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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Sep 23. 2020

#25. 존재감과 직업(종결)


“쟈스민은 자존감이 높구나. 다음엔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봐. 어쩌면 자존보다 더 중요할 수 있어.”


머리에 맴도는 물음표 때문에 섣불리 “네”라 대답할 수 없었다. 여태 존재감이란 무엇인지 고민해 본 일 없기 때문이다. ‘존재감, 존재가 있는 감. 내가 여기 있음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인가? 인싸? 그런 거?’어쨌거나 한 번 고민해 보겠다는 말로 덮어 두고 지냈다.


얼떨결에 작가가 되었다.

“글 써볼래?”에서 “책 한 번 써볼래?”로, 재미삼아 했던 일에 출간작가라는 타이틀까지. 직장인이며 작가라는 두 개의 캐릭터가 생긴 거다. 사실 의미 없이 했던 일이라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래, 한 번 써보자.’ 단순한 결심으로 써 나갔지, 작가가 되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럴싸한 내가 되기를 바랐지만, 그게 작가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다 엉뚱한 곳에 적성과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모니터와 마주보고 앉아 있는 이 시간. 고요함 가운데 들리는 소리라곤 평소의 상념과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뿐. 흰 바탕 위 텅 빈 화면 오직 나의 출력에 의해 채워가는 “PLAY THE KEYBOARD” 할 때만 가질 수 있는 몰입감이 꽤나 즐거웠다.


읽기 시작하며 글이 주는 힘을 알았다.

어쩌면 힘을 알기 시작한 때 본격적으로 읽게 된 걸 수 있다. 무엇이 우선인지 나는 모른다. 다만 방치되 외면당하던 작은 재능으로 내가 받은 도움을 누군가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는 것만은 안다. 내가 공지영 소설을 읽고 일어날 힘을 얻은 것처럼, 팀 페리스 책을 통해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생동 넘치는 날을 보내는 것처럼. 나의 강함과 약함을 내보여, 동정 어린 지난날을 써 보여 당신을 살아가게 만들지도 모르는 일이라는 걸 안다.


3할은 독자 덕이다.

처음 출간한 책에는 여러 개의 내가 실려 있는데, 읽는 사람마다 다른 챕터의 다양한 나의 이야기로 인사를 걸어왔다. 저마다 와 닿는 구절이 달랐던 모양이다. 그러나 한 가지. 인사 건네던 모두는 공통적으로 말했다. 잘 읽었다고. 대견하고, 고맙다고. 그리고 감사한 존재가 내가 되어버린 그때. 잘, 좋은, 양질의 글로, 선한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다. 13,000원짜리 책 한 권으로 감화된 당신들이, 나를 감화시켰다고나 할까. 나를 만들어준 그들 덕분이다. 완전히 선한 일이라기엔 어쩐지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려 있어 “다만 선하게 돈 벌자.”라는 조건이 붙지만. 적어도 그런 내가 되고 싶어졌다.


선생님 말이 떠오른다.


“존재감에 대해 생각해 봐.”


조금은 알 것 같다. 존재감의 다른 말은 사명감이라고. 내 영향이 미치는 일, 나에게 임무로써 주어진 듯한 일, 내가 해야만 할 것 같은 일,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나여야 하는 일. 그렇게 쓰는 일이 나에게 사명과 존재감을 심어준다.


덕분에 나는 알게 된다.

이 산업 군에 종속되어 있다는 것이, 단지 나에게 소정의 월급 이상은 아니었다는 것을.

개중 능동적인 나도 있었지만 수동적인 내가 더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고, 나 없인 안 되는 일도, 꼭 내가 해야 하거나 나서 돕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는 걸. 사장에게 흠씬 미안하다.


그렇지만 삶이 하나라면, 이왕이면 뜻 있는 곳에 잘 쓰이고 싶다는 욕심은. 내려놓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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