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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히 Mar 31. 2023

[블야 62/국공 16] 완도 보길도 격자봉(433m)

월요일 아침 7시 20분경, 완도 화흥포항에서 빛날과 처음 만났습니다. 그의 첫인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눈은 충혈된 상태였고, 낯빛도 어두웠습니다. 상당히 피곤해 보였습니다. 

"슈히 님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만나러 왔어요."

"저를요? 왜요?"

"모임에서 활발히 활동하시길래요."


차량 승선 비용을 부담했습니다. 차주인 빛날이 내겠다고 했으나, 한사코 스스로 결제했습니다. 운전자가 돈까지 내게 할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승용차에 탑승한 채, 배에 올랐습니다. 선실로 올라가려고 계단 위에 서있는데, 그가 차에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응? 왜 안 온담?'

눈치를 살피다가, 기다리다 지쳤습니다. 다시 차로 돌아갔습니다.

"왜 안 내려요?"

"아, 다리에 붕대 좀 감고요."

이상했습니다.

"어디 다쳤어요?"

"무릎이 아파서요......" 

"괜찮아요?"

훗날, 빛날은 전혀 괜찮지 않았습니다.


빛날은 말수가 적어서, 다소 어색했습니다. 선실에 누웠습니다. 그는 눕지 않고, 나를 내려다봤습니다. 침묵을 깨보려 짐짓 유쾌한 척, 재잘재잘 떠들었습니다. 그는 20대 때 특수부대의 장교로 근무한 적이 있고, 30대인 현재에는 소방관이라고 했습니다.

"하루 24시간 근무하고, 이틀 쉬어요. 한 달에 열흘 근무하면, 이십일 쉴 수 있어요."

"우와, 참 좋은 조건이네요! 그런데, 24시간 근무하면 밤에 잠은 잘 수 있는 거예요?"

"네, 잘 수는 있어요. 일이 생기면 출동해야죠."


약 40분 후, 보길도에 닿았습니다. 보길 분소에 들려 국립공원 스탬프 여권에 도장을 쾅, 찍었습니다. 만족스러웠습니다. 한국관광공사가 추천한 명소인 세연정에 들렀으나, 아쉽게도 월요일은 휴관일이었습니다.

"응? 관광 안내 홈페이지에서는 분명 연중무휴라고 했는데, 오늘 휴관이라고? 이럴 수가!"

담 밖에서 망연자실하며 서있자니, 빛날이 옆에서 농을 했습니다.

"담 넘을까요?"

그의 재치에 잠시 미소 지었습니다.

"안 돼요!"


곡수당에 주차를 한 후, 이동했습니다. 처음에 들머리를 못 찾아서 잠시 헤맸지만, 곧 정상적인 등산로로 진입했습니다. 큰길재를 지나, 마침내 격자봉에 도착했습니다. 빛날은 앞서 갔고, 뒤따라가는 나는 미주알고주알 떠들었습니다. 굳이 알릴 필요는 없지만, 가족과 과거의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털어놓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상대도 자연스럽게 입을 열게 돼있습니다.


빛날의 사연 중 인상적이었던 것은 22살에 사귀었던 그의 첫 여자 친구였습니다. 그는 같은 대학교 친구들과 어울리다 알게 된 한 살 연상의 그녀를 좋아했습니다. 어느 날, 빛날은 그녀를 불러내 단둘이 만났습니다. 그는 철봉 턱걸이 스무 개를 성공하면 소원을 하나 들어 달라고, 그녀에게 요청했다고 합니다.

"성공했어요?"

"사실, 턱걸이 서른 개 할 수 있어요. 일부러 숫자 줄여서 제안했어요."

"그래, 소원은 뭘 빌었나요? 사귀고 싶다고 했어요?"

"손 잡고 싶다고 했어요."

"오! 그럼, 손 잡았어요?"

"네. 손 잡았는데, 가만히 있더라고요. 5년 사귀었어요."

"우와, 대박!"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고 했던가요? 그는 첫사랑 그녀와 결국 헤어졌습니다. 이별 사유와 과정을 듣자,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아, 저런...... 그럴 수가!'

안타까웠습니다. 


마침내 격자봉 정상에 도착했습니다. 블랙야크 알파인 클럽에 접속했으나,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인터넷 돼요?"

"저도 안 돼요."

답답했지만, 긴급 인증 신청을 했습니다.


준비한 음식을 나눠 먹었습니다. 어제 청산도에서 H 님이 사준 성게 톳 머핀을 하나 빛날에게 건넸습니다. 이름만 성게, 톳이지 해물맛이 느껴지진 않았습니다. 그냥 평범한 머핀이었습니다. 실망스러웠습니다. 빛날은 식단 관리를 하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는 닭가슴살과 주먹밥을 싸왔는데, 평소에도 늘 그것만 먹는 듯 보였습니다.

"사람들과 어울릴 땐, 가리지 않고 다 먹어요."


격자봉에서 하산하는데, 빛날은 우측 무릎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는 붕대 위에 무릎 보호대를 이중으로 착용하고 있었는데, 병원에 갈 의향은 그다지 없어 보였습니다. 아픈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갈 순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곡수당에 도착해 차를 타고 동천석실로 향했습니다. 저 멀리 작은 한옥이 보였는데, 꽤 높은 곳에 위치했습니다.

"유배도 올 만 하네요. 경치 좋아요!"

"여기 오기 전에 인터넷 검색했는데, 다녀간 사람들도 다 그렇게 말하더라고요. 고산이 여기서 무려 13년이나 머물렀다네요. <어부사시사>의 배경이기도 해요."

"무릎이 아파서, 차에서 쉬고 있을게요."

"아, 알겠어요! 금방 다녀올게요."

등산 스틱을 가져갈까, 말까 잠시 망설였습니다.

'혹시 모르니, 그래도 들고 가자.'

과연 누가 예상했겠습니까? 동천석실을 가는데, 밧줄이 있을 줄이야! 등산 스틱은 유비무환이었습니다. 동천석실은 고산 윤선도가 시상을 떠올리고, 다도를 즐긴 곳이라고 합니다. 



동천석실은 주자학에서 신선이 산다는 선계세상으로 부용동을 한눈에 굽어 볼 수 있으며 낙서재의 정면에 바라보이는 산자락에 있다. 특히 석담에는 수련을 심고 못을 둘로 나누어 물이 드나들 수 있도록 인공적으로 구멍을 파고 다리를 만들어 '희황교'라 칭하였다. 지금도 석실 앞에는 도르래를 걸었다는 용두암과 차를 끓여 마신 차바위가 남아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천석실 (대한민국 구석구석,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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