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릅나무가 내게 한없이 감사한 부끄러운 사연.
현대인은 잔병이 많다. 죽지는 않아도 괴롭기 그지없는 질병들.
대표적인 것으로 치질이 있다. 치질, 정확히는 치루.
변기에 오래 앉아 있으면 잘 생긴다. 앉아 있는 동안 장을 항문으로 계속 밀어내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사람들이 화장실 갈 때 예전에는 신문을 들고 갔다. 읽는 용도, 닦는 용도. 두루 가능했다.
나도 신문세대다. 사설과 광고까지 다 읽고 나야 그제야 좀 볼일을 본 것 같은 기분. (그걸로 닦지는 않았다).
그런데 내가 늙어 화장실 출입을 못하게 되기도 전에 그만 스마트폰이 나와버렸네. 이런.
하는 수 없이 이 요물을 화장실까지 들고 들어간다. 영상도 보고 뉴스도 보고 글도 읽고 글을 쓴다. (이 글도 화장실에서 쓴다.) 그러니 나는 치루에 걸리지 않으면 이상한 사람이다.
그래. 수년 전 걸렸다. 걸렸었.었.다.
물론 치루라는 놈은 변기에 오래 앉아있는 습관이 원인의 전부는 아니다.
음식, 과로, 특별히 스트레스와 관련 있다.
그 무렵 나는 상사와 심각한 대립 상황이었고 습관처럼 변기에 오래 앉아 있었으며(아내는 내가 살아 있나 가끔 노크를 했다) 그 결과 직장의 일부가 괄약근을 밀어내고 바깥세상 출타를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탁구공 만한 뭔가가 협곡 사이로 빠져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별안간 암탉이 된 기분이었다. 알을 낳고 있는 느낌이었달까. 세상에 이를 어째.
일단 약국에 가서 약을 사 발랐다. 연고를 바를 때 중지 끝에 뜨거운 꼬마전구가 만져졌다.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갔다. 빌딩 외벽에 커다랗게 향문이라고 써 있는 병원.
왜 항문이 아니고 향문이냐면 항문이라 쓰면 혐오스러워서라고 했다. 병원 가는 길, 아내가 그걸 자꾸 궁금해 하길래 짜증이 나서 그만, 아니 그럼 굳이 똥꼬라고 써야만 속이 후련했냐 핀잔을 줬다.
평소 같으면 토라질 아내가 배꼽을 잡고 웃는 게 아닌가. 똥꼬라니 세상에 아이고 배야.
옆에서 낄낄대고 웃으니 향문, 아니 항문, 그래 나의 똥꼬는 더 찝찝하고 환장할 노릇이었다.
간호사가 나를 침대에 눕혔다. 엉덩이가 터진 바지를 입힌 채였다.
모로 돌아 누우세요. 한쪽 다리를 안으시고 엉덩이를 뒤로 쭉 빼시고...
부부가 자다가 다투고 서로 돌아누운 자세로 엉덩이만 다소곳이 내맡기는 자세.
치욕스러웠다.
더 수치스러운 것은 커튼을 확 제끼고 들어온 의사가.. 자아 어디 봅시다, 하며 손가락으로 엉덩이 사이를 확 벌릴 때였다. (으으.. 이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흐음. 수술까지는 안 해도 되겠는데... 의사가 라텍스 장갑을 벗으며 말했다.
장갑 벗을 때 찌걱 소리가 크게 났다.
일단 밀어넣고 지켜 보시죠. (누가 어디를 어떻게 지켜보잔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후아. 안도감에 한숨이 절로 났다. 끔찍한 수술경험담을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사망선고는 피했구나.
집으로 왔다. 그리고 바르는 약과 온수 좌욕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이틀 뒤 고향집에서 택배가 왔다. 열어보니 웬 마른 나무껍질이었다.
얘야, 치질에는 느릅나무가 제일이니라.
엉기적 걷는 꼴을 보다 못한 아내가 시아버지한테 아들의 심각한 사태를 잽싸게 일러바친 모양이었다.
그예 아버지가 부랴부랴 뒷산 밭가 느릅나무 둥치에 낫을 대신 거였다.
그렇게 도착한 고향의 검붉은 느릅나무 껍질. 치질 온수 좌욕에 특효라 하였다.
잔뜩 화가 난 은밀한 피부조직을 달래는 데 효과가 있다는 민간 요법.
느릅나무 줄기는 조직이 붉으며 끈적한 진액이 나오고, 물에 담그면 피같이 빨간 물이 풀어진다. 잘 모르면 항문에서 피를 쏟은 게 아닌가 기함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찬물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었던지라 대야에 담긴 뜨거운 빨간물에 엉덩이를 즉시 담갔다.
안온한 평강이 온몸을 감쌌다.
덕분인지 이틀만에 탁구공은 강낭콩 크기로 줄어들더니 사흘이 지나자 원래 있던 곳으로 조용히 스러졌다.
조류는 아닌 것으로 판명.
이리하여 느릅나무는 내게 한없이 감사한 나무. 특별한 나무라는... 그러한 얘기올시다.
[느릅나무에 대하여]
느릅나무는 아름답고 깔끔한 인상을 주는 나무다. 느티나무와 닮았으며 산속 물가나 계곡 근처에서 자란다. 밭둑이나 마을 주변에 있는 느릅나무는 대개 심긴 것이다. 한자로는 느릅나무 유(楡)로 쓰며 그 껍질을 유피(楡皮) 또는 유백피(楡白皮)라고 하며 뿌리껍질은 유근피(楡根皮)라고 한다. 껍질은 상당히 질기다. 옛날에는 이 질긴 껍질을 꼬아 밧줄이나 옷을 만들기도 했다. 껍질을 벗겨 입으로 씹어보면 끈적한 점액이 많이 나오는데 이 점액이 갖가지 종기나 종창을 치료하는 약이 된다. 줄기나 뿌리의 껍질을 끓이면 끈적이는 콧물 같은 점액 때문에 코나무라고 부르는데 코질환에 효과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대표적 효능은 항염효과다. 유근피 속 카테킨 성분이 염증을 완화해 준다. 예로부터 종기나 종창 치료에 사용돼 왔고, 비염 및 알레르기성 호흡기 질환의 예방과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졌다. 소염 작용도 한다. 최근 연구논문에 따르면 유백피 달인 물은 욕창에 의한 상처 관리와 여드름, 아토피피부염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코골이, 기관지, 인후, 코점막 염증과 부종을 안정시킨다고 하며 또 다른 주장으로는 관절염에도 좋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