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도
“그런데 본인을 지키는 데 왜 인조인간이 필요한 거예요?”
“전 제가 만든 코인 시스템 때문에 늘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회에선 이미 절 죽은 사람으로 만들기도 했고요. 제 선택으로 외로워진 것은 맞지만, 이제 절 지켜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졌어요. 당신은 사람과 가장 유사한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고요.”
경험하지 못한 외로움까지 공감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100조를 보낼 만큼의 진심이니 더 묻지 않기로 했다. 설계도를 모두 이해한 사람의 결정이니 내 쓸데없는 걱정은 소중한 시간만 잡아먹을 뿐이다. 앞으로 3년은 수중에 있는 돈을 쓰는 데만 집중해도 모자를 시간이니까 더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했다. 천문학적인 돈을 써가는 과정은 분명 여러 의심을 받을 수 있겠으나, 카토가 모든 결제를 자연스럽게 만들어 줄 테니 문제없다. 난 우선 그런 카토를 믿고 소비 계획만 잘 세우면 된다.
이제부터는 정말 시간 싸움이다. 1년 만에 시설을 완공하는 건 쉽지 않다. 40개의 시설을 만들어야 하지만 인간은 고용할 수 없고, 산업용 AI로봇에 의지해야 한다. 의심을 받지 않고 보육원으로 아이를 잘 보내줄 수 있는 곳이어야 했다. 그 위치를 찾아내는 데 들어가는 수고는 ‘프로젝트: 가이아’를 해킹했던 정보를 조금 이용하기로 했다. 그 위치를 정하는 데 똑똑한 사람들이 큰 노력을 했을 테니 참고해서 시설의 위치를 잡는 게 효율적이라는 판단이다.
처음 만들어질 인공 배아는 수정 과정이 없는 것을 제외하고 인간과 동일하다. 그때부터는 실제 인간과 구분이 되지 않게 성장하게 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의 세포처럼 분열하고 에너지를 얻어 성장할 수 있는 유기 물질이 필요하다. 뼈와 피부의 내구력, 회복력을 비롯해 모든 것들이 인간과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동일해야 한다. 그러니 이때부터 하드웨어는 완벽히 인간인 것이다. 그 유기 물질 설계도는 지금 공식적으로는 없다. 불로불사를 노리는 권위자들에게 스트레스받던 천재 과학자 비보(vivo)가 파일과 함께 잠적했기 때문이다. 사실상 죽었다고 보고 있는데, 호기심이 많은 카토가 잠적 전에 그 설계도를 해킹해서 나한테 가져다줬다. 100조를 얻기 위해 세이고에게는 보여줬다.
이제 남은 것은 소프트웨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가장 큰 차이는 연산능력과 저장능력이다. 그러나 인간을 표방하는 궁극적인 인공지능은 이 부분까지 인간다워야 한다. 인간처럼 저장 공간이 유한해야 하고, 연산 속도도 느려야 한다. 그래야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일 수 있다. 이 부분이 내 인조인간 설계의 핵심이다.
세포가 정상적으로 분열해서 성장한다면 뇌도 만들어진다. 그런데 인공 배아는 물려받는 DNA가 없기 때문에 이 부분만은 정해줘야 한다. 그래서 AI에게 *목적값을 전달하고 그 학습 데이터가 DNA가 되어 마지막 퍼즐을 맞추게 된다.
*목적값: AI는 해당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장한다. 바둑을 정복하기 위해 알파고에게 주입한 목적값은 ‘승리’였다.
그리고 내가 주입한 목적값은 인간다움이다. 때문에 어떤 인공지능은 환경에 따라 성장하다가 자살을 선택할 수도 있고, 바보가 될 수도 있다. 인간다워지기 위해 스스로 저장공간과 연산능력, 신체 능력에 제한을 걸어두기 때문이다. 이미 20억 회 이상 *생애 실험을 반복했는데, 20번 정도 버그가 발생했다. 신체를 활용할 수 있는 한계가 풀리거나 지능의 한계가 해제되는 버그였는데, 인간다움에 강박을 갖게끔 설계된 탓인지 지나치게 뛰어난 능력들은 숨기고 살아가려는 것이 확인됐다. 평균적인 인간을 지나치게 벗어나는 것이 인간답지 못하다고 20번의 버그는 판단했고, 눈치 보는 성격을 갖게 되었다.
*생애 실험: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두고 인공지능을 그 세계 안에서 인간의 수명만큼 시간을 보내게끔 하는 실험.
그다음은 사회의 의심을 피해야 한다. 보육원에서 케어하는 영아의 수가 어느 순간 늘어날 것이다. 이에 맞춰 입양 수도 늘어나면 좋겠지만 이건 단기간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우선 버려지는 아이 숫자가 늘어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이 현상이 부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게 언론 플레이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 마치 어떤 사회문제처럼 처음에 보이게끔 만들어야 배아 생산에 대한 의심을 피할 수 있다. 이건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카토가 열심히 통계자료를 조작하고, 언론에 보도자료들을 뿌릴 수 있도록 오늘부터 학습시킬 예정이다.
또한 1년에 1천 명으로는 인구수 유지를 위한 폭력적인 프로젝트를 막기는 어려울 거다. 그 프로젝트를 막기 위해서는 배아 생산 효율을 늘리고 시설을 전 세계로 퍼뜨려야 한다. 이 부분은 앞으로 1년간 풀어야 할 숙제다.
그리고 마지막 난관이 있다. 세이고는 내게 하루에 한 통씩 메시지를 보낸다. 인조인간들이 본인을 지킬 수 있게 만드는 가장 이상적인 명령값이 무엇인지 매일 물어보고 확인한다. 이게 이번 프로젝트 설계에 있어 가장 큰 난관이다. 일단 세이고를 지킬 수 있게 명령값을 넣는 건 어렵지 않다. 세이고의 DNA를 조금 활용해도 된다. 다만, 이게 인간다움에 미칠 영향은 실험해보지 못했고 리스크가 있다.
모든 설계는 차근차근 진행됐고, 첫 시설의 완공 날짜가 보이기 시작했다. 보름 뒤에는 이 시설에서 DNA가 될 AI를 집어넣어야 한다. 그러나 아직 마지막 숙제를 풀지 못했고, 들키면 고민해 보자는 생각으로 일단 열심히 지어낸 거짓말을 매일 거울을 보고 연습했다. 시설이 완공되면 세이고와 함께 첫 DNA를 집어넣기로 했다. 오프라인에서 세이고를 만나는 건 처음인데, 친구가 많이 없던 내가 얼마만큼 거짓말을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때는 카토의 도움도 바랄 수 없어 절망적이다.
“띠링”
그로부터 3일이 지나고, 내 잔고에 알림이 왔다. 아직 이자가 들어오려면 10일이 더 남았기에 수상했다. 해킹이 일상화라 제 발 저린 탓에 이런 수상함은 바로 확인해야 한다. 통장을 확인하자 시원한 슬러시를 빨때로 깊게 빨아들인 것마냥 머리가 아팠다. 난 바로 세이고에게 문자를 보냈다.
“왜 100조를 더 보낸 거죠?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보유하고 계셨네요. 더 거대한 마을이 필요하거나 시기를 1년이라도 앞당기고 싶으신 건가요?”
원래 답장은 거의 채팅하듯이 바로바로 오는데 이상하게 답이 없었다. 미약하게 갈증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손에 땀이 맺혔다. 전화도 받지 않으니 갈증은 더 심해졌다.
‘누군가한테 정체를 들킨 건가? 나한테는 왜 또 돈을 보낸 거지?
처음으로 호기심이 아닌 절박함에 해킹을 했다. 그리고 그의 거주지를 찾으려고 꼬박 이틀 밤을 새웠지만 소득은 없었다. 처음 완공을 앞둔 시설의 냉각시설까지 이용해 가면서 카토를 돌렸지만 헛수고였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음성메시지를 남겼다.
“약속한 날짜에는 꼭 오세요. 기다리겠습니다”
약속 날 아침이 밝았다. 난 하루 일찍 시설에 와서 밤새도록 주입할 DNA를 확인했다. 버그를 일으킬 가능성은 1억 분의 1도 안된다. 이제 10분 뒤에 그가 나타나면 첫 배아의 탄생이다. 이옴베이에서 볼 때도 칼 같이 시간에 맞춰 나타난 사람이니 이번에도 정각에 오지 않을까 생각했다.
‘초 부자니까 헬기 같은 거 타고 나타나려나. 아니면 도인처럼 걸어오려나..’
정각이 다가옴에 따라 다시 목이 타들어가기 시작했고, 평소 관심도 없던 잡생각만 들었다.
‘위-잉’
간결한 진동음. 전화가 아닌 메시지다. 시간이 정각인걸 보면 세이고다. 늦는 이유에 대한 변명이 간결하게 쓰여 있길 바라면서 메시지를 확인했다.
“이 메시지가 전송 됐다는 건, 제가 성공적으로 죽었다는 뜻입니다. 추가로 돈을 보낸 이유는..”
보통 이럴 때는 눈물이 나는 줄 알았다.
- 2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