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짜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가수는 노래하지만 내 아버지는 갱시기가 싫다고 하셨다.
갱시기. ‘국갱(羹)자 갱식’이라고, 한자를 잘 아시는 아버지는 유식하게 풀이하셨지만, 더 유식한 나는 ‘다시갱(更)자 갱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미 조리한 밥이나 반찬을 한데 집어넣고 끓인, ‘다시 만든 음식’이니 그렇게 유추하는 게 타당하지 않나 싶다. 물론 갱시기의 유래를 두고 아버지와 다투지는 않았다. 아버지 주장이 옳다. 아버지와 나는 공통점이 있다. 둘 다 갱시기를 싫어한다는 것.
겨우내 쌓인 눈이 슬레이트 처마에 줄줄 쏟아지는 화창한 겨울날. 한나절 일을 하고 친구들과 골방에서 놀다 출출해진 미혼의 아버지가 대문을 들어선다. 이런 날의 점심은 예상이 된다. 아버지는 슬쩍 정지로 들어가 가마솥을 열어본다. 할매가 끓여놓은 아버지의 점심이 들어 있다. 따뜻한 물에 잠긴 양푼 속 벌건 갱시기. 짐작한 대로다. 역시나 실망한 아버지는 솥뚜껑을 도로 닫고 광으로 가 홍시감을 하나 꺼내거나 광주리의 찐고구마 하나를 집어 찬물과 함께 삼키고는 다시 집을 나선다. 굶을 망정 싫은 건 싫은 성미.
그만큼 아버지는 갱시기가 싫다고 하셨다. 들큼하고 시큼하고 매쿰하고 텁텁하기까지 했던 갱시기 맛. 아버지의 이런 식성 때문에 우리 집에선 만두와 더불어 갱시기를 지금도 끓여먹지 않는다.
어릴 때 나도 갱시기를 자주 먹었다. 아버지가 싫어할 망정 엄마는 갱시기를 자주 끓였다. 살림이 넉넉하고 아니고 간에 갱시기는 온 동네 집집마다 끓여대던 가장 만만한 겨울철 점심 메뉴였다. 엄동설한이라고 한가할 리 없는 아낙들이 많은 식구 삼시세끼 차려대기 어려울 때 갱시기만큼 만만한 것도 없기 때문이다.
갱시기는 김치와 식은 밥이 기본 재료다. 그래서 김치죽이라 해도 무방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이 부족하다.
내 기억에 가장 전형이라 할 만한 갱시기는 이런 것이다. 설이 지나고 봄은 아직 먼 겨울. 먹을 것이 궁해지는 시절의 끼니. 김장김치와 식은 밥, 지난 설에 남은 떡국떡과 콩나물을 넣고 푹푹 끓인 죽. 엄마는 여기에 수제비나 소면을 풀어 넣기도 하셨다.
나는 아버지를 닮아 갱시기 자체가 싫기도 했지만 가끔 씹히는 고구마가 너무 싫었다. 요즘이야 고구마밥을 별미로 먹는다지만 그때 우리 엄마는 아마도 쌀을 아끼기 위해 그랬을 거라 짐작한다. 우리는 끼니를 걱정할 만큼 가난한 집도 아니었는데 엄마는 왜 그토록 고구마밥을 자주 했던 걸까. 당신이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니면서.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물어봤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와 가끔씩 문득 갱시기가 생각난다. 어느새 나이가 들어서인가. 아니면 입맛이 변해서인가.
아마도 둘 다인지도 모르겠다. 김치냉장고에 김장김치가 없어지기 전에 끓여봐야 하는데.
갱시기를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경상도 내륙지방, 특히 경북 김천, 상주, 거창 등 낙동강 서쪽의 음식이라고 나온다. 먹을 것이 궁하던 시절, 남은 밥에 김치와 밀가루, 구황작물을 넣고 죽처럼 끓여 양을 불려서 먹을 요량으로 만든 음식이라는, 유래 자체가 슬픈 음식이라고 기록돼 있다.
아버지는 갱시기를 싫어하신 것만이 아니라 할매, 그러니까 당신의 엄마 또한 늘 못마땅하게 생각하셨다. 지나치게 간섭이 많고 무엇이든 못 본체를 못하시는 할매의 기질 때문이었다. 할매는 열네 살 때 할아버지에게 시집을 오셨다. 아들 하나 딸 셋을 두셨는데, 막내딸 그러니까 내게 막내고모가 젖먹이일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매는 서른도 못된 그때부터 시아버지 봉양에 아이들 키우며 머슴 부리고 농사일 건사하며 장장 60 몇 년을 수절과부로 살아야 했다.
살아온 삶이 그러했으니 사소한 무엇이나 그냥 넘어가지 못하는 할매 성품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장독에 뭐가 얼마나 남았는지, 어디서 받아야 할 삯이 얼마인지, 콩은 언제 심고 모는 언제 낼 것인지 집안일 돌아가는 무엇이든 알아야 하고 결정을 해야 했으니 대소사 간여와 주관은 할매의 당연한 권리이자 몫이었다. 그런데 자식이 장성하고 한 세대가 물러갔어도 그 성미를 여전히 누그러뜨리지 못하신 탓에 가장인 아버지와 할매는 사사건건 의견이 부딪쳤다.
모자 갈등. 나는 그런 집안 분위기가 싫었다. 할매의 지나친 잔소리와 간섭으로 보이는 참견도 그렇고, 그걸 또 잠자코 견디지 못하고 온몸으로 싫다 표현하는 아버지 모습도 못마땅했다.
할매가 돌아가시자 동네 사람들이 호상이라 했다. 아흔이 넘도록 사셨기 때문이라 했다. 나는 그 말에 분개했다.
호상이, 세상에 좋은 죽음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모든 죽음은 슬프고 아픈 것이다.
할매는 생전에 아버지와 화해하지 못했다. 할매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할매와의 갈등을 후회하는 듯했다. 어느 여름엔, 뒷밭에 비료를 내고 내려오는 길에 호두나무 그늘에 앉아 골짜기 건너 할매 무덤을 바라보다 별안간 자식 앞에서 통곡을 하시기도 했다. 그렇게 아등바등해봐야 결국엔 삼베에 쌓여 땅으로 가는 것을…. 당신의 불효를 거듭 자책하셨다. 나는 그런 아버지도 못마땅했다. 아버지가 늙었구나. 늙어 나약해졌구나. 이제와 아무 소용없는 감정 낭비, 불효자는 웁니다 식의 허망한 신파일 뿐이라는, 매몰찬 생각만 들었다.
삶은 늘 후회와 회한의 연속이다. 그때는 모른다.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아니, 그때 알았어도 소용이 없다. 누구에게나 그때는 그 감정을, 그 행동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니까. 그래서 누구나 그때는 그렇게 실수한다.
어쩔 수 없다. 시간이 지나기 전에는.
늙어가시는 아버지 얼굴에서 할매 얼굴이 보인다. 지난 명절, 차례상에 올릴 밤을 치는 아버지 모습에서 그걸 보았다. 형광등 불빛에 역광으로 비친 구부정한 뒷모습. 아버지 얼굴이 할매가 되어가시는구나. 간섭하고 참견하고 뭐 하나 못 본체 못하는 성미. 틀니를 벗어 헹구는 합죽한 옆얼굴까지 할매를 닮았다.
요즘 부쩍 전화를 자주 하시는데, 코로나 전염병이 위험하니 절대 밖에 돌아다니지 말라며, 전화를 할 때마다 10분도 넘게 하시는 잔소리에서 돌아가신 할매 목소리를 듣는다. 어제는 또 전화를 해서 애미는 이렇게 하고, 아이들은 이렇게 하고, 너는 이렇게 해라. 구체적인 지시사항을 조목조목 내리셨다. 들으며 가슴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전화를 끊고 나니 한편 안심이 되기도 했다. 내 아버지가 아직은 정정하시구나. 내게는 아직 기회가 남았구나 싶어서.
갱시기를 만들어 본다. 내 기억에 의존해서, 나만의 방법을 더해서 최신식으로 시도해 본다.
육수를 낸다. 굵은멸치 한 줌과 다시마, 표고버섯 가루를 넣고. 육수가 끓는 동안 김장김치를 꺼내 쫑쫑 썰어둔다. 그때 엄마는 김치를 너무 크게 썰었지. 그래서 나는 서걱서걱 씹히는 김치줄거리를 밥상에 전부 골라냈었다. 그러니 일단 김치는 잘게 썰자. 콩나물은 필수. 식감을 살리기 위해 미리 불려 놓은 떡국떡도 집어넣는다. 엄마는 미원이나 다시다를 넣었던 것 같지만, 나는 육수를 따로 냈으므로 조미료를 추가할 필요는 없다. 국물이 텁텁해질 것이므로 수제비는 말고 소면만 약간 넣어보기로 하자. 이제 그냥 약한 불에서 나무주걱으로 저어주면서 푹 끓이기만 하면 된다.
어떻게 해도 모양은 근사해지지 않는다. 개죽, 꿀꿀이죽이라 멸시받던 음식이니 아무리 꾸며도 눈으로 먹을 음식은 아니다. 드디어 국물이 슬슬 끓으면서 걸쭉한 거품이 툭툭 터진다. 시큼달큼한 갱시기 냄새가 거실에 풍긴다.
휴일 점심. 뜨거운 갱시기를 한 그릇씩 떠서 식탁에 올린다. 고명 삼아 통깨도 솔솔 뿌렸으나 어쩐지 어울리진 않는다. 아내와 아이들은 갱시기 한 그릇을 앞에 두고 무슨 거룩한 일에 도전하는 낯빛이다. 준비하는 동안 “라떼는 말이야~”로 시작하는, 오늘의 요리가 아빠에게 어떤 음식인지 그 의미를 구구절절 설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아내와 아이들은 모험하듯 시식을 해볼 참이고, 나는 다시금 어색하던 과거와 화해할 참이다.
내 갱시기는 아무래도 그 맛이 안 났다. 기억 속의 맛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싫은 것도 아니었다. 아내도 아이들도 기꺼이 잘 먹어 주었다. 나중에 아버지와 겸상해서 먹어봐야지 한다. 아버지는 여전히 싫다고 하실지. 그때는 내가 공연히 그랬구나 하실지.
오늘 휴일 오후. 아무 일 없이 모여 앉아 갱시기를 떠먹는, 감사한 시간이다.
*
비주얼은 그럴싸하게 만들어졌다. 맛도 괜찮았다. 그런데 그 맛이 안 났다.
애들이 안 먹을까 봐 고명 삼아 통깨도 솔솔 뿌려보았다. 어쩐지 어울리지 않는다. 아내는 김가루가 나았을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