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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01. 2020

빼빼로 영웅

고등학생 1학년, 빼빼로 먹기 게임에 참가하다

사진 출처 : 픽사 베이


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다. 지금은 이 빼빼로 데이가 별 감흥 없고 상업적인 그런 날이라고 인식할 뿐이다.

하지만 어렸을 적에는 그렇지 않았다. 특히 중학생 때는 내 친구들을 비롯한 건너 건너 아는 친구들까지 포함해 빼빼로를 많이 얻고 싶었다.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그 당시 아이들도 그러했을 것이다.


지금도 생각나는 게 중학교 1학년 때 학생들 책상에 빼빼로들이 가득 쌓였었고 보다 못한 수학 선생님이

돈 아깝게 빼빼로를 여러개 사지 말고 하나를 사서 낱개 하나씩 서로 선물로 줘라 라는 말씀이 아직도 떠오른다.


고등학생 때는 중학생 때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빼빼로를 챙기긴 했었다.

특히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빼빼로 먹기 게임에 참여했었다.


그때 당시 집 근처에 큰 마트가 새로 생겼었다. 마트가 엄청나게 큰 규모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충분히 있을게

다 있었고 사람들도 꽤 거기서 필요한 먹거리, 생필품들을 구매했었다.

어느 날 이 맘 때쯤 그 마트에서는 빼빼로 데이를 맞아 빼빼로 먹기 게임을 연다고 공지를 하였고

나는 이 게임에 흥미를 느꼈고 선물도 준다기에 참여하고 싶었다.


그런데 빼빼로 먹기 게임에 참가하기 위해서는 여러 문제점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한 사람이 더 필요했다. 흔히 빼빼로 한 개에 양 끝에서 서로가 조금씩 먹어서

제일 짧은 빼빼로를 남기는 팀이 우승하는 그런 커플게임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 빼빼로 먹기 게임은

오후 6시쯤 열렸던 걸로 기억한다. 요즘은 고등학교 야간 자율학습 (줄여서 야자)이 많이들 폐지된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고등학교를 다녔을 때는 거의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야자는 필수였다.

정규수업이 끝나고 보충 수업을 매일 가졌었는데 오후 4시 ~ 6시에 보통 보충 수업을 가졌다. 그리고 저녁을

먹고 밤 7시부터 10시까지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통해 공부를 해야 했다. 그렇기에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친구들은 그 오후 6시는 자유로운 몸이 아니었다.


나는 빼빼로 먹기 게임과 이 고민을 친구들에게 얘기를 했고 어느새 이 얘기가 반 친구들에게도 퍼져 버렸다.

예체능을 하고 있는 친구가 자기도 그 빼빼로 대회에 참가하고 싶다고 의지를 보였었는데(예체능을 하는 친구들은 학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정규수업만 하고 집에 가도 됐었다.) 사실 난 그 당시 내성적이었고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랑 함께 있으면 어색하고 불편했었다. 그래서 내키진 않았지만 달리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어서 두 번째 문제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야자를 빠지기 위해서는 담임선생님게 조퇴증을 끊어야 했다. 야자를 빼는 방법은 앞에서도 말했지만 예체능을 하는 경우나 혹은 정말 아파서 보충수업과 야자를 뺄 수가 있는데

나는 그 후자의 방법으로 야자를 빼기로 했다.


친구 한 명이 인공눈물을 빌려주며 우는 척을 하며 아프다고 말하는 게 어떻냐고 제안을 했다. 이 인공눈물과

함께 굳은 표정을 지으면 좀 아파 보이지 않을까 라는 어떤 자신감을 얻었었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친구랑 같이 교무실로 갔는데 그 길이 굉장히 긴장되었다.


교무실에는 다행히 담임 선생님이 앉아 계셨는데 옆에 친한 다른 반 선생님이랑 대화를 나누는 중이셨다.

나는 그전에 인공눈물을 넣고 오만 죽상을 쓰며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노렸다.


인기척을 느끼신 다른 반 선생님이 너 왜 울려고 하냐고 물으시고 그제야 담임 선생님이 나를 보셨다.

너무 긴장해서일까.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조퇴증 좀 끊어주세요' 라는 말이 자동으로 입 밖으로

튀어나갔다. 원래 계획은 배가 아파서 병원에 들려야겠다고 먼저 이유를 붙이고 조퇴증 이야기를 꺼낼

계획이었는데 바로 단도직입적으로 조퇴증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 친구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야 너무 바로 말하지 마..'라고 속삭였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서 재빨리 배가 아프다고 설명을 했고 담임 선생님게서 많이 배가 아프냐면서 조퇴증을 끊어주셨다. 그때 한편으로는 어떤

죄책감을 가지면서도 빼빼로 먹기 게임에 참여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

(여기서 잠시, 오해하지는 말아주셨으면 좋겠다. 난 지극히 정말로 조용하고 평범한 착한 학생이었다.)


아무튼 외출증을 끊고 보충수업도 안 하고 학교를 나올 수 있었는데 정말 기분이 상쾌했었다.

늘 필수적으로 어떤 한 장소에 있어야 할 시간에 이렇게 밖으로 나와 자유로워지는 기분이 무척 신선하고

좋았던 것 같다.


나는 바로 그 마트로 가서 게임에 같이 참여하기로 한 예체능 친구 한 명을 기다렸다. (그 친구는 정규수업이 끝나고 먼저 학교를 나섰다.) 그 친구는 택시 타고 왔었다. 현장을 둘러보니 교복을 입은 참가자는 우리 밖에

없었다. 보통 아저씨, 아주머니분들이 많이 참가하셨다.


4~5 커플씩 한 번에 게임이 진행되었다. 분위기는 꽤 시끌벅적하고 다들 즐겁고 웃는 분위기였다. 아무래도

입술이 거의 닿을 때가 되면 사람들이 오~! 하면서 관심 있게 지켜보았고 나 또한 설마 저러다 입술이 닿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면서 꽤 집중력 있게 보았었다.


드디어 우리 차례가 되었고 빼빼로를 각각 한 끝에 물고서 진행자가 시작! 하고 신호를 준 순간 빼빼로를 각각 빠르게 먹기 시작했는데 내가 실수로 빼빼로 끝쪽을 잡고 있는 손 때문에 그 친구는 더 다가올 수 없었다.

결국 우승은 다른 팀으로 돌아가고야 말았다.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참가상을 받은게 그나망 위안이 되었다.


사실 이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상상을 하며 김칫국을 정말 많이 마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빼빼로 영웅이 되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참가상은 받았다.

뻬빼로 여러 개를 받았고 그 다음날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그 빼빼로를 나눠 먹었다.

비록 상상 속에 존재하던 빼빼로 영웅은 되지 못했지만 나의 고등학생 시절 작은 일탈이 담긴

재밌는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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