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픔은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이내 사라지는 것

생체실험 : 단식(3)

by 손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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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ym종국은 결코 깐깐하지 않다

첫 단식, 38시간 30분





배고픔은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이내 사라지는 것



도서 『잠시 먹기를 멈추면』 중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배고픔은 사라지는 것.”



배고플 때 먹지 않으면 결국 배고픔은 지나간다는 말이다. 배고픔은 습관이라는 문장도 눈에 끌었다. 결국 이 모두를 통틀어 어쩌면 살며 겪었던 허기 대부분이 허구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치 파블로의 개처럼 특정 조건에서 반응하도록 스스로를 내몰았기 때문에 조건만 형성 된다면, 실제와 무관하게 배고프다고 착각해 왔던 건지도.



허기 느낀 즉시 무언갈 섭취해 꼬르륵 거리는 위를 달래주려고만 해왔다. 사라지도록 놓아둘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내 영역에 없던 사고였기 때문이다. 대신 붙잡은 채 왜 그러느냐고, 내가 해결해 주겠다며 아득바득 달라붙어 주었다. 배고프다고 꼭 먹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데. 그렇게 배고픔의 유일한 해결이 섭취는 아니라는 새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몸의 반응을 계속해 살폈다



그렇게 된다. 배가 고프므로 신경이 배에 쏠리게 된다. 온 몸이 민감해진다. 예민과 민감은 한끗 차이다. 그리고 나는 예민해졌다고 하지 않았다. 민감해졌다. 생각하건데, 날것과 같은 몸뚱어리 하나 남아 그런 것이리라. 마치 나를 둘러싸던 단단한 껍질을 벗어 연약한 살이 고스란히 드러난, 그래서 작은 터치에도 민감해지는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때로 나는 몸이 하는 언어를 처음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무뎠던 나라서 들을 수 없던, 그 말들을 말이다.



몸은 상당한 이야기를 건네주었다.





배고픔은 수시로 몰려온다



그러나 그것이, 더는 배고픔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시장기는 파도처럼 몰려와 ‘먹으라’며 매 순간, 유혹했으며 때마다 나를 시험하는 이 유혹이 충동에 그치지 않도록, 허기가 힘을 잃고 사라지도록 외면해야 했다. 그럴 때 마다 차를 홀짝였다. 지인에게서 받은 우롱티를 한 가득 우려내 잔 가득 채웠다. 단식 기간 중 차는 마실 수 있다. 감미료만 들어가지 않으면 된다. 얼마든 마실 수 있으므로 수시로 내려 홀짝이면 된다. 물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저녁엔 샷 하나만 넣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숭늉처럼 커피콩 고소한 맛만 남도록 연하게 내렸다.



저녁이 되니 곧 잠에 든다는 안도(?)와 이 또한 지나가리 따위 마음이 한데 섞여 여유가 생겼다. ‘배고파 뒤지는 거 아닌가’하며 생의 반대, 몰을 걱정하기도 하던 사정이 사라지니 활동적인 무얼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낮에는 가만히 소파에 앉아 독서만, 영상만 소비하고 있었다. 아 참고로 먹는 장면이 나오는 영상은 틀지도, 보지도, 심지어 스쳐 지나가게도 하지 않았다. 허기가 배가 되어 내면 싸움을 부추길 수 있었다. 그냥 먹어와 좀만 버텨 간의 치열한 다툼. 단식하기로 해놓고서도 막상 배고파지면 번뇌하는 뇌를 구태여 휘젓고 싶지는 않았으므로 음식이 빠진 영상만 봤다. 물론 냉장고 근처에 가지도 않았다.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두고 강연 준비를 했다. 정신없이 몰입하기 좋은 일이었다. 앞서 소개한 책의 저자이자 의사인 제이슨 펑은 오히려 바쁜 날 단식하라고 한다. 배고픔 느낄 틈을 줄이는 일종의 노하우란다. 그리고 강연 준비하는 동안 정말이지 배고픔을 잊었다. 꼬박 2시간이 지났고, ‘되는구나’하는 체득에 단식에 대한 자신감이 붙은 계기가 되어주었다. 밤 9시였다.





밤 12시, 잠에 들다



자는 내내 렘수면을 했다. 얕은 꿈. 꿈에선 글을 썼다. 단식에 관한 것이었다. 짧은 인터뷰를 했던 것도 같다. 잊기 전에 최대한 글로 남기려는 시도를 했다. 잠깐 깼다 다시 잠든 사이 말레이시아에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했다. 웬 소매치기가 돈을 훔쳐 달아났을 때 한 남성이 나타나 도와주었다. 도둑놈이 쓴 말레이시아 돈 일부를 제외하고 전부 찾을 수 있었다. 그에게 너그러이 용서할 테니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하며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연예인 김성주가 영앤 리치와 재혼을 했다. 민국이는 보이지 않았다.



밤 12시 59분, 새벽 2시, 새벽 7시. 세 번에 걸쳐 잠을 깼고 실은 우려보다 훨씬 잘 잘 수 있었다. 뜬금없는 고백이지만 내게 편견이 있었다. 배고픈 상태로 잠에 들면 꼭 잠에 깬다. 억지로 자보려 하지만 1시간 만에 또 다시 깬다. 새벽 내내 이 짓을 반복하다 보면 다음날 아침 피곤함에 좀비가 된다. 하루를 망친다.



‘고로 잠은 배고픈 채 자는 거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 크게 걱정하였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것 아닐까. 결국 연달은 잠에 실패해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워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럼 내일은 어떡하지. 내일도 살아야 하는데.


다행히 우려는 우려로 끝났고, 그렇게 단식 34시간이 지난 다음날 새벽 7시를 맞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