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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7. 2020

E03. 운동을 하지 않았더라면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일이 있다.

우리 엄마에겐 나를 낳은 기쁨이고, 소라에겐 느즈막이 알게 된 술 한잔의 알딸딸함이, 모태솔로던 명규가 시작한 연애가 그렇다. 그리고 나는 운동을 통해 몰랐던 몇을 알아간다.


나는 여성 호르몬이 많은 사람이었다.


짧지만 운동중독에 빠질 만큼 좋아고, 많이 했고, 잘 하고자 다. 사먹은 닭 찌찌만 해도 양계장을 차린다. 책꽂이엔 해부학 서적도 꽂혀 있다. 잡잡구리 지식이 쌓여 퍼스널 트레이너 되기까지 고민해 본 나이지만, 에휴. 근육 성장이 더디다. 들인 공에 비해 근육이 자라지 않는다. 근육근육한 몸을 바란 건 아니지만, 안 근육근육한 몸을 바란 것도 아니니까. 그럴때면 옆에 있던 근육쟁이 남자에게 질투를 느낀다. 펌핑 몇 번이면 풍선처럼 풍풍 불어 나던데, 나는 뭐야. 죽어라 무게쳐야, 각고로 노력해야 찔끔하고 근육 생기는 나는, 여성 호르몬이 콸콸 흐르는 사람이다.


남자라고 다 중량 운동에 능하지 않다.


10kg, 20kg의 덤벨 번쩍 번쩍 드는 남자는, 한정되어 있다. 어제는 안타까운 일 하나 있었다. 케이블 등 운동 하는 중이었다. 옆에는 기구에서 프리 스쾃 하는 30후 40초 즈음의 남성이 있었는데, 쉬는 틈에  그는 바벨 앞에 무릎 꿇고 있었다. 심하게 무리한 모양이다. 한동안 자세다. 이쯤되면 묻고싶다. 왜, 감당 가능한 중량을 넘어야 했을까. 남자라는 이유로 이정도쯤이라 여겼으려나.


모든 남자가 운동을 다 잘하는 것도 아니다. 헬장에 여친 데려와 말도 안되는 운동 가르쳐 주는 오빠 있다. 남자는 군대에서 배운 몇을 데이트에 써먹는 중으로 보다. 오빠 그른 자세 친절히 알려주면, 더 안 본 여친은 열심히 따라한다. 맙소사. 그러다 다쳐요들.


양말로 패션 센스를 맞춘다.


헬스장 공용 찜질복은 반팔, 반바지다. 운동화 위 빼꼼 솟아난 양말 훤히 보인다는 얘기다. 특히 검정양복 양말 길게 늘어 은 다리는 유독 잘 띈다. 발목이 시려 그런 걸지 모르겠다. 아님 요즘 유행한다는 삭스 패션건지도 모른다. 아마 열의 아홉은 출근때 신었던 양말 그대로 신고 온 것 뿐이겠다. 쨌거나 말이지. 헬스장 밖에서 만난 당신은 검정 양말과 샌들을 같이 신고 다닐 것만 같다.


발목의 흰 양말로 나타나는 일부도 있다. 어쩐지 운동화 윗둥에 똑 떨어지는 흰 색의 컬러가, 헬스장 패션마저 신경 쓴 처럼 보인다. 여기서나 찜질복 차림이지, 밖에선 댄디남이지 않을. 발가락 신발 신고 온 사람은 나도 알 수 없다.


나에게 꾸준함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좀 어수선한 사람이라 한 번에 여럿을 벌고, 지긋함 대신 가볍게 발만 담그는 걸 좋아해 상상 못한 꾸준함이, 나에게도 있었다. 처음은 나와 한 약속만 지키자 했다. 출근 도장만 찍자 했다. 억지 발걸음이었는데, 하루, 이틀, 나흘, 칠년이 지났다. 이정도면 꾸준하다. 꾸준함은 나에게 남다른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나에게 넌 그런 사람이라는,자존감을 안겨 주었다.


운동 하지 않았더라면 알 수 없었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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