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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01. 2020

붕어 싸만코

엄마와 아빠랑 감자를 캔 후 먹었던 붕어빵 아이스크림


위 이미지는 붕어빵 사진입니다. / 사진출처 : 픽사 베이

아빠는 취미로 작은 텃밭을 가꾸신다. 배추도 심으시고, 감자도 심으시고, 고추도 키우시고, 비트도 키우신다.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엄마와 내가 좋아하는 꽃을 심으신다. 코스모스 꽃 그리고 해바라기 꽃.


아빠는 제조업 분야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늘 시끄럽게 돌아가는 기계 소리, 테이블 위에 어질러져 있는 수많은 공구들, 날카로운 쇠 냄새. 일을 마치고 집으로 와 늘 피곤해하는 아빠의 모습과 달리 일터에서의 아빠는 언제나 치열한 고민과 고뇌 속에서 일을 하신다.


무뚝뚝한 딸인 나는 집에서 아빠와 대화를 자주 안 한다. 늘 익숙한 집에서의 피곤한 아빠의 모습은 언제나

익숙했다. 하지만 일터에서 아빠의 모습을 보면 왠지 모르게 울컥하게 된다.


먹고사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는 날들 속에 어느 날부터 아빠는 작은 텃밭을 가꾸시는 것을 취미로 삼으셨다.

그 덕분에 김장 철이 다가오면 아빠가 직접 심으신 배추와 무를 뽑아 온 가족이서 씻기고, 손질하고 김치를

만들어 삼겹살과 함께 맛있게 먹는다. 그 과정이 힘들긴 하지만 직접 채소를 키워 먹는다는 것이 이런 맛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된다. 아마 이번 연도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어느 날 아빠가 온 가족이서 주말 아침 일찍 감자를 캐러 가자고 하셨다. 항상 아빠는 어디 여행을 가던,

어떤 가족행사던 아침 일찍 출발하신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그래도 주말인데 좀 느긋하게 출발하면

안 되나 싶지만 결국 불만을 삼키고 일어나 씻고, 옷 입고 나와 엄마와 아빠와 함께 작은 텃밭으로 출발했다.


늘 나는 아빠 차 안에서 잠을 잔다. 그날도 모자란 아침잠으로 계속 잠이 와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앞을 보았는데 나뭇잎 한 장이 앞 차창 와이어에 끼어 있는 것을 보았다.

문득 이 피곤하고 하루하루 먹고사는 일로 힘든 현실에 비해 이 나뭇잎 한 장의 작은 감성을 끼고 달리는

우리 가족의 드라이브에 어떤 이질감을 느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뭔가 그 풍경이 어떤 위로를 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도로를 달려 텃밭에 도착했다.


참고로 아빠는 손이 무척 크셔서 뭘 심더라도 정말 많이 심으신다. 엄마는 항상 가족도 3명밖에 없는데

뭘 그렇게 많이 심냐고 말씀하신다. 그러면 아빠는 친척집 혹은 이웃에게 나눠 주면 된다고 말씀하신다.


아빠는 역시나 감자를 정말로 많이 심으셨다. 아빠는 장갑을 끼고서 땅 속에 심어진 감자를 캐면 된다고

하셨다. 호미를 사용해도 된다고 했는데 호미를 사용해보니 자칫하다 잘 자란 감자를 해칠까 봐 그냥

나는 손으로 감자를 캐기로 했다.


감자를 캐는 것은 마치 정말 숨겨진 보물을 찾는 기분이었다. 쭈그려 앉아서 감자를 캐기란 쉽지는 않았지만

땅 속에 잘 잠들어 있는 감자를 캘 때는 성취감 비슷한 감각이 들었다. 또한 생각보다 흙이 부드러워

그 부드러운 흙 속으로부터 감자를 캐는 느낌이 좋았다.


각각 한 줄씩 아빠, 엄마, 나 이렇게 줄을 맡고서 감자를 캐기 시작했다. 아침이라 햇빛이 강렬하진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햇빛이 강하게 내리쬐기 시작했다. 높디높은 푸르른 하늘, 주위에는 소 목장이 있어

소 똥냄새와 소가 음메~ 하는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또 이따금 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쭈그리고 앉아있는 자세가 힘들어 잠시 서는 자세를 취하며 주위를 둘러보면 도시에서 보았던 빽빽한 건물들과 차들이 보이는 대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작은 집들의 풍경과 넓게 펼쳐진 하늘이 보여 마음이 확 뚫려

속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감자를 다 캐고 또 아빠가 심으신 기타 다른 농작물들을 수확하다 보니 시간이 벌써 점심시간에 가까워졌다.

우리 가족 셋 다 지쳐서 차에 탔는데 아빠가 언제 사 오신 건지 붕어 싸만코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사실 나는 이렇게 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정말 안 좋아한다. 하지만 어느 집 딸들과 아들분들이 공감하시듯 늘 부모님들은 팥이 들어간 아이스크림, 땅콩과자 등을 사 오신다.


그래도 그 날은 힘들게 노동을 하고 먹는 아이스크림이라 그런지 꿀 맛이었다.

집으로 출발하기 전 차 안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농작물을 수확하고 온 체력을 다 써서 힘들어서인지

서로 딱히 대화는 없었지만 문득 이렇게 가족이서 감자를 다 캐고 다 같이 팥이 들어간 붕어빵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실이 엉뚱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뭔가 마음이 몽글몽글한 기분이었다.


아빠는 아이스크림을 다 드시고 '자 가자~!'  하고 힘차게 차에 시동을 켰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차를 타며 앞에 와이어에 나뭇잎이 여전히 껴 있는지 살펴보았다.

어느새 날아갔는지 나뭇잎은 보이지 않았다. 그 나뭇잎이 보이지 않아 아쉬웠지만 왠지 모르게 기분이

충만한 하루였다.


그 날로 우리 가족은 며칠간 감자를 요리한 음식을 많이 먹었다. 특히 감자전을. 맛있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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