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광섭 May 23. 2020

브런치 애송이가 기자를 이길 수 있을까?

정답 : 못 이김


이 글은 저작권 보호의 공익적 목적을 위해 작성하는 글입니다.


잔인한 달 4월,

배달의 민족이 수수료 정책을 바꾸며,

전 국민을 상대로

광역 어그로를 끌 무렵이었다.


회사의 친한 선배로부터

호들갑 섞인 카톡이 하나 날아왔다.


! ! 이거 배민 사태를 
분석한 기사인데,
진짜 업계 사람이  것처럼
정리를 잘했어!  읽어봐!!


선배는 IT 전문기자가 썼다는

기사 한 편을 공유해주었다.


마침 일주일 전 저녁,

나도 '배민과 공공 배달앱’에 대한

브런치 글을 썼었기 때문에

곧장 호기심이 생겼다. (아래 글)

https://brunch.co.kr/@supernova9/188


뭐 이렇게 난리람.

어떻게 썼지? 하며 링크를 열었다.


그 순간 기사의 맨 윗줄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브런치에 올린 글과 거의 똑같은 제목.

갑자기 느낌이 쎄—  했다.


새벽 3시에 울리는 남편의 휴대폰을

바라보는 아내의 심정이 이 비슷한 걸까.


내용을 확인해보니 쎄-한 느낌은 적중했다.

해당 기사는 문단의 순서를 바꾸고,

몇 가지 예시를 더했을 뿐,

전반적인 주장과 근거는

내 글과 거의 똑같았다.


그제야 회사 선배가

‘어머머! 분석 기사가

마치 업계 사람이 쓴 것처럼 생생해-!!!’

라고 말한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실제로 업계 사람(나)이

일주일 전에 쓴 글이기 때문이었다.


일단 선배는 이 사실을 몰랐다.


나는 주변 사람에게는

브런치를 한다는 사실을

최대한 숨기기 때문에,

선배는 내가 이 글을 썼단 걸 알 턱이 없었다.

(브런치 작가명을 실명으로 쓴 것도

2년 째 후회 중이다..)


마음이 꽤 심란해졌다.

예전에도 몇 번 글을 도용당한 적이 있었지만,

개인 간의 싸움도 피곤한 마당에,

이번엔 주요 매체의 공격이었다.


더군다나 방식도 무척 교묘했다.

중간중간 '업계 전문가에 따르면..'

이라는 말을 섞어

마치 나를 직접 인터뷰를 한것처럼

책임을 슬쩍 피한 형태였으니 말이다.


우선 [자기 방어 1단계 : 현실 부정]을 해봤다.

‘에이 그럴 리가 없지’하며 기사를 다시 읽었다.

그렇지만 그 기사는 읽으면 읽을수록

기자분이 내 글을 읽고 썼다는 게

거의 확실했다.

그렇게 1단계는 실패.


[자기 방어 2단계 : 가해자 이해하기]도 해봤다.

‘마감에 쫓기는 김 기자…

데스크에서는 당장 분석글 써오라고 호통 치고,

스트레스에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다.

그 순간 때마침 눈에 들어온 브런치 애송이..

‘좋아 이 녀석이 먹잇감이군’’

뭐 대충 이런 심리였을까..


그렇지만 애송이라고 공격하다니,

너무 치사한 일이라 공감할 수가 없었다.


어쨌든 이건 내가 이해할만한 일이

절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곧바로 주변에 나와 비슷한 처지의

꼬마 법률가 선생님께 문의를 넣었다.


‘존경하는 선생님, 이러저러해서

요로조로한 일이 있었는데,

무엇이 지혜로운 행동일지요’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허허, 이런 일은

그짝에서 시침 뚝 떼면

참으로 난감한 일이구려.

우선 데스크나 고충처리 쪽에 연통 넣어두게

법률적인 승리는 까다롭다네’

라고 조언해주셨다.


그 조언을 따라

분노는 샤브샤브 거품 치우듯 살살 걷어내고,

극도로 사무적인 어조를 섞어

‘고충처리 담당관님께’라는

장문의 메일을 한통 썼다.


내용은 이랬다.


‘정말 불행히도 그쪽 기자분이

제 글을 허락도, 출처도! 없이

가져다 쓰신 것 같습니다.

제가 바라는 것은 별 것은 아니옵고,

1. 기자분의 직접적인 사과와

2. 출처를 제대로 표기한 재게재입니다.

정론지를 자처하는 OO사의

슬기로운 자정 작용 바라겠습니다.'

라고 담백하게 썼다.


그렇게

1주일이 흐르고..

2주일이 흘러..

오늘이 되었다.


결국 답변은 오지 않았다.

최종적으로 그들의 입장이란

‘무시’였던 셈.


‘내가 대단한 정치인이나,

어디 대기업 사장님쯤 되었다면,

아마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그분들 입장에서,

을지로를 지나가면 발에 채이는 IT노동자,

그것도 이제 막 성장하는 주니어란

하이에나들이 사는 어둠의 땅에 떨어진

아기 심바 같은 존재였다.


심바야, 햇빛이 닿는 데까지가 우리의 영토다. - 출처 : 디즈니 라이온킹


‘니가 이 어둠의 영역에 들어온 게 잘못이지,

우리가 니를 잡아먹는 게 잘못은 아니잖니?’

라는 느낌이었다.


아.. 애송이가

경찰서까지 찾아가기엔,

이 기사가 너무나도 애매하고,

애송이의 삶 역시 복잡하고 팍팍하다.


‘권력남용을 뿌리 뽑겠다’는 언론사의 기치와

‘듣는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기자분의 소개와,

'무단 재배포 시 형사처벌한다'(!?)는 저작권 문구가

참 아이러니하게 들리는 하루다.


과연 언론의 이런 일은 누가 막을 수 있는걸까.

글쓰기가 무서워지는 요즘이다.


*불필요한 분쟁이 생길 수 있어

해당 기사를 직접 첨부하지는 않았습니다.


표지 출처 : 남극의 눈물 - MBC

작가의 이전글 이건 90년대생 입장도 들어봐야 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