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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Jul 15. 2024

아메리카 렛츠고?

"너 이래 오래 한국에 나와 있어도 되나? 혼자 뭐 묵고 있을꼬?"


엄마는 내가 한국에 나올 때마다 혼자 있는 사위가 밥 굶고 다니는 건 아닌지 걱정이시다.


엄마가 걱정하는 사위는, 입 짧고, 매운 것 잘 못 먹고, 햄버거를 먹을 땐 양파를 빼달라고 요청하고, 제일 자주 사용하는 한국말 중 하나가 '맥주 주세요.'이고 그 다음 잘 사용하는 한국말은 '맥주 하나 더!' 미국인이다. 분명 나만큼 흰머리가 늘고 있을테지만 잘 보이지 않는 금발을 가진. 


두 살 아래 남동생은 남의 고추장 항아리 위에 올라서다 뚜껑이 깨져서 고추장 독에 발이 빠진 적도 있고, 계란 도매상 아저씨가 가게 앞에 세워둔 오토바이를 넘어뜨려 그 위에 있던 계란 30판을 와장창 깬 적도 있고, 학교 교실 창밖에 매달려 스파이더맨을 흉내 내 운동장에 있던 선생님들을 모두 혼비백산하게 했던 적도 있다. 그땐 나는 그 녀석보다는 나은 자식이라고 자부했지만, 일가창립이나  안통하는 사위같은 한 단계 높은 과제들을 부모님께 드리며 바통을 이어받았다. 우리 남매, 양심은 있어서 동시에 일을 치지는 않았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다.  


부모님과 지금의 남편의 첫 만남이 있었던 날, 엄마가 그에게 물었다.


"아메리카 렛츠고?"
(통역: 자네, 내 딸이랑 손자 데리고 미국 갈 계획이 있나?)


언어의 장벽넘어서려는 엄마의 수고에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는 사이, 나는 혼자 심장이 철렁했다.

원산지가 미국인 남자를 만나면서도 미국에 가서 살거라는 생각을 진지하게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엄마는 직감적으로 딸이 언젠가는 미국을 갈 것이라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이유 단순했다.

엄마 머릿 속의 천칭이 작동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다가 미국인 배우자가 어느날 미국에 가서 살고 싶다고 하면 형평성에 맞춰서 가는게 인지상정이지 안그래?"
" 이별이 서운하고 슬픈 것은 우리 사정이고."


재혼인 나도, 초혼인 그도 귀찮은 결혼식은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혼인신고를 고, 웨딩 앨범을 만들었고, 남편의 고향인 오레건 주를 포함하는 미국 여행을 다녀왔다. 훗날 남편이 그 여행을 위해 통장을 털며 매우 손이 떨렸다고 고백했다. 그때 환율이 무려 달러당 1500원이었다.


밤만 되면 쿵작거리는 노래방 기계 소리에 장단을 맞추다 잠이 들었던 노래방 건물 원룸 셋방에서 시작해서 남편의 소원이었던, 바비큐 가능한 옥탑이 있는 3층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한국을 떠나 미국에 갈 상상도 구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그날의 엄마 말씀처럼 단순했다. 


'도전이 더 버거워지기 전에 가봐야하지 않을까, 어차피 한번은 가볼거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메리카 렛츠고'에서부터 시작했던 상상이 현실이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미국과 한국을 연결해서 온 가족이 다 같이 화상 통화를 한다. 

어느 해였던가, 새해 첫날 영상통화에서 엄마가 이렇게 말씀하셨다.


"Happy New Year and I love you!"


'해피 뉴 이어'만으로는 좀 아쉬웠던 엄마의 새해 덕담이다. 귀가 빨개진, 미국에도 분명 부산이 있다고 믿게 할만큼, 무뚝뚝한 남편이 'Me too'라고 대답했다. 자기애 강한 홀어머니 밑에, 외동으로 자라 일찌감치 독립해서 매우 많이 무뚝뚝한 이 남자, 한국인 장모의 사랑고백이 싫지 않다. 딸이랑 손자랑 잘 돌봐주고 잘 챙겨줘서 고맙다는 말씀이 하고 싶으셨던 엄마는 '아메리카 렛츠고?'처럼 당신이 아는 영어를 몽땅 끌어 모으셨다. 


최근엔 엄마의 메시지가 훨씬 세련되고 화려해졌다. Chat GPT나 CoPilot 같은 대화형 AI를 사용하기 시작하셨기 때문이다.

HI, how have you been for a month? Are you okay? I am sorry that we are the only ones who enjoyed it. I hope you are healthy and happy, promising to meet together. ♡♡♡♡♡♡

잘 지내지? 우리끼리만 여기서 잘 지내나 싶어 미안해. 부디 건강하고 행복하길, 그리고 다음엔 같이 꼭 만나면 좋겠어~

혼자 굶고 있을까,

혼자 심심하지 않을까,

우리끼리만 재미난게 못내 미안한 엄마가 얼마 전 사위에게 보낸 메시지다.


살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과 마주할 때가 많고,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되지 않고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분명 설레는 순간도 있다. 그러니 즉흥적이지 않고 최대한 품위와 자신감을 유지하며 늘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로랑스 드빌레르의  '모든 삶은 흐른다' 중에서


그러게, 가능하다면 낙천적으로 살아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너무 심각하지 말고..

아메리카, 렛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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