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라는 녀석에게 첫발을 콱! 내디딘 지 딱 석 달째 되던 날이었다. 나는 아주 기묘하고도 위험한 능력(?)에 익숙해져 가고 있었으니… 으리으리한 기계를 뚝딱 고치는 것도, 밤샘 근무로 올빼미가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건 바로,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짱짱하게 버티는, 일명 ‘공복 투혼’이었다!
"아침은 든든하게!"를 외치던 엄마의 등짝 스매싱을 뒤로하고 출근한 날이면, 어김없이 굶주림과 데이트를 하게 됐다. 꼬르륵거리는 배를 부여잡고 12시간 연속으로 일하다 보면, 물 한 모금 제대로 마실 새도 없었다. 마치 사막의 낙타가 된 기분이랄까? 아니, 낙타는 등에 물이라도 저장하지!
점심시간, 드디어 꿀 같은 휴식 시간이 찾아왔다. 용기 내어 "저… 잠깐 밥 좀 먹고 오겠습니다!"라고 외치자, 고객사 직원이라는 양반이 싸늘한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되묻는 게 아닌가.
"그럼 고장 난 기계는 누가 고치죠?"
크아아아악! 속으로는 당장이라도 "밥 먹고 고치면 되잖아, 이 나쁜 인간들아! 너는 먹었잖아!"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젠장, 내 입은 마네킹처럼 꾹 닫혀 있었다. 하긴, 신입사원 나부랭이가 뭘 어쩌겠나.
원래 나는 밥심으로 사는 사람이었다. 삼시 세끼는 물론이요, 간식까지 야무지게 챙겨 먹는 '탄수화물 러버'였단 말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 끼쯤이야 뭐! 이 정도는 견딜 만하지!’ 하며 스스로를 조련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일하다 보니, 몸속 수분이 증발하는 건 기본이요, 나중에는 화장실 가고 싶은 마음조차 사라졌다. 심지어 소변도 안 나오는 기현상까지! '이러다 비뇨기과 VIP 되는 거 아냐?' 하는 섬뜩한 생각마저 스쳐 지나갔다.
그렇게 밤늦게까지 영혼을 갈아 넣고 퇴근하면, 집에 와서도 밥맛이 뚝 떨어졌다. 입은 사막처럼 바싹 말라 까끌거리고, 말할 기운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축 늘어진 몸을 이끌고 일반 식당에 가봐도, 음식 맛은커녕 흙을 씹는 기분이었다. 결국 나의 종착지는 늘 '기사식당'이었다. 간이 센 음식이어야 그나마 혀가 반응했고, 무엇보다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곳은 그곳뿐이었으니 말이다.
"후배들아, 기계가 터지든 말든 밥은 꼭 먹고 와라!"라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는 지금과는 달랐다. 그때의 나는 풋풋한 신입사원이었고, 심지어 선배들조차 밥을 거르며 일했다. 그제야 나는 선배의 깡마른 몸이 왜 그렇게 애처로워 보였는지 깨달았다. 아, 밥을 못 먹어서 저렇게 야위신 거였구나! 차마 물어볼 용기는 없었지만, 내 촉은 정확하다.
젠장! 노동법이라는 게… 도대체 존재하기는 하는 거야?
시간은 물 흐르듯 흘러 입사 2년 차에 접어들었다. 내 소중한(?) 입사 동기들은 하나둘씩 깃털처럼 가벼이 회사를 떠나갔고, 나는 마치 뿌리 뽑힌 나무처럼 홀로 남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어금니 꽉 깨물고 버티고 버티다 보니, 결국 몸뚱이가 비명을 질렀다. 병원 침대와 강제 데이트를 하게 된 것이다.
동료들이 모두 퇴사하는 바람에, 나와 부장 단둘이서 밤낮없이 굴러가는 공장 기계처럼 일해야 했다. 매일 밤샘 근무는 기본 옵션이었지.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목이 타들어 가는 듯한 갈증에 허덕였다. 물을 마시려 컵을 들었는데… 맙소사! 물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 게 아닌가? 갈증은 심해 죽겠는데, 물 한 모금도 삼킬 수 없는 기묘한 상황이라니! 황급히 부장에게 SOS 전화를 날리고 병원으로 내달렸다.
의사 선생님은 내 목구멍을 들여다보더니 심각한 표정으로 '과로로 인한 급성 편도염'이라고 진단했다. 게다가 고열까지 날 수 있으니 당장 입원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런데 나는 이 와중에 무슨 정신이었는지, "제가 빠지면 일할 사람이 없어서 입원은 힘들겠습니다. 약 처방만 부탁드립니다!"라고 씩씩하게(?) 말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이지… 누가 봐도 ‘뻐꾸기 날리는’ 소리였다.
의사 선생님은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열이 나면 진짜 위험하니 구급차 타고 다시 오라고신신당부했다.
1층 약국에서 처방받은 약을 검은 비닐봉지 두 개에 나눠 담고, 내 사랑스러운 애마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목적지는? 당연히 회사! 출근하는 도중이었다. 문득 핸들을 꽉 쥔 손에 힘이 풀리면서,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자괴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이미 몸은 성한 곳 하나 없고, 목구멍은 물조차 삼키지 못할 정도로 망가졌는데, 나는 이 엉망진창 몸뚱이를 이끌고 기어이 출근을 하고 있다니! 이 상황이 너무나 어이없고, 울컥 치밀어 오르는 화를 주체할 수 없었다. 내 청춘, 이대로 괜찮은가?!
비틀거리는 몸을 이끌고 겨우 회사에 도착했다. 부장을 보자마자 나는 거의 울먹이는 목소리로 선언했다. "부장님, 저 입원하겠습니다!" 부장은 의외로 담담하게 "그래, 의사가 입원하라고 했으면 입원해야지" 하고 답했다. 휑뎅그렁한 사무실, 남은 직원은 부장과 나뿐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자마자, 세상모르고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자마자 옆 침대 아저씨에게 오늘이 며칠이냐고 물어봤다. 아저씨 왈, 내가 잠든 지 벌써 이틀이 지났단다. 맙소사! 2년 만에 처음으로 푹 잔 잠이었다. 아저씨는 밤새 내 핸드폰이 그렇게 울려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을 하냐고 궁금해하셨다. 나는 피식 웃으며 "그것 때문에 이렇게 입원하게 됐습니다"라고 답했다.
병원밥은 너무 싱거웠다. 결국 옷을 갈아입고 병원을 나섰다.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뜨끈하고 얼큰한 순댓국집! 역시 이 맛이지!
당장이라도 사표를 던지고 싶었지만, 지난 2년간 쌓아온 끈끈한 정(이라 쓰고 '애증'이라 읽는다) 때문에 쉽사리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한 달 정도 더 버티면서 진행하던 프로젝트들을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그리고 마침내, 부장에게 말했다.
"부장님, 저 그만할래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의 나는 정말이지… 답답하리만치 어리석었다. 밥까지 굶어가며 지켜야 했던 그 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내 몸을 만신창이로 만들면서까지 증명하려 했던 그 '성실함'이라는 게 정말 가치 있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신입사원으로서의 의무감, 책임감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포장된 채, 나 스스로를 소모품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회사는 결국 사람이 건강해야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라는, 너무나도 당연한 진리를 나는 병원 침대에 누워서야 비로소 깨달았다.
사랑하는 후배들아! 밥은 꼭꼭 챙겨 먹어라! 목마르면 물 마시고, 화장실 가고 싶으면 눈치 보지 말고 다녀와라! 그게 바로 사람답게 일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