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Mitch Albom의 'Tuesdays with Morrie'
읽은 분량: ~The Seventh Tuesday We Talk About the Fear of Aging
But by throwing yourself into these emotions, by allowing yourself to dive in, all the way, over your head even, you experience them fully and completely. You know what pain is. You know what love is. You know what grief is. And only then can you say,
‘All right. I have experienced that emotion. I recognize that emotion. Now I need to detach from that emotion for a moment.'
수없이 겪은 이별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중에 가장 아팠던 이별을 하나 고른다. 그리고 이별들을 일렬횡대로 놓고 등급을 정한다. 기준은 그날이다.
초등학교 4학년때의 일이다.
아주 작은 새끼 고양이를 아파트 경비아저씨한테서 얻었다. 주먹만 했다. 엄마젖도 떼기 전의 아기라는 말을 듣고, 젖병을 샀다. 우유를 담아 품에 안고 먹였다. 학교만 다녀오면 끌어안고 비비고 뽀뽀하고, 정말이지 그렇게 예쁠 수가 없었다. 길고양이의 성정이 있어서 잠시만 한눈을 팔아도 눈앞에서 사라졌다. 장롱밑으로, 소파밑으로 숨어 들어간 녀석을 유인해서 밖으로 나오게 하느라 나랑 동생이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모른다. 실을 흔들고, 방울을 굴리고, 온갖 재주를 넘어야 겨우 장롱아래에서, 소파아래에서 들락날락거리는 발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그 녀석이 우리집에 온지 3주정도 지났을까,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그 녀석을 찾는다. 장롱 아래, 소파 아래, 베란다 구석구석, 있을만한 곳은 샅샅이 들춰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미안한데...경비아저씨한테 도로 드렸어. 털도 너무 많이 빠지고, 가구를 다 긁어놓고, 물어뜯고, 대소변 냄새도 심하고... 엄마가 감당이 안돼서. 잘 키워주신다 했어. 너네 있을 때 보내면 안된다 할 거니까.
아찔했다. 경비아저씨한테 고양이를 다시 돌려주셨다는 거다. 이해가 안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동생과 나는 그 길로 고양이를 찾아 나섰다. 고양이를 주셨던 경비아저씨는 다른 경비아저씨를 주셨다했고, 또 그 경비아저씨는 다른 경비아저씨를 주셨다했고... 일주일 동안 동네에 근무하시는 경비아저씨를 모두 만났지만, 그 녀석을 다시는 만날 수 없었다. 매일 낮, 매일밤을 울고 눈물콧물 범벅이 돼서 잠이 들었다. 실낱같은 희망으로 그 후로도 한달은 학교만 다녀오면 가방만 풀어놓고 또 동네를 샅샅이 훑었다. 정확히 어디쯤에 있는지도 몰랐던 심장이, 너무 아프고서 알았다. 여기가 심장이구나. 그때 TV를 틀면 나오던 노래가 최희섭의 '세월이 가면'이었다. 아주 나중이지만 백지영의 '총맞은 것처럼'을 들을때도 총맞은 것 같은 게 어떤건지 알 것 같았다. 헤어진 남자친구가 아니라 그 녀석으로 인해서.
세월이 가면 가슴이 터질듯한 그리운 마음이야 잊는다 해도 한없이 소중했던 사람이 있었음을 잊지 말고 기억해 줘요.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별이 오기 전날까지도 혼자서 네 발로 젖병을 지탱하고 우유를 먹던, 그 녀석이 뒹굴던 소파를 부여잡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후로도 얼마나 많이 수시로 울었는지 모른다.
Morrie 교수의 말처럼, 감정의 한복판을 뚫고 내려가 바닥을 찍어야 비로소 그 감정이, 그 경험이 내 것이 되고, 잠시 그 감정과 분리될 수 있다고 한다면 나는 그때 그걸 한 것 같다. 처음이라 잘몰랐고 무식해서 겁이 없어 바닥까지 가 본 경험. 오늘 아침까지도 내 앞에 있었는데 오후에는 없는, 상상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그런 슬픔을 알알이 선명하게.
직면하고,
바닥을 치고,
넘어서고,
일상으로 돌아오는 그 과정을 반복하고,
기분이 태도가 되지 않은 경지에 이르면
그제야 Morrie와 같은 어른이 되고,
삶을 알 것 같은 그 지점이 오면,
생과 이별하는 준비를 하게 되는건가 싶다.
호된 이별들을 겪고
단단해지는 대신 아는만큼 겁만 더 많아진, 아이와 어른 사이의 그 어디쯤.
안 하면 안 될까, 이별...
막상 닥치면 또 열심히
땅바닥에서 헤엄치겠지만...
그래도...
아무도 안 사라지면 안 될까...
안될까...
수시로 중얼거린다.
손에 든 남의 인형을 돌려주고 싶지 않은 아이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