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위해 인간을 만들어줄 수 있겠소?"
이 한 마디에 나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어차피 병약한 시한부기에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만 내게 지금 필요한 건 막대한 돈이다. 이제는 3년도 채 남지 않은 내 인생, 이 돈이라면 세상을 조금 바꿀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2064년 여름, 인구 감소가 인류 존속을 어렵게 할 수준까지 왔다는 보고서가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작은 구가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거나 통합됐고, 내수 경제만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라도 이제 거의 없다.
21세기에 인류를 위협할 거란 요소들은 대부분 과학기술로 사라졌다. 지구온난화와 소행성 충돌 같은 것들은 이제 인류에 위협이 될 수 없었다. 오직 인구 감소가 가장 큰 위협이었는데 이건 과학으로 풀 수 없는 인류의 난치병이 되었다. 나처럼 이 인류도 역시 시한부였다.
자식이 귀한 시대가 만든 풍조일지 모르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일 없이도 먹고살았다. 부모가 물려주 재산, 풍요로운 생산 시스템, 그리고 인류 존속을 위한 복지가 그걸 가능하게 했다. 다만 이렇다 보니 사람들은 이제 욕구가 없다. 번식도 점점 불필요해졌다. 친구를 사귀지 않는 사람이 늘어나는 만큼 후손에게 물려줄 세계 따윈 그닥 중요하지 않았다.
가끔 나처럼 호기심 많은 희귀종들이 인류를 존속시키기 위한 진지한 농담을 나눌 뿐이었고, 기득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그들의 재미를 위해 인류를 존속시킬 방법들을 찾고 있었다.
언제나 그렇듯 역사 속에서 인류는 위기 때마다 폭력을 표면으로 드러냈다. 그리고 2064년에 인류가 처한 위기(기득권들의 위기로 정정해야겠지만)는 역사상 가장 역겨운 폭력을 준비하고 있었다.
미국 정부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 가이아', 이건 카토(KATO)가 매일 전 세계 정부 시스템에 들어가서 알려주는 정보 중 하나로 알게 됐다. 우연이라고 말하기엔 내가 만든 해킹 AI가 가져다준 것이니 필연이 맞겠다. 카토는 이미 10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데, 아무에게도 들킨 적이 없다. 아마 사람들은 이런 해킹 기술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7살 때 핵무기가 위험해 보여서 전 세계 시스템에 들어가 무력화시킨 적도 있었는데 그때도 아무 일이 없던 거 보면 보안에 참 취약한 세상이다. 카토는 가끔 내가 천재가 아닐까 의심하는데, 천재였다면 내 병쯤은 금방 치료했을 거란 생각이다. 7살 때 친구들한테 저 사실을 말했을 때도 그쯤은 아무것도 아니라며 오히려 날 멀리한 것도 내가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보통 천재랑은 가까이 지내고 싶기 마련이지 않나? 적어도 난 그렇다.
'프로젝트: 가이아'는 아기 공장을 만드는 프로젝트다. 인류의 존속을 위해 각지에 보육원을 가장한 아기 공장을 만들고 범죄자들을 모아 강제로 임신과 출산을 반복시키는 프로젝트였다. 처음엔 장난인 줄 알았으나, 이미 5년째 진행되어 오고 있는 프로젝트며 범죄자들 중에서 혐의가 불분명했던 사람들을 추려서 그들로 리스트를 만든 것까지 확인했다. 이건 분명 유래없던 폭력이다. 이건 단순히 문서를 없애버린다고 해결될 것이 아니라 머리가 좀 아팠다.
인간다운 인조인간을 만들어서 인류 평형을 가지고 오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대한 돈이 들어갈 것이기에 생각도 안 해봤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이옴코인이 처음 나왔을 때 풀매수 했어야 했다. 일단 머리가 아프니 잠 좀 자야겠다고 생각하고 누웠다.
“나를 위해 인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겠소?”
눈 붙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상한 메시지 알람에 눈을 떴고, 이런 바보 같은 스팸에 어울려줄 수는 없지만 친구도 없으니 “돈만 있으면”이라며 시답잖게 답장을 했다.
지난달에 인간과 구별되지 않는 인공지능에 대해 진지한 농담을 한 것을 보고 누가 장난친 거라 생각했다.
‘음.. 그런데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지. 해킹당했나? 해킹을 당했다고..?’
곧장 찜찜한 마음이 들어 발신자를 찾으려고 통신사 시스템에 접속했다. 그리고 바로 전화가 울렸다. 발신지는 미국이다.
‘아.. 드디어 들킨 건가?’
동시통역 활성화 버튼을 누르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가족 외에 전화를 하는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그런 두근거림과는 별개의 것이지만 어쨌든 살짝 들뜬상태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저번에 말씀해 주신 인조인간 설계안 잘 봤습니다.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도 계산해 봤는데, 충분한 금액을 가지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설계도를 시각화시킨 것 없이 말로만 떠들었을 뿐인데... 그보다 어떻게 제 연락처를 알아낸 거죠?”
“통신사에 본인 정보만 따로 보안을 걸어두셨길래 설계안이 허풍이 아니라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보안은 제가 잘하는 분야기도 해서..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인간을 만들 수 있습니까?”
“가능성은 있는데.. 제가 왜 만들어드려야 하는 거죠?”
일단 돈 얘기를 안 들어보더라도 이상한 위화감이 들었다. 그저 FBI나 CIA에서 연락이 안 왔으니 안심하고 이 괴상한 통화를 중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능성뿐이라면 없던 얘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먼저 전화가 끊겼다. 뭔가 선수를 빼앗긴듯한 느낌이라 조금 짜증이 올라왔다. 아까 번호는 십중팔구 다른 사람 번호일 거고 다시 걸어도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통신사 시스템에 들어와 있으니 카토한테 시켜서 일단 역추적을 부탁했다. 빠르면 1분, 어쩌면 못 찾을 수도 있다.
‘도대체 이 사람은 왜 만들고 싶은 거지? 나와 같이 그 프로젝트의 존재를 알게 된 사람인가?, 아니 그것보다 이 사람 정말 그 돈이 있나?’
살 날이 많이 안 남은 사람은 먼지만한 희망에도 집착하게 된다. 저 사람이 뭔가 아주 약간의 희망에 무리해서 나한테 연락을 했던 것이라면, 나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페이크 번호 아닌 것 같은데?”
카토로부터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만약 그에게 정말 그만한 돈이 있다면, 지금 내가 이 프로젝트를 안 할 이유가 없다. 아니 해야만 한다. 나는 마음이 급해졌고 바로 전화를 다시 걸었다. 통화 대기음은 정삭적으로 들렸지만 전화를 받진 않았다. 실험 없이 100%를 말하는 건 어리석었기 때문에 가능성이라고 말한 것뿐이었다고 메시지를 남겼다. 카토의 도움을 받아서 절박한 어투로 잘 전달했는데 이게 먹힐지는 모르겠다.
"100조 정도면 몇 명이나 만들 수 있습니까?"
10분 정도 지났을까 답장이 왔다. 계산을 해봤다더니 이건 무슨 대답일까, 생각보다 똑똑한 사람은 아닌가 싶으면서도 일단 대답을 이어갔다.
"배아 단계부터 시작해야 하기 때문에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습니다. 재료를 구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고 대부분 시설 비용입니다. 근간이 되는 소프트웨어는 이미 있고, 인간처럼 만들어져야 되기 때문에 인간과 똑같은 성장과정을 거치게 될 겁니다"
"그건 설계에서 말씀해 주신 부분이기 때문에 알고 있습니다. 몇 명이 가능한지가 중요합니다."
"몇 명이 필요하신 건데요? 아직 왜 만들고 싶으신지 안 말해주셨어요. 그걸 듣고 진행할지 판단하겠습니다"
난 아직 이 사람을 속이고 있다. 내가 원하는 프로젝트와 일치하기 때문에 그의 돈으로 시설을 만든다면 그 이후부터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사용할 거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이 인조인간을 만들고 싶어 하는 동기다. 만약 불순한 의도라면 다른 투자자를 찾아보던가 그냥 저 '프로젝트: 가이아'를 망치는데 여생을 바쳐야 할 것 같다.
"저를 지키기 위한 마을이 필요합니다. 자세한 건 이옴베이에서 만나서 얘기하는 게 좋겠습니다. 제가 보내드리는 링크로 10분 뒤에 접속하세요."
생뚱맞은 얘기였다. 본인을 지키다니, 그것도 마을을 만들어서 지켜야 된다는 것도 이해가 안 됐다. 그런데 어쨌거나 일을 진행시키려면 소요되는 비용을 계산해야 하는데, 마을을 만든다고 했으니 대략 1천 명의 인간을 만들어낸다는 가정이 필요하다. 시간이 넉넉하다면 이런 가정을 세우기 전에 어느 정도 기간을 기다릴 수 있는지 물어보겠지만, 의미 없는 얘기는 안하니만 못하다.
1년을 시설 세팅 기간으로, 이후 1년을 생산 기간으로, 그리고 10개월의 배양기간을 거쳐 2개월간 보육원으로 보낸다. 이게 나한테 남은 시간으로 할 수 있는 가장 빠른 타임라인이다. 거꾸로 계산해 보면, 2년 뒤까지 1천 개의 배아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면 1년 동안 배아 1천 개를 만들 시설을 갖춰야하고,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는 규모로 약 40개의 생산 시설이 필요하다.
‘음.. 진짜인가, 정말 100조 정도의 돈이 들어가겠는데. 그런데 이 사람은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지. 나한테 시간 제약이 있다는 것도 알고 있지 않으면 계산될 수 있는 액수가 아닌데..’
10분 뒤에 접속하랬지만 마음이 급해서 바로 접속하고 10분을 기다렸다. 정확한 시간에 그 사람이 나타났고, 우리는 vip 공간으로 옮겨졌다. 코인 자산이 1조 이상인 소수만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니 부자인 건 분명했다. 이런 식으로 부를 증명할 줄은 몰랐지만 증명은 간결할수록 좋으니 됐다. 이제 불분명한 99조를 증명해야 하는데, 그만한 자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지금 세계에 다섯명밖에 없다. 죽었다고 알려진 이옴코인 창시자가 살아 있었다고 하면 6명.
나는 태연한 척을하며 그에게 인사를 거냈다. 어색한 제스쳐는 그도 마찬가지다. 난 바로 그에게 시각화한 설계도를 보여줬다. 3년 동안 1천 명 그리고 100조에 관한 근거 문서였다. 그리고 내 설계도에 취해서 1시간을 떠들었다.
“하루만 검토해 보겠습니다. 하루 뒤에 이 문서가 타당하다고 생각이 들면 저도 마을이 필요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협상은 살면서 해본 적이 없다. 당연히 검토가 필요할 텐데 검토란 말을 들었을 때, 뭔가 한 대 맞는 기분이었고 사기당한 것 같았다. 이때부터는 이 사람에 대한 불신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제 내 미숙한 협상스킬로 벌어진 일들을 주워 담을 수도 없다.
온갖 잡생각으로 1년 같았던 하루가 지나고, 그가 다시 나타났다. 그리고 이유에 대해 말하는 것 대신에 이옴코인 보유량을 인증했다. 인증 방식은 내 계좌로 바로 보내는 것이었다. 그때 알았다. 이 만큼의 이옴코인을 보유할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다.
“당신이 진짜 세이고(sago)..에요?”
모든 의문이 풀렸다. 더 이상의 설명은 필요 없었다. 이옴코인의 창시자에 대해서는 추측성 기사가 항상 난무했지만, 아직 정체가 알려지지 않았었다. 알려지는 순간 위험에 빠질 것이 물론이거니와 이옴코인이 만든 생태계 자체가 위협받기에 죽었다고 알려지는 게 창시자에겐 가장 좋은 시나리오다. 25살 인생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건이라 어안이 벙벙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건 지금 내 계좌에 찍혀있는 100조라는 금액이다.
나는 이렇게 25살에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본인을 지키는 데 왜 인조인간이 필요한 거예요?”
“그건..”
-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