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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Jul 06. 2024

일가창립

한국에 오면 시차적응기간은 생략된다. 그런 걸 할 시간이 없다. 하루가 아깝다. 이틀정도 지나면 여느 때처럼 아침 5시면 눈이 떠진다. 미국 애리조나의 -쓸데없이 매일 장관인- 일몰과 동시에 잠옷을 입는 여자의 평범한 기상시간이다.

눈을 뜨니, 옆에 누워 주무시는 엄마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던 그때의 엄마도.




그때도 이 자리였다. 이 이부자리 위. 내가 요가 비디오테이프를 넣었다. 철커덕. 엄마와 나의 아침 요가 시간. 한 시간 정도 진행되는 비디오이지만 우리는 30분 정도쯤에서 멈췄다. 아이가 잠을 깼다.


아이는 잘 먹지 않고, 잠도 잘 안 잤다. 한의원에 갔더니 밥숟가락 하나로도 하루를 버티는 뱃골이라고 했다. 뱃골을 늘리는 한약을 주는 데로 받아왔다. 하지만 우리는 직감적으로 알았다. 밥을 안 먹는데 그보다 쓴 약을 먹을 리가. 출근하는 나보다 더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냈던 엄마는 여러 궁리 끝에 매실주스에 코끼리 눈물만 한 양의 한약 한포를 섞었다. 설마 눈치채지 못하겠지. 아이는 볼펜을 줘도 코로 가져가고 토마스기차를 줘도 코로 가져가는,  냄새에 매우 예민한 아이였다. 1.5리터짜리 매실주스에 섞인 코끼리 눈물도 눈치챘다. 이런 수고를 매일 했던 건 엄마였다.


아이가 돌 즈음에 나는 일과 테솔 과정을 병행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늦은 밤이었다. 아이는 그때까지 를 기다렸다. 그런데 나는 돌아와서도 새벽 3,4시까지 숙제를 해야 했다, 우등상을 받으며 과정을 마치는 영광은 내가 누렸지만, 놀자고 애타게 책상에 매달리는 아이를 얼르고 달래 데리고 나가는 것은 엄마였다.


그 일이 있었던 그날 이후로. 



현관문을 열고 친정집으로 들어섰다. 물컹물컹 목구멍에서 올라오는 뭔가를 억지로 참느라, 머리가 아팠다.

딸이 출근 전에 아들을 맡기러 온 것은 하나 이상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챈 엄마가 물으셨다.


"니 무슨 일 있나"

"음... 애 아빠가 이혼하제."


연락을 받고, 일을 서둘러 마치고 아빠가 들어오셨다. 땀으로 소금얼룩이 진 모자를 벗으시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꺼억꺼억 터지는 울음소리를 목구멍에 가두느라 쉰소리로 울기 시작하셨다. 그런 아빠와 차분하셨던 엄마를 뒤로 하고, 나는 출근도장이라도 찍어야 한다며 아이를 두고 무작정 나왔다. 거기서 내가 울면, 급기야 엄마도 울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따라 울고, 낮은 친정집 천장이 내려앉을 것만 같았다.


장난인가 싶던 남편의 말이 오후가 되어도 번복이 되지 않는다. 근처 시청 공터를 빙글빙글 수십 번을 고 또 돌았다. ? 왜? 왜?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 않는 그의 말과 행동은 이제 내가 어찌할 수가 없다. 하지만 그 상황을 시트콤으로 만들지, 막장드라마로 만들지, 혹은 단막극을 만들지,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아침드라마를 만들지는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생각 이르렀다.

그렇다면 해학과 풍자 가득한 시트콤을 만들어보자.


순항하던 시트콤이 뜻하지 않은 곳에서 울컥거리게 될 때도 있었.

'일가창립'이라고 적혀 있는 종잇장을 받고서 느꼈던 헛헛한 마음이 기억난다. 이 세상에 나랑 아들, 둘만 덜렁 남은 느낌. 고작 종이일 뿐이었지만. 전세대출금 전액상환을 코 앞에 두고, 대출상환날에 삼겹살 말고 소고기 먹자고 세 식구가 꽁냥 거리던 반지하 전셋집 주소가 적혀있다. 강남 도곡동 타워팰리스까지는 아니어도 나로 시작하는 가문의 출발이 반지하집이라니. 이럴 줄 알았음 지상으로 올라갈 때까지 좀 기다렸다 하지... 무정한 인간.


모든 절차가 마무리되고, 지인에게 물어 점집을 찾았다. 한 번도 가본 적 없고, 믿어본 적 없지만 그때는 도저히 결론이 나지 않는 질문들에 그렇게라도 답을 찾고 싶었다.  소금을 많이 넣으면 짜고, 설탕을 많이 넣으면 달다는 대답들일지라도, 꼭 듣고 싶은 말이 있었다.


"네 잘못이 아냐."


그날 내가 듣고 싶었던 그 말을 그곳에서 들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침마다 눈뜨면 똘망똘망 눈을 마주치는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내 눈치를 보는 부모님께 죄송한 마음, 그래서 내가 뭘 잘못했을까를 생각하느라 골몰했던 밤들의 끝이었다. 그날 밤 아주 오랜만에 꿀잠을 잤다.

이후로 나는 점술가를 심리상담사로 대우한다.


"엄마, 있잖아. 내 잘못이 아니래. 괜찮아. 나."


엄마는 아셨을 거다. 내가 괜찮지 않음을. 그 상황들을 시트콤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도. 그때 고작 지금의 내 또래즈음이었던 엄마는 갱년기도 미루고, 관절이 아플 것도 미루고, 친구들과 동네 마실도 미뤄야 했다. 내가 그때의 엄마나이가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가 엄마에게 진 이 빚은 여느 빚처럼 갚는 대로 가벼워지지가 않는다. 깨달을수록 빚이 자꾸 커진다.   




부모님과 햇살 좋은  근처 개천 둔치로 나간다. 커피 트럭에서 망고 에이드 한잔, 자몽 에이드 한잔, 그리고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을 주문한다. 리고, 아주 오래 담아뒀던 질문을 꺼낸다.


"엄마 아빠, 그때 마음이 어땠어요?"

"우야꼬 싶었지. 그런데 네가 씩씩하데. 우리는 그래서 OO 이만 열심히 키웠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어서. 그리고 믿었지. 네가 잘 헤쳐갈 거라고."


일가창립이라는 단어가 신기루처럼 외로움이라는 허상을 만들었지만 나는 혼자인 적이 없었다.


"망고에이드, 자몽에이드, 아이스 아메리카노, 나왔습니다!"


눈물을 참고 꾸역꾸역 밀어 넣은 빵 때문에 목이 메던 참이었다.

날씨 좋다. 오늘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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