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담당하게 된 기계의 제원은 폭 2미터, 높이 2미터, 그리고 길이 7미터였다. 그 거대한 쇳덩이는 독성 가스를 삼키고 엑스레이를 내뱉었으며, 5만 볼트의 전기로 심장을 움직였다. 사람 키보다 큰 부품이 무심하게 회전하는 그 육중한 존재감 앞에서 '안전'이라는 단어는 어딘가 위태롭게 들렸다.
“규칙만 지키면 안전해.”
무뚝뚝한 표정의 고 선배가 말했다.
“그리고 그 규칙은 전부, 지키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생긴 거지.”
기계는 워낙 커서, 사람이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인 1조 근무는 단순한 권장이 아닌, 생존을 위한 첫 번째 규칙이었다. 고 선배는 반복되는 안전 교육에도 기어코 혼자 기계에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다고 했다.
“한 엔지니어가 있었어. 혼자 작업하다 기계 내부에서 감전으로 쓰러졌지.” 선배의 목소리는 건조했다.
“근데 이 기계, 설계 자체가 에러가 발생하면 자동으로 세 번을 더 재시도하도록 되어 있어. 첫 감전에 정신을 잃은 그 사람은, 바닥에 쓰러진 채로 기계가 보내는 전기를 세 번 더 받은 거야. 꼼짝도 못 하고.”
어떠한 비명이나 소란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거대한 기계의 구동음 속에서 한 인간이 조용히 망가져 갔을 뿐이다. 그 상상에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때로는 기계가 스스로의 노후를 증명하듯, 내부에서 기이한 현상을 연출하기도 했다. 고전압 부품의 낡은 절연체가 제 역할을 포기한 날이었다. 갈 곳을 잃은 전기가 검은 기계 내부에서 푸른 번개처럼 피어올랐다. 외부의 작은 틈으로 들여다본 그 광경은 비현실적일 만큼 기묘하고 서늘했다. 마치 폭풍우 치는 밤바다를 작은 조각배 위에서 보는 듯한, 아득한 공포가 밀려왔다.
한번은 바닥에 냉각수가 터져, 팔뚝만 한 전선 다발들이 전부 물에 잠긴 적도 있었다. 나와 고 선배는 말없이 걸레를 들고 한 시간 넘게 물을 퍼냈다. 묵묵히 허리를 숙이고 걸레를 짜는 동안, 우리의 손과 발은 흥건한 물에 계속 닿아 있었다. 청소가 끝난 뒤에야 선배가 툭, 던지듯 말했다.
“저 케이블, 전기 살아 있었어.”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는 방금, 죽음의 문턱에서 태연하게 물청소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 선배의 시절에는, 이런 무모한 경험들이 ‘업무 노하우’이자 ‘배움’의 일부로 여겨졌다고 했다. 그래서 사고도, 죽음도 더 잦았다고.
방사선 피폭을 막기 위해 납으로 만들어진 육중한 커버와 문짝들. 고 선배는 언젠가 그 부품들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게 넘어지거든, 잡을 생각은 꿈도 꾸지 마. 그냥 도망가. 네가 감당할 수 있는 무게가 아니야.”
그의 말은 충고라기보다, 생존자가 전하는 냉정한 진실에 가까웠다.
요즘은 모든 것이 엄격해졌다. 특히 대기업 작업장은 사소한 안전 수칙 위반도 용납하지 않는다. 덕분에 끔찍한 사망 사고는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평화는 수많은 규칙과 감시 카메라 덕분이기도 하지만, 고 선배 같은 이들이 들려주는 과거의 이야기, 그 서늘한 경고 위에 서 있다는 것을.
오늘도 나는 7미터짜리 쇳덩이 앞에 선다.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기계는, 안전 수칙을 지키는 나에게는 충실한 도구이지만, 경계를 푸는 순간 언제든 나를 삼킬 수 있는 포식자이기도 했다. 그 아슬아슬한 긴장감이야말로 이곳의 진짜 ‘안전 수칙’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