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냥 육아 너머 가치생 살기
나도 한때는 유행에 뒤처지지 않던 젊은이었다. 유행하는 옷, 유명한 카페, 내가 찍어 올린 전시회를 보고 누군가 정보를 물어보고 내가 쓰는 화장품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었다. 예쁜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누군가 나를 보며 예쁘다고 하면 더 기분이 좋아지던 그 시절.
유치원 교사를 하며 아이들이 편하면서도 예쁘게 입는 옷의 브랜드를 빠삭하게 알고, 학부모 상담에서 만난 엄마의 패션에 관심을 가졌다. 결혼도 하지 않고 아이도 없었지만, 학부모와 나는 아이를 중심으로 한 파트너가 되어야 했다. 엄마들이 고민하는 아이들의 옷을 나도 함께 고민하고, 엄마들이 이야기하는 시댁, 시터, 남편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공감하고 위로하던 그 시절.
시절은 흘러간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치원 교사가 되었다. 그 이후에 유아교육 석박사의 길을 지나다 보니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옷방 행거에 자리 잡은 고무줄 바지와 기모 맨투맨 그리고 두툼한 검은 패딩, 아침에 신고 등원시켜 집에 와서 하원 때 신기 위해 가지런히 벗어놓은 양말. 사실 옷방의 옷장 속에는 10년이 다 되어가는 교사시절 옷이 그대로 걸려 있다. 그렇게 자꾸만 유행은 넣어두고 편리함과 간단함을 꺼내본다.
'갓생'
육아 콘텐츠를 찾아보고 유아교육 연구들을 공부하는 내가 어느 날 알게 된 단어이다. 누군가는 이미 유행이 지난 단어라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유행에 자꾸 멀어져 가는 내 마음에 그래도 크게 남은 단어이니, 이 단어가 큰 유행을 한 것은 틀림없다. 신의 인생이라니 얼마나 대단한 인생인가. 남들의 귀감이 되는 부지런하고 바람직한 삶이라니 삶이 한 번이라면 그런 생을 살아도 보람 있겠다. 그러나 두 아이를 재우고 나서 유아교육 연구를 찾아 읽고, 그러다가 문뜩 내일 아이들 먹을 반찬과 국은 있나? 떠올리는 나에게 갓생이란 어쩌면 너무나도 벅찬 삶이다.
유아교육은 인생교육과도 같다. 나의 첫 작품인 <육아에 작은 사랑은 없다> 책에서도 나는 말한다.
"나는 유아교육이 곧 인생에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유아에게만 일어나는, 유아를 위해 필요한 교육을 공부하는 것이 유아교육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것이 유아의 삶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인생에서 일어나고 느껴야 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명리학과 관상학, 사주와 팔자도 모두 저마다 인생을 공부하는 교육이라고 한다. 그 사람의 조그만 모습을 통해 인생을 '유추'해볼 수 있으니까. 유아교육도 마찬가지이다. 아이의 모습과 말투, 행동을 통해 아이의 발달과 마음을 유추할 수 있다. 유아라는 특성 덕분에 유아의 부모와 가정환경도 가끔은 들켜버린다. 그러니 유아교육이란 대단한 인생 공부인 셈이다.
유아교육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치'를 전해주고자 했다. 참 행운인 것이 나의 선배이자 동료교사, 선배이자 스승이던 교수님들께서 그렇게 배워주셨다. 아이들과 하는 활동은 재미(just for fun) 그 이상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가치'였다. 친구와 역할놀이를 하면서 양보와 배려, 그리고 협력의 가치를 배우고,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지만 안전과 차례, 질서의 가치를 배운다. 그들에게 많은 것을 벅차게 강요하지 않는다. 그들이 놀며 생각하며 느끼고 배워간다.
그렇다면 나는 이번생에서 '갓생'이 아니라 '가치생'을 전달할 수 있지 않는가? 누군가의 귀감이 되지 않아도 좋다. 부지런하고 바쁘지 않을 수도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내가 공부하고 경험했던 유아교육에서 자연스럽게 인생의 교육, 그것도 가치 있는 인생을 기록할 수 있지 않겠는가? 두 아이를 재워두고 말이다. '가치생'은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아이들에게는 '해 봐!', '만져봐!', '놀아!' 한마디면 충분하다. 인생에서도 시간이 지나면 긴 말보다 짧은 말이 더 기억에 남기 마련이다. 그렇게 한 마디의 말로 천냥 육아를 하는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이 이야기 끝에는 아마 인생이 가치를 가득 담아 서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