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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페세 Jan 19. 2021

원수 잊은 짜장면

고작 그게 뭐라고 그 맛에 빠져서 나는 잠시  원수를 잊고 말았다.

눈에서 번쩍 번개가 쳤다.

연신 커다란 종소리가 머리에서 꽝꽝 울렸다.

정신이 없었다. 얻어터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아픈 것보다 창피했다.

5학년 교실.

우리 동네 형 누나들이 다 있는 교실에서 늘 칭찬만 받던 새터의 자랑이 처참하게 얻어맞고 있었다.


이름도 잊어버리지 않는다. 전땡땡 선생.

레슬링 선수처럼 목이 짧고 땅딸막한 체구. 눈이 쪽 찢어지고 넙데데한 얼굴의 전 선생.

왜 맞을까? 나는 왜 얻어터지고 있나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마구잡이로 한참을 얻어맞았다.


스무 대 쯤 얻어맞고 픽 쓰러진 다음에야 씩씩거리는 선생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는데, 그 말은 이랬다.

"이 새끼. 어디 5학년 복도에서 웃고 지랄이야."


그러니까 나는 선배 교실 복도에서 웃었다는 이유로 선생에게 맞은 것이다.

5학년 아이들에게 화를 내고 있는데, 복도에서 웬 놈이 웃은 것이다.

마침 화풀이 대상으로 얼마나 알맞았겠는가.

생각해보라, 그때 나는 고작 열한 살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꽃으로도 맞아선 안 될 어리고 연약한 나이였다.


그렇게 나는 선생에게 귓방망이를 실컷 얻어맞아 눈이 붓고 입술이 터져 엉망이 되었다.

"저 뒤에 가서 손 들고 꿇어앉아 있어, 새끼야."

백일장 지도교사이던 5학년 담임을 찾아 교실 앞에 갔다가 영문도 모르고 얻어터진 사건이었다.

퉁퉁 부은 얼굴을 수돗가에서 씻을 때. 친구들은 아무 말도 않고 슬쩍 쳐다보기만 했다.


지금이야 있을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땐 그랬다.

그렇게 선생들에게 영문도 모르고 매를 맞아도 아무도 찍소리 못했다.

집에 가서 부모에게 혼날까 봐 상처를 몰래 숨기고 들키면 넘어졌다며 거짓말을 해야 했다.


며칠 후, 전 선생. 지도교사를 따라 교육청 주최 백일장에 나갔고 나는 상을 탔다.

지금도 또렷이 기억나는 글 주제는 '모내기'였다.

앞에 앉은 아이가 '모내기는 참 즐거워요'라고 쓴 걸 훔쳐본 기억도 난다.

모내기가 즐거운가? 난 힘든데. 저 애는 모내기를 안 해봤나 보네.


읍내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진행된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스피커에서 나오는 군가를 들었다.

기괴한 장면이었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흘러나오는 '멸공의 횃불'이라니.

나는 부기가 남은 얼굴로 참가자들 틈에 줄 맞춰 서서 '포탄의 불바다를 무릎 쓰고서' 호명을 기다렸다.

내가 상을 타자 다른 학교 선생들한테 으스대던 선생 얼굴이 선명하다.


이런 씨발놈. 개새끼. 이를 갈며 턱을 갈기고 싶었으나 노려보는 걸로 그쳐야 했다. 나는 힘이 없었다.

당신이 잘해서 상을 탄 건가? 응? 이건 내가 한 거야. 내가 한 거라고. 당신이 뭘 도와줬어?

나는 속으로 울부짖었다.


시상이 끝나고 선생은 사람 좋게 웃으며 우리를 중국집으로 데려갔다.

태어나 처음 먹어본 짜장면.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시커멓고 맛있는 음식이라니.

짜장면 한 그릇. 그게 뭐라고. 이 촌뜨기는.. 그 맛이 너무도 황홀하여

헤헤 웃으며, 상 탄 것보다 짜장면 먹는 게 너무 좋아서..

그 순간 나는, 원수를 잠시 잊고 말았다.


원통하게도,

이것이 내 생애 첫 짜장면에 대한 웃픈 기억이다.



** 4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그 일을 잊지 못한다. 용서도 못하겠다. 재작년 추석엔가 누님이 우연히 그 선생 이야기를 하였다. 초등 동창모임에서 전 선생을 '은사'라며 만나러 간다 했다. 부산에 산다 했다. 내가 이 사연을 말하며 조금 흥분하자 누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듣던 노령의 아버지가 화를 벌컥 내며 욕을 하셨다. 그노모새끼. 나도 만일 열한 살 내 아들이 그렇게 맞으면 절대 용서하지 못할 것 같다. 그노모새끼. 쌍욕에 그치지 않고 배드민턴 채라도 들고 달려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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