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천적이고 둔감한 나는 그 감정이 외로움이었단 걸 몰랐던 거지. 아무리 재밌는 비디오를 본다 한들 아무리 크고 멋진 사슴벌레를 잡았다 한들, 이따금 옆구리 갈비뼈 사이를 비집어 들어 박동치는 심장 곁을 서늘하게 조여드는 헛헛한 감정은 당최가 이유도 모르겠고 쉬이 사라지지도 않았어. 내가, 기집애가 아닌 머심애가 옆집에 왔었으면 했던 것도, 혹은 현우 집이 우리 집과 가까웠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던 것도, 사실은 나도 외로움을 타고 있었다는 거겠지.
안 그래도 무거운 기집애가 어깨에 걸터앉는 것만 해도 죽을 거 같은데, 이젠 밟고 올라서겠다고 하는 것이다. 똑똑한 애인 줄 알았는데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니 기가 찼다. 갈수록 심해지는 저 광증을 그때쯤엔 알아채고 도망쳤어야 했다. 그랬다면 어깨는 몰라도 최소한 허리는 보존했을 텐데.
결국 그 애는 나무에 올랐다. 목마를 탄 채로 내 머리와 목을 이리저리 흔들어대더니, 이윽고 어깨에 발을 딛고 일어서는 데 성공했다. 나름의 절충안이었다. 내 어깨를 밟고 서는 대신 나무에 기댄 채 천천히 일어서기로. 그렇다고 해도 어깨는 아작나기 직전이었지만.
그렇게 나무 위, 두 가지 사이로 올라선 그 애는, 좀 더 옆으로 비스듬히 자라 여러 갈래로 나눠진 한쪽 가지에 발을 디디고, 조금은 더 굵고 더 길게 뻗은 다른 쪽 가지를 오르기 시작했다. 큰 가지에서 돋아난 잔가지 하나를 밟아 오르고, 또 다른 가지를 잡아 제 몸을 끌어당겼다. 나무에 처음 올라간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꽤 능숙하게 오르는 모습을 보니 신통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해피도 그 모습이 신기한지 멍하니 올려다보다 간간이 깡하고 짖기도 했다.
밑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게 그 물체는 그리 높은 곳에 있는 건 아니었다. 그 애는 곧 아까 저가 가리켰던 검은 물체 가까이에 다다라, 여러 가지들 사이에 이윽고 제 다리를 걸치고 앉았다.
그런데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인데도 왠지 그것을 잡진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는 것이다.
나무 밑에 퍼질러 앉아 뻐근하게 조여오는 목과 어깨를 연신 두드리던 나는 이해할 수 없는 그 애 행동에 슬며시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야아... 뭐 하는데”
스멀스멀 오르는 찝찝한 예감을 제쳐두고 넌지시 그 애를 불러봤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것을 관찰하던 그 애가 흠칫 내려다봤다.
“어, 어어... 어어?”
뭐야, 왜 저래?
“뭐 하냐고오”
그러니 그 애는 나와 그 물체를 몇 번 번갈아 보더니,
“어어... 어! 나는 괜찮아!”
뭐래는 거야.
“아니이이! 그거 안 잡고, 뭐! 하냐고오!”
누군 저 올려주느라 온몸이 쑤셔 죽겠는데, 저는 위에서 느긋이 헛소리나 해대니 짜증이 났다.
그 애는 잠시 날 빤히 내려다보며 침을 꿀꺽 삼키더니, 이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어, 그... 날아갔나 본데?”
쟤가 지금 진짜 뭔 소릴 하는 거지?
“뭐가 날아가?”
그 애가 검지손가락으로 제 턱 주변을 머뭇대며 긁었다.
“그... 사슴벌레”
아니,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제 앞에 버젓이 있는 놈을 날아갔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설마 불길한 예감이 맞는 걸까.
“니 앞에 있는데 어딜 날아가?”
그러니 그 애가 태연스럽게 양손을 들어 보이는 것이다.
“응 어디? 아아 이거? 이건 그냥 검은색 나무껍질이야, 내가 말한 건 이게 아니고, 아까 여기 어디쯤 붙어있었는데 올라와 보니 없네, 히히히, 그새 날아갔나 보다야, 어쩌지? 아쉽다 그치이?”
주위를 살피는 척하며 천연덕스럽게 웃어 보이는 그 표정을 보니 심사가 뒤틀리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아니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맞다고 끝까지 우겨대는 바람에 나무에까지 올려줬더니 저런 소릴 하고 있다. 뻔뻔한 기집애. 더 추궁해봐야 저번처럼 시치미만 뗄 게 뻔했다.
“이 씨... 나 갈끼라”
주섬주섬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그러니 그 애가 당황한 듯,
“야 어디가? 야! 잠깐만! 야아 가지 마아, 잠깐만 있어 봐아!”
애처롭게 부르는 소리가 자꾸 귀에 거슬려,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엄중히 선언했다.
“니랑 안 놀 끼라!”
그러다 잠깐 그 애 모습이 보였다. 허둥지둥 나무를 내려오려는 듯 밑을 내려다보며 다리를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올라갈 땐 잘 올라가더니 내려오는 건 또 아닌가 보다. 밑에 가지를 디디려 애쓰는 거 같은데 아무래도 잘 안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나를 애타게 부르는 것이다. 꼴 좋다. 될 대로 되라지.
해피는 멀어져 가는 나와 나무 위에서 허우적거리는 그 애 사이에서 낑낑거리며 갈팡질팡했다.
뒷동산 어귀를 지나 샛길에 다다랐다. 해피는 그 애가 내려오는 걸 지키고 있으려나 보다. 저 쪼꼬만 녀석이 무슨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녀석이라도 남아 있으니 어떻게든 하겠지 뭐.
길 안으로 발을 디뎠다. 몇 걸음 가고 있을 때 문득 저쪽 어두컴컴한 숲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길을 가로막고 있는 굵은 나뭇가지 밑에 아까 내가 주저앉을 때 생겼던 동그란 자국이 얼핏 보였다.
“하...”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났다.
나무로 돌아갔다. 그 애는 어느새 두 가지 사이에까지 내려와 있었다. 아마 내려오느라 애 좀 꽤나 먹었겠지. 그건 참 쌤통이다. 그런데 12살짜리 꼬마가 내려오기엔 나무가 너무 높았는지 아직 그 위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우물쭈물거리고 있었다.
다가가니 해피가 깡 짖고는 반갑다는 듯 꼬리를 흔들며 뛰어왔다. 그러니 나무 위에서 하염없이 밑에만 내려다보고 있던 그 애가 고개를 들어 환히 웃어 보였다.
“왔구나아, 돌아올 줄 알았어, 히히히”
씨... 오지 말았어야 됐나. 나무 위에 갇힌 모습을 보니 한편으론 가여운 마음이 들었지만, 언짢은 내 기분도 모른 채 눈치 없이 실실거리는 모습은 얄밉기 그지없었다.
나무 멀찍이 멈춰 서 따끔하게 추궁했다.
“니 솔직히 말해! 아까 그거 벌레 아니었제!”
그러니 나무 위에 위태롭게 쪼그려 앉은 그 애가 양손을 모아 애처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우응... 미안해”
“와 거짓말 했노!”
“네가 뭐라 할까 봐 그랬지... 진짜 미안해”
눈썹을 쭈그리며 한껏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이니, 조금 마음이 누그러졌다.
“치... 이번 한 번만 봐준다이, 다음부턴 쫌 우기지 마라!”
“응! 다음부턴 진짜 안 그럴게, 고마워! 히히”
다시 그 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잡아줄게, 한 발씩 내리와”
나무 밑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순간 그 애 표정이 이상했다. 눈이 크게 떠져 왠지 흥분한 듯 흔들리고 있었고 입이 쭈욱 찢어져 허연 이를 전부 드러내고는 히끗히끗거리며 요상하게 웃는 것이다. 쪼그려 앉은 자세로 움찔움찔 떠는 모양새가, 뭔가, 위험하다는 느낌이 퍼뜩 들었다.
“야 야, 잠깐만, 한 발씩.......”
“받아줘! 히얏!”
나무 밑에 채 닿기도 전에, 별안간 그 애가 이쪽으로 뛰어들었다.
내 키보다도 훨씬 높은 곳에서 덩치마저 큰 기집애가 날다람쥐라도 되는 양 사지를 활짝 펼친 채 덮쳐왔다.
이 마을에서 나는 혼자다.
예전에 동갑내기 친구가 하나 있긴 했는데, 어느 날 녀석이 홀연히 이사를 가버리는 바람에 인사조차 못 하고 헤어지게 됐다. 그 이후 이 마을엔 내 또래는 하나도 없고, 전부 2살 이상 차이 나는 형과 누나들 그리고 이제 겨우 2학년이 된 애기들이 몇 있을 뿐이다.
가끔 이런 고민을 하곤 했다. 예전에 형 누나들이 한참이나 어렸던 날 데리고 놀아줬던 것처럼 나도 게네들과 놀아줘야 될까. 글쎄 잘 모르겠다. 어리고 유치한 그 녀석들과 놀려면 좀 답답하고 따분할 거 같다. 그리고 아마도 내가 대장 노릇을 해야 될 텐데, 나는 그런 귀찮은 짓은 딱 질색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예전에 내가 하염없이 어렸을 적에 형들이 나를 보면서도 같은 생각을 했을까.
내가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국민학교 시절부터 동네 형 누나들은 저들의 놀이에 나를 곧잘 끼워 놀아주곤 했다. 얼음땡 같은 건 너무 단순하고 시시해서 잘 안 했고, 보통은 땅따먹기, 도둑발, 비석치기, 깡통, 팔짝 등을 주로 했었다. 당연히 놀이를 제일 못했던 나는 주로 깍두기로 참여했고 늘상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가끔은 너무 못한다고 놀림받기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좋았다. 형 누나들은 참 크고 멋지고 세련됐으며 능력들이 출중했다. 그래서 그들에 끼어 놀 수 있는 건 내겐 뿌듯하기만 한 일이었다. 나도 언젠가 크면 꼭 그들과 같이 기운 넘치게 뛰어다니리라 생각하며 가슴을 벅채우곤 했다.
고학년이 되고부터, 제일 나이 많은 누나가 어느새 고등학생이 되고 다른 형 누나들도 중학생이 되더니 동네에서 뛰어노는 일이 점차 줄어들었다. 지금은 주말에 구판장에 갈 때나 가끔 길에서 마주치곤 한다. 그래도 작년까진 뒷동산에서 축구에 끼워주던 6학년 형 3명이 있었는데, 그들마저도 올해부터 중학생이 된 터라 지레 안 놀아주겠지 싶어 기대를 접었다. 중학생이 된 형들은 초등학생보다 학교를 일찍 가야 했고, 그래서 아침에 버스도 같이 타지 않게 됐다. 혹시 봄이 되면 다시 축구를 하자고 부르지 않을까 싶어 아무도 없는 뒷동산 잔디밭을 괜시리 기웃거려 보기도 했다. 그래, 때 이른 봄 굳이 늙은 참나무를 보러 간다는 건 사실 핑계일지 모른다. 쓸쓸한 바람만 홀연히 불어대는 허전한 뒷동산을 마주하고 돌아오는 길이면 이유 모를 헛헛한 감정에 쓴 입맛을 다시곤 했으니까.
그래서 이 마을에서 나는 혼자였다. 적어도 그 애가 오기 전까진.
나는 언제부터 그 애를 친구로 보게 된 걸까. 되돌아보면 우리의 첫 만남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애초에 나서기 싫어하고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내게, 처음부터 적극적이고 호쾌하게 다가오는 그 애가 거북스러운 건 당연한 거겠지. 그런데 이젠 그 애가 나보다 키가 크고 더 잘 뛰고 활발하며 주도적인 게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 애가 우리 옆집으로 와서 정말 다행이다.
“야 찡찡아! 찡찡아! 일어나 봐”
“뒤진 거 같진 않은데 ㅋㅋ”
“야아, 말 조심해라아”
“걍 기절한 거 같은데, 쫌 있음 일어날 끼라”
“찡찡아아, 괜찮나? 정신 좀 차리 봐아”
“아 고마 해라, 걍 놔두므 일어날 끼라니깐”
“쪽팔리가 기절한 척하는 거 아이가? ㅋㅋ”
“아 쫌! 그라지 좀 마라 임마”
주위가 소란스러워, 무의식 저편에서 놀고 있던 정신이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들의 말소리가 점점 더 선명해지더니, 이내 내 볼을 살짝 꼬집거나 만지작거리거나 이마를 쓰다듬는 촉감들이 의식을 더더욱 가까이 당겨왔다. 그 와중에 해피가 연신 핥아대는 혓바닥의 치덕함도 점점 선명해졌다.
“어! 눈 뜬다! 눈 뜬다!”
“찡찡아! 정신 차맀나”
“거 봐, 쪽팔 리가 기절한 척한 거라니까, ㅋㅋ”
“아이, 진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걱정스런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창명이 형의 얼굴이었다. 그리고 흐릿했던 시야가 선명해지며 형 뒤로 곧 다른 익숙한 얼굴들도 눈에 들어왔다.
“야, 니 괘않나?”
“찡찡아, 괘않나?”
“새끼 이거 완전 띠리하네, ㅋㅋ”
“어데 뿌라진 거 아이제?”
그리고 한 쪽에, 벌겋게 부은 눈으로 훌쩍이고 있는 그 애가 보였다. 얼굴 이리저리 눈물 자국이 번져있는 꼴이 제법 볼만했다.
정신이 드니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행님아...”
그러니 창명이 형이 날 일으키려 팔을 잡았다. 옆에서 석주 형도 거들었다. 영대 형은 그 심술궂은 성미 그대로 뒤에서 연신 비아냥거리기 바빴다. 나이가 제일 많은 창수 형은 매사에 무관심한 성미대로 저 혼자 공이나 차며 잔디밭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문득 그 애가 나서 뒤로 오더니 내 몸을 안아 들어 올렸다.
“내가 일으켜 줄게!”
순간 허리에서 찌릿한 통증이 터졌다.
“아! 아악! 잠시만!”
엄청나게 아팠다. 내 생에 그렇게 아픈 통증은 처음이었던 거 같다. 아까 그 애가 덮칠 때 맨땅에 내리깔리며 그랬는지, 어딘가 부러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아닌 상황이 서러워 울음이 터졌다.
그러니 형들은 괜찮냐며 내 몸을 살피기 시작했고, 그 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벌벌 떨었다.
허리가 부러진 건 아니었다. 옷을 걷어보니 허리 한쪽이 멍들어 있었다. 조금 있으니 저릿한 통증만 남아 천천히 움직일 수는 있었다.
기절한 건 처음이었다. 허리가 먼저 땅에 닿은 덕에 머리를 부딪힌 거 같진 않은데, 아마 그 애 몸무게에 깔리며 쇼크를 받은 거겠지.
그날 그 애는 형들과 축구를 하며 놀았다. 나는 몸도 성치 않거니와 기분도 꾸릿해 그냥 저들이 노는 걸 구경하며 해피와 있었다. 그 애는 형들에 비하면 공을 잘 차진 못했지만, 열심히 뛰어다녔다. 누나들은 공 차는 걸 별로 안 좋아해 보통 축구에 참여하진 않았지만, 그 애는 곧잘 뛰어다니니 창명이 형과 석주 형 마음에 썩 들었나 보다.
나중에 석주 형에게 들은 말로는 나를 데리러 우리 집에 갔었으나 내가 없어 그냥 저들끼리 뒷동산에 왔다고 한다. 그리고 형은, 예전처럼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축구를 하며 놀자고 했다. 그 말이 선뜻 반갑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정확히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이제 저들과 나는 많이 다르게 됐다는 걸. 그리고 나중에 나도 커서 중학생이 된다 한들 그들은 곧 고등학생이 될 테고, 어쩌면 형들과 나는 그 해를 기점으로, 한 마을에만 같이 살 뿐 이제 접점이 없어진 걸지도 모른다는 걸. 그날, 12살밖에 안 먹은 꼬맹이는 맹랑하게도 어쩌면 나이를 먹는다는 건 서글픈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어떻게 기회가 왔는지 그 애가 힘껏 공을 찼다. 공은 힘차게 날아가 경기장을 벗어났다. 그 애는 아쉬워했지만, 형들은 그게 귀여웠는지 낄낄대며 즐거워했다. 좋아 보였다. 그 애도 형들도 그리고 오후의 햇살이 밝게 내리쬐는 뒷동산 푸른 잔디밭의 상쾌함도. 이제 곧 저녁이 오고 어두워지면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야 할 테지. 하지만 그 애는 알까. 어느 날 문득 네가 옆으로 와줘서 나는 이제 외롭지 않을 수 있다는 걸. 형들이 없다 해도 이제 내게 뒷동산은 더 이상 허전하고 쓸쓸한 곳이 아니란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