐트를 쳤는지 설명하라면 할 수 있을 만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는 그곳에, 카페 정캠으로 일 년여 만에 다시 찾게 된다는 사실이 별거 아닌데도 이상하게 설레게 만들었다. 그곳에 특별한 추억을 두고 온 것도 아니었는데, 그 처음이라는 단어의 마법은 지금 다시 떠올려봐도 웃음 짓게 만들어버린다.
이거 어때?
캠핑을 앞둔 어느 날 남편이 폰을 들어 무언가를 보여줬다. 눈을 돌려보니 그것은 이번 정캠을 생각하면서 남편이 직접 그린 일러스트였다.
"오~ 잘 그렸다."
"여기 이 사람이 유벤투스님이고 이쪽은 김장군님, 그리고 이쪽은 고아웃님."
남편이 말하는 그분들을 많이 봐온 것은 절대 아니었지만, 그림을 보니 그분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분들의 특징을 잘 캐치해 그렸기 때문이었다.
"카페에도 올려~."
내 말에 남편은 곧바로 커뮤니티에 올리는 듯했고, 그 그림은 기쁘게도 이번 카페 정캠의 이미지로 활용되었다.
시간은 흐르고, 드디어 그날이 되었다.
출발은 다소 늦었다. 마음은 이미 캠핑장에 가 있었지만 생각만큼 준비가 빨리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캠핑장에 가서 먹을 김밥과 커피 등을 사 가느라고 예상보다 더 늦게 되었다.
몇 번의 캠핑으로 어느새 익숙해진 도로를 따라 한참을 달려보니 캠핑장 인근 길목마다 걸려 있는 정캠 현수막이 보였다. 이렇게 현수막을 걸어둘 줄은 전혀 몰랐기 때문에 그걸 발견한 순간 조금 놀랐다. 이내 반갑고 설레기 시작했다. 드디어 기다렸던 캠핑이 시작되는 것 같아서 말이다.
언젠가 본 적 있던 굴다리를 지나 캠핑장 안으로 들어가니 이미 선발대로 와 있던 회원분들께서 명찰과 웰컴 기프트 등이 담긴 백을 건네주셨다. 모두 이번 정캠의 스태프로 자원해주신 분들이었다. 그중에는 언젠가 본 적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오늘 처음 보게 된 사람도 있었다.
"저 안쪽으로 가셔서 원하시는 자리에 (텐트를) 치시면 됩니다."
스태프의 안내에 저 멀리 안쪽을 바라보니 기억에 남아 있는 익숙한 실루엣이 보였다.
"고아웃님이다!"
나도 모르게 소리치자 스태프분들께서 약간 놀라신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 표정에 순간 내가 잘못 봤나 싶어 ‘아닌가요?’했는데, 다행히도 맞는 듯했다. 뒤늦게 생각해보니 남편도 아니고 내가 너무 반가워한 건 아닌가 하고 아차 싶었다. 왜인지 정말 알 수 없지만 남편의 카페 모임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이상하게 친근했다. 내가 다 기억에 남아 무의식적으로 반응할 정도로 말이다.
차를 몰아 안쪽으로 다가가니 멀리서 봤던 그 인영은 내 예상대로 고아웃님이 맞았다. 큰 키에 작은 얼굴, 구릿빛 피부에 긴 팔다리. 일 년 전 봤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하니 그 또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차를 한편에 세우고 어디에 텐트를 칠지 고민했다. 왼쪽에 있는 파쇄석 사이트는 우리가 첫 캠핑 때 첫 텐트를 쳤던 자리였고, 오른쪽에 있는 잔디 사이트는 오후 시간대에 그늘이 져서 해가 좀 가려지는 자리였다. 우리가 고민하고 있자 이번 캠핑의 스태프로 자원하여 먼저 와 있었던 고아웃님이 조언했다.
"아직 해가 뜨거워서 그늘 쪽에 치는 게 좋을 거예요. 써니님 옆에 쳐도 되고, 아니면 이쪽 파쇄석에 쳐도 되고."
써니님은 우리와 같은 차종을 모는 오너분이었다. 혼자서 돔 형 텐트를 치고 계셨는데 처음 뵙는 분이었다. 우리는 가볍게 인사하고 써니님의 바로 옆에 집을 짓기로 결정했다. 날씨가 가을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아직 한낮의 해는 제법 뜨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늘이 지는 잔디 사이트에 짐을 내려 풀기 시작했다.
황금박쥐 캠핑장의 장점은 무척 많은데 그중에서도 좋은 점 하나는 사이트 바로 앞에 차를 대고 짐을 내려 텐트를 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사이트가 차를 세워둔 그라운드보다 높았기 때문에 짐을 내리고 세팅하는데 힘이 많이 들지 않았다. 그래서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롭게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우리는 마치 소풍을 나온 것처럼 테이블과 의자를 펼치고 앉아 오는 길에 사 온 김밥을 꺼냈다. 커피와 김밥도 꽤나 괜찮은 조합이라며 한입 두입 먹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의 사람이 다가왔다.
김장군님이었다.
김장군님은 우리가 참여했던 첫 번째 정캠과 두 번째 정캠에서 봤던 분이었다. 그는 항상 특별한 재능으로 정캠의 행사 리드를 해주시고 계셨다. 마치 전직 엔터테인먼트 행사요원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연예인 뺨치는 진행 솜씨도 그렇고, 청산유수처럼 흘러나오는 말솜씨는 타의 추종을 불가했다. 적당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적확한 단어와 말들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이건 정말 타고난 기프트(Gift)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리고 이건 정말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지만 김장군님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에게든 먼저 다가간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두 번의 앞선 캠핑에서도 그리고 이번 정캠에서도 그는 항상 캠핑에 참여한 다양한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참여했던 첫 캠핑에서도 그는 그랬다. 우리 텐트에 있기를 고집하는 아들 덕분에 다른 사람들은 모여 밥을 먹을 때 우리만 따로 텐트에 있었을 때에도 먼저 다가와서 이야기를 건네던 분이 김장군님이었다. 언제나 눈을 돌려보면 그는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건 정말 큰 장점이었다. 우리처럼 내향적인 사람들일수록 더욱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커다란 장점.
아! 그러고 보니 그래서 김장군님인걸까. 이제 생각해보니 닉네임이 너무 적절하다.
한참 집을 지으며 아들과 놀고 있는데 익숙한 아이가 다가왔다. 고아웃님의 아들이었다. 작년에만 해도 더 작고 귀여웠는데, 일 년 사이에 키도 많이 크고 말도 하고 있었다. 아주 귀여워서 나도 모르게 꼭 껴안아주고 싶은 말투로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는 작년엔 없었던 여동생도 함께였다. 분명 첫 번째 캠핑에서 와이프님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어느새 태어나 오빠를 졸졸 쫒아다니는 아이가 되어 있었다.
아들보다 두 살 어린 꼬마였지만 성별이 같은 남자인지라 바퀴 달린 것과 변신하는 것에 반응하긴 마찬가지였다. 필연적으로 서로의 장난감에 빠져든 아이들은 로봇과 자동차로 가득히 쌓아놓고 텐트 안에서 놀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텐트 안이 키즈카페가 되어버렸다. 애써 잘 펴놓았던 이불들이 흐트러졌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너희들끼리 잘만 놀아준다면야 뭔들 상관있을까.
집을 지을 때만 해도 덥게만 느껴졌던 햇빛이 어느새 사그라졌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한기에 벗어두었던 옷을 하나둘 껴입으니 해가 지고 있었다. 슬슬 밥을 해 먹어야겠단 생각에 냄비에 밥을 올리고 수육을 하기 위해 물에 된장을 풀어 끓이기 시작했다. 첫날은 정해진 프로그램이 없었으므로 자유롭게 저녁을 먹을 거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한참 밥을 준비하는데 중앙에서 같이 모여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누자는 의견을 들었다. 그래서 우리는 끓이던 수육과 밥을 들고 중앙으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가 집을 짓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캠핑장에는 꽤 많은 분들이 모여 있었다. 두 번의 카페 캠핑을 놓쳐서인지 그중의 대부분은 처음 보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각자 닉네임이 적힌 명찰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색하지 않게 말을 건낼 수 있었다.
오늘 처음 첫 텐트를 쳐본 부부.
얼마 전 캐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부부.
번캠 한번 참여해보고 곧바로 캠핑카를 사버린 가족.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지면서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각자 캠핑을 시작한 이유도 다르고 목적도 달랐으며 추구하는 모습도 달랐지만, 그들 속에서 같이 이야기를 할수록 느껴지는 것은 단 하나였다.
그건 캠핑에 대한 애정이었다.
첫날밤은 특별한 프로그램도 없었지만 각자만의 이야기들을 나누는 데에도 시간은 금세 한밤으로 향했다. 그리고 중간중간 아이들의 재롱들과 막간 이벤트 등으로 전혀 심심하지 않은 밤을 보낼 수 있었다. 물론 아이들과 놀아주느라 달리기를 수십 번 해야만 했던 고통은 어쩔 수 없었던 것으로......
*10화는 2개의 이야기로 나누어서 연재됩니다. 2부에서 만나요.
**새해를 핑계로 글을 남겨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에는 바라는 일 중 한 가지라도 이루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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