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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Jun 28. 2022

아 시댁 가고 싶다

미친 사랑의 노래


나의 남편은 터키인입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나를 수호하러 한반도까지 와준 사람이죠. 고로 그의 고향이자 나의 시댁이 위치한 곳은 터키입니다. 크리스탈처럼 투명한 바다에 맞닿은 시퍼런 하늘, 습하지 않아 가볍게 스치듯 두 뺨을 훑고 가는 바람이 있는. 아. 요즘이라면 시댁에 가고 싶어 입안에 가시가 돋습니다. 따가워서 맥주로 치료 중입니다.



하나로 이어질듯 한결 같은 푸름



우선 터키에 가면 빨래가 잘 마릅니다. 빨래엔 피죤이 아니라 ‘빨래엔 터키’라는 말은 작년 이맘쯤 터키에 지내며 내가 지은 말입니다. 너는 족족 건조율 100%로 빨래가 마르고요, 티셔츠며 바지를 만져보면 바삭바삭합니다. 온통 햇살을 머금어 빨래를 쥔 손에 따땃함이 전달되지요. 습기로 온몸은 축축 무겁고, 시럽을 바른 것 마냥 끈적함이 질척이는 한국 장마철과 터키의 여름은 몹시 다릅니다. 그러고 보면 날씨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은 실로 위대합니다. 나무에게, 꽃에게, 잔디에게 있어 기후처럼. 인간도 별수 없이 자연에 종속된 존재임을 두 눈으로 두 뺨으로 온몸으로 감각하게 한 터키입니다.



맥주엔 과일?



또 내가 좋아하는 맥주 보몬티도 있어요. 청량함이 목구멍 타고 내려와 가슴까지 이어지는. 아, 내 위는 이쯤에 있구나 하고 장기 위치를 기억하게 하는. 가벼운데 톡 쏘고 쓰지 않지만 적당히 알콜향은 풍기는 보몬티는 터키에 있던 중 챙겨 마신 맥주랍니다. 터키에 가야 할 핑계라면 한국에선 보지 못했기 때문이고요. 그렇다고 오롯이 맥주 때문은 아닙니다. 하하. 형형색색 무지개 빛을 뽐내는 과일은 또 어찌나 다양하고 달던지요. 복숭아, 자두, 수박, 멜론, 청포도, 사과, 바나나, 무화과, 딸기가 마트 한 코너에 버젓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맛이라고 밍밍할쏘냐. 그것도 아닙니다. 먹는 과일마다 달달하기가 혀를 녹입니다. 무화과를 특히 즐겨 먹었는데, 표면엔 늘 끈적하게 응고된 투명한 물방울 같은 게 있었거든요. 당 응결체였더군요. 꿀 떨어진다는 말을 터키 과일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다들 잘 지내고 계시지요



무엇보다 터키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가족이 있습니다. 한국이 느슨한 연대를 추구한다면, 터키는 여전히 가족 중심 사회입니다. 1세대에서 2세대, 때론 3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은 보통, 아빠 퇴근 시간에 맞춰 기다렸다가 둘러앉아 식사를 하고요, 식사 후엔 ‘차이’라는 터키 티와 ‘바클라바(터키 전통 파이)’랄지 ‘해바라기 씨’, ‘로쿰(터키 젤리)’를 먹으며 담소를 나눕니다. 가족 공동체 안에 문화가 형성되지요. 남편과 시아빠 대화 주제와 빈도를 듣고 볼 때마다 새삼 이게 가족이구나 싶기도 했습니다. 시시콜콜한 이야기가 끊임없이 오가거든요. 여태 봐 왔던 여느 부자지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었지요. 우리 아빠랑 할아버지만 해도…(까악까악).



에르바(6)/어린시누



그리고 내 어린 친구. 터키 안탈리아엔 올해 6살 된 시누 에르바가 있습니다. 얘는 나를 볼 적에 “새언니!”라고 합니다. 알고 말하는 건지, 그 뜻을 물으니 오빠의 아내라서 부르는 거라고요. 시엄마가 가르쳐 주셨나봐요. 새언니, 새언니, 열심히도 부릅니다. 얘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은 당황하고 이틀에 하루걸러 화나기도 했습니다. 하루는 저 오줌 눌 때 곁에 있어달라기에 기다려줬더니, 나 오줌 누고 있으니까 화장실 문 활짝 열어두고 도망간 거 있죠. 시아빠라도 오실까 덜덜 떨며 5G 급으로 마무리 해야했던, 휴. 미안하지도 않은지 간신히 밖으로 빠져나온 나를 보고 엉덩이는 뒤로, 고개는 앞으로 내민 채 메롱메롱하듯 꺌꺌 대던 아이입니다. 손은영(동생)이었으면 넌 그 자리에서 아작일 텐데. 그러더니 내가 받은 상처는 어쩌고 아무 일 없던 듯 에르바 내 손 붙잡더니 병원 놀이하자 합니다. 작고 보드라운 그 손길이 내 손바닥에 스윽하고 폭 안기는데 오븐에 마시멜로 녹듯 화가 싹 사라졌습니다. 에르바랑 있으면 뒤끝 없고 단순하던 걔처럼 나도 변하는 것이, 아무렴 고마웠습니다.



비행기 타고 가요



아 시댁에 가고 싶어죽겠습니다. 나 같은 며느리가 어딘가 있기는 하겠죠. 책 쓸 때마다 깨닫지만 이해 안 될 나라도 나 같은 사람이 어딘가는 있더라고요(혼자 사는 세상이 아닙니다). 거참. 어쨌거나 시댁에 가고 싶다는 나는 퍽이나 반겨야 할 장한 며느리상 감이건만 시간이 허락하니 주머니 사정이 가지 말라 합니다. 시간이 있어도 옴싹달싹 할 수 없는 자유를 꿈꾸며 퇴사하진 않았습니다만 올해 여름은 미뤄야하나봐요. 짱구를 또르르 굴려봐도 시원한 답이 없어 이렇게 글로만.



그리움에 한이 서린 이 며느리에게 혹시 항공권 후원해 주실 항공사 없을까요.

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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