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해, 열심히 자전거를 탔다. 틈만 나면 아내와 함께 강변으로 나간다. 혼자 타는 자전거도 좋지만 혼자는 쉽게 지친다. 달리기는 혼자, 자전거는 둘이라야 좋다. 뛰는 것보다 쉽고 걷는 것보다 신난다. 어느 순간 서울에 자전거 도로가 거미줄처럼 촘촘히 뻗어 났다. 자전거가 차도를 반 개쯤 밀어낸 덕분에 서울에서 자전거 타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창릉천, 안양천, 홍제천, 반포천, 양재천, 탄천, 중랑천, 성내천, 고덕천, 왕숙천, 홍릉천은 한강의 지천들이다. 서울의 그 많은 천천천들. 이들 천변에는 어김없이 자전거 길이 있고 인도와 분리된 도로가 매끈하게 뻗어 있다. 서울의 복판, 자전거족의 성지라는 반포 ‘반미니’에서부터 동쪽 끝 팔당, 서쪽 끝 아라뱃길을 따라 정서진까지 페달을 밟을 수도 있다. 사대강 종주는 못해도 한강 남쪽을 따라 물을 거슬러 양평까지 가보는 게 목표인데 아직 하세월이다.
한강을 중심으로 자전거 무리는 번성한다. 미니벨로, 로드 바이크, 산악자전거 그리고 장바구니 달린 ‘따릉이’들까지. 한강 공원은 자전거의 낙원이다. 매끈한 몸매를 자랑하는 젊은이들의 로드바이크는 예의도 바르게 “지나갑니다아” 하면서 쏜살같이 추월해 간다. 번쩍이는 고글을 멋들어지게 착용한 노년 라이더들은 엉덩이에 두툼한 패드를 덧댄 바지를 입고 일렬로 달리는데, 산악자전거 안장에 꽂혀 휘날리는 태극기가 자못 늠름하다.
안양천 초입. 유채가 필 때면 한강의 자전거 행렬은 절정을 이룬다.
볕이 좋을 때, 가끔 자전거를 세우고 걷는다. 한강을 따라 남북의 강안에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고 가장 잘 조성된 공원이 있다. 숲도 있고 늪도 있고 운동장도 있고 수영장도 있고 눕기 좋은 너른 풀밭도 있다. 어느 구간은 사람보다 개들이 더 많아서 잘못 누워 있다가는 각종 개들의 휴식과 놀이와 배변을 방해하는 몰상식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개 주인은 태평스레 누워 있는 내게 대놓고 눈총을 준다. “여긴 원래 댕댕이 놀이터라구요.” 개를 안 키우는 나는 ‘사람이 먼저’라는 이 정권의 국정과제를 떠올리며 잠시 구시렁거리다 얌전히 자리를 접고 일어선다.
한강이 있어 자전거를 탄다. 공원이 있어 걷는다. 잘 깎인 풀밭이 있어 눕는다. 한강의 물은 매번 빛이 다르고 공기는 철마다 냄새가 구별된다. 기온 차 때문이지만 기분 탓도 크다. 바람을 등지고 시속 17킬로미터로 강변을 달릴 때 기분은 형언할 수 없을 만큼 감미롭다. 우울한 날엔 햇볕도 눈에 독하고 바람 맛도 텁텁하다. 페달을 밟을 때 물 비린내와 풀 냄새를 음미하며 계절을 지난다. 좋아하는 구간은 여의도 남쪽 샛강 길. 특히 봄의 샛강이 좋다. 흐름 멎은 강물이 가끔은 바람에 불쾌한 냄새를 뒤섞지만 이른 봄, 조팝꽃 소복하게 핀 길가 버드나무 사이로 달리며 여의도 빌딩군을 관람하는 기분은 뭐라 설명할 길이 없다.
자전거가 가장 붐비는 여의도 공원 구간. 젊음의 열기로 언제나 뜨겁다.
한강을 따라 조성된 자전거 길이 없었다면, 강과 멀리 떨어진 집에 살았다면 나는 언감생심 자전거를 탈 엄두도 못 냈을 거다. 아홉 살에 아버지의 짐자전거로 자전거를 배운 나는 자전거 인생 대부분을 자갈 깔린 신작로 아니면 시멘트 시골길에서 보낸 덕에 자동차의 위협에 맞설 담대함을 키우지 못했다. 아직 한강에 자전거 길이 조성되기 전 경험한 단 한 번의 강렬한 쓴맛으로 한동안 자전거와 멀어졌던 사연도 있다.
동료의 꼬드김에 충동적으로 구입한 자전거. 21단 기어도 달렸고 번쩍거리는 차체도 멋졌는데 강남의 회사에서 강서의 집까지 가져갈 일이 걱정이었다. 버스로 편도 50분쯤 걸리니 넉넉잡고 두 시간이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용감히 시작된 도심 자전거 주행. 하지만 첫 블록을 벗어날 때부터 곤욕이었다. 사람을 피하면 차가 달려들고, 주차된 차를 피하면 퀵서비스가 막아서는 형국이었다. 논현동에서 출발해 반포 토끼굴을 지나 한강변에 들어서니 격투를 한바탕 치른 듯 등이 땀으로 흥건했다. 이제 좀 달려볼 수 있었으면 좋으련만 오랜만에 올라탄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가 견딜 수 없이 아팠다. 타다가 끌다가 쉬다가 동작을 지나고 노량진을 지나 여의도에 이르니 날이 캄캄했다.
63빌딩 인근에서 길을 헤매다 여의도 공원 계단으로 자전거를 메고 올라가니 불 밝힌 매점이 있었다. 초코바를 사 먹으며 아줌마에게 길을 물었다. 그 무렵 막 단장을 마치고 개장한 여의도 공원 길은 새로 건설된 아름다운 미로 같았다. 집에 오는 길은 때론 너무 길어 나는 더욱더 지치곤 해. 힘겨운 노래를 중얼거리며 패닉 상태로 겨우 집에 당도했다. 무려 세 시간 반이 걸린 기나긴 여정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간. 당산철교-여의도공원. 갈대와 억새 사이 길이 사뭇 운치 있다.
이렇게 단련한 자전거 솜씨로 나는야 늠름히 강변을 누빈다. 강이 없는 동네, 물의 발원지 근방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나는 어른이 되어서야 강을 보았고, 흐르는 물을 좋아하게 되었다. “강”이라고 부를 때 콧등을 공명하는 발음도 좋고 유연한 물의 물성도 사랑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끝없이 떠내려 간다. 늦봄의 홍천강과 겨울 경호강도 좋은데 서울의 한강을 아주 좋아한다. 계절과 상관없이 한강은 근사하다.
서울 태생이 아닌데도 나는 짧은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길, 경부고속도로 끝에서 크게 좌측으로 굽이도는 고가 위에서 양쪽 강변도로에 끝없는 가로등 행렬을 도열시킨 화려한 밤의 한강과 마주칠 때, 어김없이 묘한 기분을 느끼곤 했다. 비로소 집에 당도했다는 일종의 안도감인지도 모르겠다.
밤의 한강을 달린다. 뛰는 사람은 알겠지만 뛰는 사람이 나 말고도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다들 왜 달리는지 묻지 않아도 알 것 같다. 뛰는 사연은 달라도 그 이유는 한결같다. 한강변의 밤은 이토록 아름답기 때문에. 물에 비치는 강 건너 빌딩 불빛과 화사한 조명의 다리들. 그리고 안온한 가로등 불빛. 혼자 달리기에 밤의 한강만큼 좋은 곳은 없기 때문이다.
한강의 흐름을 따라 하류로 내려가 보는 것도 좋다. 방화대교 야경은 정말 예쁘다.
러닝화를 선물 받고는 한동안 뛰었다. 자전거는 둘이 좋지만 뛰는 건 혼자라야 좋다. 혼자 뛰는 게 좋은 이유는 내가 멈추고 싶을 때 언제라도 멈출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달리기는 굉장한 고통을 수반한다. 옆에 반짝이는 강물을 끼고 달리더라도 그렇다. 볼에 부딪치는 신선한 밤공기, 말라 가는 풀 냄새를 들이켠다 해도 심폐를 극한으로 압박하는 달리기의 고통은 똑같다. 그래서 뛰는 건 혼자라도 언제나 두려웠는데 어느 날, ‘뛰고 말고는 내 결정’이라는 매우 단순하고 비범한 진리를 깨달은 뒤로는 더 이상 달리는 게 어렵지 않았다. 그 덕에 뛰기 위해 강변에 나가는 일이 드물어졌고, 무릎이 괜히 아프기 시작한 뒤로는 아예 달리기를 중단했다는 게 폐단이라면 폐단이랄까. 때마침 겨울이 오기도 했고.
내가 사는 도시, 서울에 한강이 흐른다. 강이 있어 도시가 삭막하지 않고, 삭막하지 않은 인생을 위해 사람들은 자청해 강변에 모인다. 모여서 웃고 먹고 떠들고 개똥을 누인다. 그리고 나는 강변에서 그녀와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를 타고 걷고 달리고 풀밭에 눕는다. 이 거대하고 아름다운 공원의 용도, 거룩한 명분이다. 오늘 퇴근하며 보니 마침내 강변에 또 호시절이 오고 있다. 무릎도 이제 다 나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