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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12. 2020

어린 사랑(1)

E01. 어린 나

소설까지 쓰게 될 줄이야.


스물의 3월 2일, 개강겸 입학식 날이다. 매일 기다리기만 하느라 오지 않을 것만 같던 날이 오늘 내게 와 있는 거다. 분에 분주한 아침이다. 침 일찍 일어나 머리 감고 말리고, 고데기로 앞머리 손질 하고, 풀 메이크업도 고, 음음. 최선을 다해 무조건 존로 보였으면 한. 사실 들은 소문이 있다. 예쁜 애들은 입학 첫날부터 동아리 가입하라는 오퍼가 장난 아니라는 얘기. 나도 그 대열에 끼고 싶다,는 갖은 바람 아침밥 생각도 없다. 고픔도 잊게 만든 설렘이 내게 차 있다.


"엄마 나 갔다 올게!"

대학생이 된다는 참신한 설렘과 함께 집을 나섰다. 태어나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 왠지 내게 벌어질 것 같아 기분이 좋다. 느낌이 좋다.




운이 좋아 재수를 면했다. 고3은 고3으로 족하다는 이른 깨달음이 도왔다. 1년을 더 수험판에 놀아난다는 생각만해도 소름 끼다. 때문에 입시 지옥에 벗어나기 위해 몹쓸 힘 다해 싸웠다. 하루 빠른 신분 전환을 꿈꿨더랬다.


나는 대한민국 수험생이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고등학생 대신 수험생으로 살았다. 공부하기 위해 눈을 뜨고 체력 보충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철저히 "조금이라도 더 낫거나 좋은" 대학교 입학을 위한 삶이었는데, 덕분에 학창시절에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포기했다. 햇볕 보는 일마저 포기해 늘 시들시들한 열 여덟, 열 아홉다. 가장 잦게 걸리던 병은 복부팽만이다. 하루 12시간은 더 책상에 앉아 있다보니 어찌나 가스가 차던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까쓰프리 한 알 씹어 먹는 게 다. 병들어 가는 나를 보며 누구하나 잘못 된 일이라 가르치지 않았다. 오히려 잘하고 있는 축에 속했는데, 엄마는 그랬다. 연애는 대학교 가서 하는 거야, 인생엔 때가 있는데 지금 너의 때는 입시공부야, 너 그거 아니, 엄마는 공부가 하고 싶어도 더는 두뇌가 휙휙 돌아가지 않는 바람에 그럴 수도 없어, 아직 그 시기에 있는 네가 부럽다 지지배야.


"엄마는 그런 딸이 지금에 최선을 다했으면 좋겠어. 착하지 우리 딸?"

"아 알겠어. 그만 좀 말해."


천성이 고분고분하지 못해 지랄스런 대꾸를 하면서도 말은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


나는 태어나 자라며, 그리고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내 연애 한 번 못 해본 모태솔로다. 고등학생때야 공부에 치여 그랬다 쳐도, 중학생 때는 기회가 없었다. 여중이었다. 대충 설명이 되려나. 여중에 다니다 보니 코빼기 뵈는 남자라곤 선생, 급식 날라주는 오빠, 학원에서 만나는 동급생, 이게 다였다. 가능성 제로의 환경이다. 제자가 선생을 짝사랑하는 케이스도 드문 있다고는 들었다. 다만 우리 학교에선 말이 아니라 방구 같은 소리였다. 일단 선생 대부분이 여자였고, 어쩌다 마주친 남자 선생은 하나 같이 헤어에 문제가 있어 새하얗거나 완전 벗겨지거나 덜 벗겨지거나 셋 중 하나를 하고 있었다. 유일한 특이 종도 하나 있긴 했는데, 거뭇하며 풍성한 머키카락을 갖고 있던 20대후반 남선생은 사이코였다. 차라리 민머리가 나았다.


학원 동갑 애들은 지나치게 유치했다. 나는 걔들을 보며 도대체 왜, 전단지에 찍힌 학원 선생 이빨 검정 펜으로 물들이고, 그 얼굴을 다시 보는 게, 뭐 때문에 배꼽이 빠져라 웃을 일인지, 이것이 중딩 남학생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수 없었다. 개유치더 싫은 건 걔들 중 한 명한테 고백 았다는 사실이. 세상 쪽팔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비밀인데, 그날도 원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야. 세윤이가 너 좋아한데." 웃음의 한 가운데 있던 문세윤 닮은 남자 원흉이었다. 소 말 한 마디 걸지를 않더니, 고백마저 대리 시키는구나. 난 그날 고백 그 자체와 대리 고백 모두를 처음 받아봤다. 그리고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일이 이렇게 불쾌할 수 있는지 또한 처음 알았다. 문의 친구 얘길 다 듣고 내 얼굴이 시뻘개 있었다. 으악! 그냥 느끼하고 짜 너무 싫었다. 불과 10초 전으로 돌아 든 걸 없던 일로 하고 싶었다. 하여튼 생 모르고 싶은 일이었으나, 그럴 수 없어 못 들은 척하고 자리를 도망쳤실내화 가방 구겨 들고 얼마나 세차게 뛰었는지 모른다. 그리고 달리는 바람에 상한 귀가 씻겨져 나가길 바랐다. 내일도 불러세워 내 대답만 기다리고 있다는 대리 독촉은 받지 않길 바랐다. 그땐 그런 나이었다. 유치한 네가 나를 좋아면, 나는 숨고 싶어졌다.



유치뽕짝던 애들이 사는 세계완 다른 곳에 왕자님도 존재했다. 급식오빠는 "배식 왕자님"이었다. 점심시간 전이면 많은 알바 오빠들이 우리반 복도까지 트레이를 날랐다. 학교 급식소는 같은 학교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사용했기 때문이다. 급식오빠 출몰할 때 마다 우리는 뒤에서 낄낄 거리거나 지나가던 친구를 툭하고 오빠 옆으로 떠밀었다. 여중에 온 젊은 남자를 사춘기 여자애들이 가만둘리 없었다. "어머머 죄송해요. 애들 장난이 심하죠?" 지가 밀어 달라고 해놓고, 구라까고 있네. 아무튼 서로를 밀어주고 부딪치며 살았다.


보통 평범하게만 생겨도 우리의 먹잇감이 되었는데, 어느날 보통 이상의 얼굴을 한 오빠가 나타났다. 바로 우리 배식 왕자님이다. 그쯤 나이의 아이들은 비슷한 이상형을 갖고 있었다. 나만 유별나기 싫은, 사춘기 증상 중 하나랄까. 너나 나나 걔나 할 것 없이 우리 여중 애들은 배식왕자를 흠모했다. 나라고 다르지 않았다. 다만 맹목적으로 좋아하기 대신 이유가 있었는데, 우선 중학교 1학년 14살, 나의 수준엔 중딩 대신 이십대 오빠가 맞다는 판단이었다. 삶이란 얼마나 고달픈 것인가, 그럼에도 나는 왜 당신을 사랑하는가,따위가 오빠완 통할 거 같달까. 오빠의 조용하며 힘이 센 모습도 좋았다. 족히 20kg는 되는 대형의 트레이를 수업 중 몰래 가져다 놓고 사라지는 걸 보면 그랬다.


경쟁자이면서 우리 마음은 하나라 작전을 짜기도 했다. 자꾸만 소리없이 등장했다 사라지는 오빠 때문이었다. 오빠를 보기 위해 수업 중 오줌 마려운 척을 기로 했다. 화장실 가는 척 변기에 앉아 숨어 있다가 배식왕자님이 나타나면 복도에 뛰어든다는 게 우리 시나리오다. 수업 3교시가 되고, 작전을 개시했다. 수업 내내 화장실에 서 그를 기다렸다. 그 사이 고무 장화에 흰 색 가운, 흰 색 조리모자의 남자 몇이 왔다갔다 했는데, 우리오빠야? 싶으면 다른 오빠가 트레이 날랐고, 또 오빠왔어?하면 꼴뚜기 왕자가 나타나 우릴 실망시켰다. 결국 쉬는 시간 종이 올릴 때 까지 배식왕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 후로 며칠 더 보이지 않았는데, 알바를 때려친 모양이었다. 젠장. 몰래 훔쳐만 보던 사랑도 그걸로 끝이다.



연애, 해보고 싶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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