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전을 좋아한다. 누군가는 그런 것도 있냐고 한다. 배추전은 혹 봤어도 무전은 처음 듣는다 한다.
도시 것들이야 모르지. 기후와 토양이 후진 골짝 산촌에서는 무엇이나 식재료가 된다. 겨울의 무가 그렇다.
무는 우리 동넷말로 무시라 한다. 그러니 무는 무시고 무전은 무시적이다. 어릴 땐 무시적이 그리 싫었다.
걸핏하면 부침 옷과 무가 따로 노는 무시적은 물크덩하니 아무 맛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시는 좋은 놈으로 골라 먼저 물에 푹 삶는다. 삶은 무시를 세로로 또는 가로로 얇게 썰어 밀가루 계란옷 입혀 철판에 부치면 무시적이 된다. (생무시를 그냥 부치면, 겉타속생이 되니 주의.)
설날에는 꼭 했으나 추석엔 잘 안 했다. 이번에도 안 하던데 왠고 생각하니 여름 무가 단맛이 덜하기 때문인 듯하다.
요새는 종자가 좋아서 꼭 그런 것만도 아닐 텐데, 습관처럼 엄니가 무시적은 안 했더라. 그래서 무시적 못 먹었다. 요번엔.
나이 들고부터 무시적이 좋아졌다. 뜨거울 때 먹는 건 두말할 것도 없고 식어도 감칠맛이 있었다.
어릴 땐 도무지 알지 못한 은근한 단맛이랄까? 설컹거리는 식감까지도 너그러이 용납되었다.
작은설날 주방에 신문지 잔뜩 깔아놓고 시어미 며느리 둘러앉아 전을 부칠 때, 옆에 앉아 밤을 치며 방금 부쳐 나온 무시적을 넙죽넙죽 맛보는 일이 요 몇 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무시적은 일단 무시가 달아야 한다. 꽝꽝 언 구덩이에 묻었다가 꼬챙이로 찍어낸, 무청이 연노랗게 돋은 무시라야 제맛이다.
배추적도 고구마적도 가지적도 토란대적도 파적도 호박적도 해물적도 동그랑땡도... 무시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무시가 최고다.
설이든 추석이든, 명절이든 평절이든 적으로는 무시가 최고다. 다른 말 말라. 내 말이 그렇다.
명절도 지났는데 뜬금없이 무시 생각하니 무시적이 먹고 싶다. 어차피 해먹을 일 없지만 그저 오늘은 입맛 쩍쩍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