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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Jul 08. 2024

수타짜장

아빠가 공황장애 약을 받으러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많이 좋아지셨지만 지속적으로 상태체크를 받으신다. 길 건너 동네 터줏대감 종합병원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성업중이다. 건널목에 서서 초록불을 기다리는데 나에게만 보이는 트럭이 한대 서 있다.




내가 중학교 3학년때 아빠는 15년 근속의 회사를 그만두셨다. 그리고 퇴직금으로 빵집을 시작하셨다. 그때 퇴직금으로 사활을 걸었을 아빠의 어깨가 어떠했는지는 관심이 없었다. 소보루빵을 100개 팔면 그게 다 얼마냐며 공책에 곱하기 더하기를 신나게 했던 기억만 있다. 어렸다. 하지만 소보루빵을 하루에 100개 파는 일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인생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 계기였다.


나와 동생은 집에서 버스로 약 한시간 정도거리의 가게에 자주 갔다. 어깨 쳐진 부모님의 분위기 전환을 도모한다는 의도로. 그런 날은 가게마감시간까지 함께 있다가 귀가를 했다. 크리스마스가 포함된 주부터 신년 첫주까지는 거의 매일 가게에 함께 있었다. 좀체 줄어들지 않는 케잌탑을 바라보며 그래도 웃을 일이 생기는건 함께 있을때였기 때문이다.

자정이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는 매일 밤 10시가 되어서야 영업을 시작하는 야식용 수타짜장 트럭이 있었다. 감자도 큼지막하고 고기도 큼지막하고, 옆에 둔 고추가루통도 큼지막했던 곳.


지금이야 밤 12시에 한그릇 가득 짜장면을 먹고 바로 잔다는걸 상상할 수 없지만-소화도 안되고 얼굴도 붓고-, 그때는 그게 큰 낙이었다. 허한 마음을 달래는 무한리필 단무지와 수타짜장.


엄마, 아빠는 짜장면이 다고 하지 않으셨다. 나는 그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나랑 동생만 짜장면을 먹고 부모님이 보고만 계셨던 기억이 남았다면 지금 이런 므흣한 미소대신 너무 슬펐을테니까.




그땐 소중함을 몰랐었기에~ 하는 노래 가사가 떠오른다. 함께 온 김에 보호자 노릇을 해보려는데 진료마치시고 약까지 받으신 아빠가 저쪽에서 오신다. 수시로 느껴지는, 매번 같은 종류의 안도감.


"아빠, 짜장면 먹고 갈까요,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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