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그중에서도 '어떤 회사에서 내 청춘을 불사를 것인가'는 어쩌면 배우자를 고르는 일만큼이나 신중해야 할 문제다. 하지만 불행히도, 겉모습만 보고는 속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이고, 또 회사다. 그래서 오늘은, 혹독한 세월 속에서 체득한 '좋은 회사와 나쁜 회사를 구별하는 나름의 지혜'를 여러분과 나누고자 한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관찰에 기반한 것이니, 그저 잔소리 정도로 가볍게 들어주셔도 무방하다.
이야기는 한 사장님으로부터 시작된다. 번뜩이는 아이템으로 경쟁자 없이 승승장구하던 그분, 욕심껏 사업을 확장하려 신입사원 열 명을 뽑는다. 학력 인플레 시대에 발맞춰 대졸, 심지어 대학원졸 인재들까지 영입하며 야심 찬 포부를 품었으리라. 과거 '기름밥' 먹던 고졸, 전문대졸 출신 엔지니어들 틈에 석사 학위자들이 등장했으니, 그 기세가 등등했을 테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학력'과 '연봉'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벽이 기존 직원과 신입사원 사이에 금이 가게 만든 것이다. 괴롭힘, 이 흔하디 흔한 단어가 회사의 암세포처럼 번져나갔다. 사장님은 그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으로 방관했고, 그 결과는 참담했다. 채 한 달도 안 되어 열 명 중 여덟 명이 회사를 떠났다. 퇴사 면담에서 한결같이 '텃세'를 토로하며 등을 돌린 것이다. 남은 두 명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에 억지로 버티는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황급히 빈자리를 채우려 다시 채용 공고를 냈지만, 이번엔 꼼수가 동원된다. '능력 있는 인재' 다섯과 '이직하기 어려운 경쟁력 없는 인재' 다섯을 섞어 뽑아 부서에 배치하겠다는 묘수 아닌 묘수를 부린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아니, 더 악화되었다. 기존 직원들의 괴롭힘은 여전했고, 사장님은 '가해자를 자르면 당장 회사 운영에 차질이 생긴다'는 핑계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스무 명을 뽑아 일곱 명만 남았고, 그중 두 명마저 몇 달 뒤 '더 이상은 못 참겠다'며 떠나버렸다. 결국 다섯 명만이 남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 것이다.
결국 사장님은 인력 관리를 포기하고, 그저 '돈'에만 관심을 쏟기 시작한다. 외부에서 '인력 부서장'을 영입했지만, 그마저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회사는 '다른 곳으로 이직할 능력은 없지만, 이 회사에선 죽어도 버텨야 한다'는 독기 충만한 이들로 채워지거나, 낙하산 인력 부서장의 연줄로 들어온 중간 간부들로 인해 '엉망진창'이 되어버린다. 불쌍한 대졸 신입사원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입사해 괴롭힘을 당하고, 또다시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곳. 소규모 반도체 관련 회사들의 흔한 풍경이라는 것이 더 슬픈 현실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이런 회사들은 아무리 '내실이 탄탄하다'라고 포장해도 결국은 사상누각(砂上樓閣)일 뿐이다. 그러니 부디, 여러분은 제 잔소리를 참고하여 '나쁜 회사'를 걸러내는 안목을 키우시길 바란다.
총인원 100명 이하의 회사: 물론 예외는 있다. 하지만 대개는 작은 카르텔이 형성되어 본사 등쳐먹는 '짬짜미'가 판을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겉으로는 화목해 보일지 몰라도, 속으로는 곪아 터지는 경우가 많으니, 신중해야 한다.
사원-대리 비율이 과장-차장 비율보다 적은 회사: 이건 뭐, 산술적으로만 봐도 답이 나온다. 과장, 차장급 인원이 많다는 건 그동안 뽑았던 사원, 대리들이 다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방증이다. 멀쩡한 회사라면 직급 체계가 피라미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정상이다.
면접관의 복장과 말투를 유심히 살필 것: 아무리 '자유로운 외국계 기업'을 표방해도, 최소한의 예의와 격식은 지켜야 한다. 담배 연기 자욱한 면접장, 여러 명이 오가며 정신없이 질문하고 오디오가 겹치는 혼돈의 카오스, 청바지에 목 늘어난 티셔츠 차림의 면접관, 심지어 비속어와 욕설을 섞어 말하는 면접관이 있다면, 그 회사는 애초에 걸러라. '회사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면접관의 태도가 그 정도라면, 직원들을 대하는 태도는 불 보듯 뻔하다.
굳이 한국 반도체 관련 회사를 고집하겠다면, 독기를 품어라: 미안한 말이지만, 한국 회사는 (물론 모든 회사가 그렇진 않지만) 때로 '정말 힘들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길을 선택하겠다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독하고 끈질기게 버틸 각오를 해야 할 것이다.
결국, 회사는 '사람'이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문화'가 회사의 얼굴이자 미래가 된다. 부디 여러분은 제 경험담을 거울삼아, '돈'만 좇는 회사가 아니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회사에서 여러분의 소중한 청춘을 꽃피우시길 진심으로 바란다. 혹, 지금 몸담고 있는 곳이 위의 불행한 회사와 닮아 있다면, 과감히 돌아설 용기도 필요하지 않을까?
강산이 두 번 변하고도 남을 세월이 흘렀다. 갓 사회에 발을 디딘 청년이 어느덧 중년의 문턱에 서기까지, 수많은 에피소드가 켜켜이 쌓여 스무 해가 훌쩍 넘는 시간을 만들었다. 돌이켜보면 조직 생활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단체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면서도 조직에 남아 동료를 괴롭히던 사람, 격렬한 다툼 후에도 아무런 제재 없이 자리를 지키던 사람 등 이해하기 힘든 풍경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때마다 나는 제 아무리 이름난 대기업이라도 빛과 그림자는 공존하며, 때로는 조직의 유지를 위해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 필요한 것이 현실의 생리임을 씁쓸하게 깨달았다.
얼마 전, 지방의 한 칩메이커 회사로 떠난 출장은 20년 전의 기억을 소환하며 묘한 기시감을 안겨주었다.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마주한 그곳의 풍경은 놀랍도록 20년 전과 닮아 있었다. 거대한 조직은 마치 공무원 사회처럼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금 실감했다. 그런 면에서 끊임없이 시장 상황에 맞춰 변화를 거듭해 온 삼성전자와 같은 기업의 위대함은 더욱 돋보인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치열한 자기 혁신과 역동성,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세계 최고를 만든 진정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가뭄에 콩 나듯 친구들을 만나면 "인생이 왜 이리 힘드냐"며 푸념을 늘어놓던 내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억지로 참고 견딘 것은 아니었지만, 묵묵히 시간을 이겨내고 보니 이 험난한 업계에 몸담은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의 반도체 산업은 수많은 부침 속에서도 결국 우상향 곡선을 그려왔고, 내 삶 또한 그 흐름과 함께 단단해졌다. 당시에는 죽을 것만 같았던 고통의 순간들이, 이제와 돌아보니 내 삶을 지탱하는 귀한 발판이 되었음을 깨닫는다.
미래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지금 당신이 겪는 어려움과 고통이 훗날 어떤 모습으로 변모하여 삶의 자양분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부디 그 힘겨운 시간들을 헛되이 보내지 않고 묵묵히 노력하여, 훗날 값진 결실을 맺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모두의 오늘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