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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Jul 25. 2024

굳은살

아프냐 나도 아프다

뽀얗고 맨질맨질한 아기의 뒤꿈치를 보면, 나는 곧잘 그곳에 곧 생겨날 굳은살을 상상한다.

바닥을 딛고, 일어서서 걷고, 뛰고, 넘어지고, 부딪히는 삶의 과정에서 생기는 거친 굳은살은, 마음은 아프지만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필수이니까.




엄마는 시어머니의 언행 때문에 참 어려운 결혼생활을 하셨다_다른 모든 삶의 과제들에 더하여. 결혼하기 전에 이미 부모님 두 분을 모두 여의고, 엄마는 시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여기며 무척 노력하셨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런 엄마의 마음과는 다르셨던 모양이다. 스물 다섯에 시집 며느리에게, 참 모진 말씀들을 많이 하셨다. 


(친어머니처럼 잘 모시고 싶다는 엄마에게) 내가 왜 네 엄마고, 너는 돌아서면 남이다...
(미역국에 다진 마늘 넣고 있는 엄마에게)너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냐...누가 미역국에 마늘을 넣냐.
(조실부모한 며느리한테 할 소리는 아닌것으로 보임)


나는 왜 할머니가 그렇게까지 모질고 억센 말을 엄마에게 쏟아내셨는지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한 건 칠순이 넘은 엄마는 여전히 그 관계에서 입은 상처로 아파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친정집 책꽂이 한구석에는 엄마의 일기가 여러 권 있다. 하루하루, 마음을 다치고, 화를 삭이고, 분을 토하며 적어둔 그날들의 이야기. 엄마의 억울함과 분함은 그 일기장 속에 담담하게 적혀있다. 동생을 낳고 한 달이 채 안된, 한겨울에 물지게를 매일 지고 나르다가 얻은 척추 디스크 때문에 생긴, 삐딱거리는 엄마의 걸음걸이는 엄마를 수시로 슬프게 한다. 묻어두려고 해도 매일 눈뜨면 살아나는 흉터라서.


나도 할머니께 들은 몇 마디 말에 마음이 다치는 일이 왕왕 있었다. 예를 들면...

사춘기 시절, 명절이면 항상 방문하던 시골집, 할머니 할아버지댁에서 나는 말수가 없었다. 조용히 밥 먹고 돌아서면 방에 들어가 책 읽고, 또 조용히 나와 TV 보고. 그러다 어느 날, 할머니가 밥을 먹고 있는 나에게

(화가 난 목소리로) 니는 와이래 조용하노, 소가 혀 물어뜯어간 것 맹그로.(한번 흘겨보셨음)


할머니는 그러셨던 것 같다.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모진 말을 앞뒤 보지 않고 일단 하셨다. 그리고 잊어버리셨다. 고통은 그 모진 말의 화살을 맞은 이들만의 것이었다.


엄마는 딱 한번, 할머니 돌아가시지 전에, 정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물어보셨다고 했다.

어머니, 왜 저를 그렇게 미워하세요?
나는, 너 미워한 적 없다.
(혹시 국회 청문회?)


얼마 지나지 않아, 아흔이 훌쩍 넘으셨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끝내 엄마는 진심이 담긴 사과같은 처방을 받지 못했다. 사실 상처를 준 사람에게서 사과를 듣는 일은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엄마는 다른 방법으로 그 상처를 돌봐야했고, 그 방법은 아빠와 나 혹은 동생에게 그 억울함을 시시때때로 토로하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를 보는 내 마음은 그랬다. 상처의 원인은 화살을 던진 할머니에게도 있지만 너무 보드라운 상대의 마음에도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그런 화살을 쏘는 이들은 세상에 널리고 널렸기에. 지금 생각해 보면 마치 성추행 사건에서 짧은 치마를 입은 이를 탓하는 1980년대의 사회처럼 내가 엄마를 보는 눈이 그러했던 것 같다. 그때의 엄마가 느낀 상실감과 외로움을 미처 위로하지 못했고 공감하지 못했다. 그때 엄마는 아기의 발뒤꿈치같이 아직 굳은살이 돋아나기 전이었던 같다.


엄마는 영화 '국제시장'의 황정민이 나오는 마지막 장면을 보고 목을 놓아 울었다고 하셨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요.
이만하면 잘 살았지요.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요.


미처 엄마의 편이 되어주지 못하고 떠나신 부모님없이 했던 결혼, 결혼식 사진 속의 엄마는  곱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도 내 눈엔 곱다. 여전히 소녀 같고, 예쁘고, 누구보다 유머러스하고. 나는 이것이 엄마의 보드라운 속살에서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위에 얹어진 억척같고, 대장부같은 모습도 있다. 나는 그것이 엄마의 굳은살로부터 나오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굳은살.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느 하나 같은 모양이 없는 굳은살.




엄마의 일기장이 꽂힌 책꽂이를 보며 엄마의 길을 거슬러 따라가 보게 된다. 나에게도 굳은살을 새겼던, 그리고 여전히 새로운 굳은살을 만들고 있는 일련의 일들을 맞이하면서...

적어도 나에게는 부모님이라는 내편이 있었네...하고 깨달으면서.


스무 살이 된 아들의 손에도 태어날 때는 없던 흉과 굳은살이 생겨나있다.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의 굳은살도 분명 생겨나고 있을 것이다.
엄마의 굳은살과 아들의 굳은살 사이, 나 자신을 이해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그들에 대한 이해의 폭 또한 커지는 나이를 걸어간다. 그리고 또 새로운 굳은살을 키운다.

아프냐, 나도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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