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어느덧 동명의 그림노트에는 무성한 나무들로 가득 차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동명은 소중한 경험을 갖고 돌아오게 되었다.
카페로 달려가 사장에게 그 경험들과 이야기들을 들려주고 싶은 마음에 하루하루 설레는 마음으로 남은 종이의 빈 공간들을 채워나가고 있었다. 비슷한 그림이지만 전이라면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그림에는 이야기가 있었고 한 사람의 경험이 담겨있었다. 동명이 아닌 다른 사람이 보게 된다면 그 이야기를 알아볼 수 없겠지만 그 이야기를 전달할 자신이 있었다. 그것이 동명이 그림을 그리는 이유였다. 그림을 통해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 동명의 연필심은 빠른 속도로 줄고 있었다.
몇 날 밤이 지났다. 계속된 밤샘의 종지부를 찍고 오랜만에 개운한 기지개를 켜며 아침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세어 들어오는 햇빛은 동명의 닳아 없어질 것 같은 노트를 비추고 있었다.
평범했던 종이는 어느새 많은 것들을 품고 있는 종이가 되어 있었다.
상쾌한 아침을 여유롭게 즐길 시간 없이 빠르게 씻고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이 드디어 카페 사장님께 그림을 보여드리는 날이었다. 어떤 반응으로 맞이해 줄지 얼마나 감격하실지 기대가 부푼 마음을 가지고 집 문을 박차고 나갔다. 그리고 그때 까지가 상쾌한 아침의 마지막이었다.
‘잠시 문을 닫게 됐어요’ 카페 사장이 동명의 얼굴을 보고 나서 나온 첫마디였다.
동명은 오른쪽 옆구리에 끼어둔 노트를 사장한테 보여주지도 못한 채 고개를 떨구었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재정적인 문제였다. 좋은 이야기와 의미가 있어도 현실적인 부분이라는 차가운 벽이 사장을 가로막았다. 동명은 괴로웠다. 다 왔는데.. 다 완성했는데 참 별거 아닌 것 때문에 모든 게 망가진 기분이었다. 동명은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사장에게 인사도 하지 않은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 원망이었을까. 자책이었을까. 아니면 이해였을까.
아니 적어도 이해하지는 않았다. 꿈을 꾸는 사람은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꿈꾸는 것을 그만두는 사람이 무너지는 것일 뿐이다. 그렇다면 동명이 느끼는 감정은 원망이었을 것이다. 꿈을 포기한 사장의 모습에 대한 원망.
너덜너덜 집을 향해 걸어가는 동명은 집에 다 와갈 때쯤 노트를 카페에 두고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