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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수피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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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피 Oct 24. 2024

신이 계신 곳

#12

이슬람의 신비주의 계통인 수피파는 신과의 합일을 목표로 했다.

신과의 합일을 위해서 그들은 밤새워 기도를 드리거나 환각 상태를 유도하기도 했는데 그때 사용된 것이 바로 커피였다. 커피는 잠을 깨우는 각성제 역할과 금욕에 도움을 주는 음료로 활용되었다. 그들에게 커피는 신의 음료와도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그들에게 커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신과 연결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매개체였다. 


커피를 마시며 신과의 합일에 도달한 수피파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신을 어디서도 찾지 못했지만, 내 마음속을 들여다보니 그곳에 계셨다.’


자신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이 신과 합일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신은 전지전능한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

자신이 살면서 해야 하는 것. 더 자세히 들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야말로 인간이 살면서 찾고자 하는 것이다. 결국 그들이 말하는 신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었다.


수피파는 커피를 마시며 기도를 드린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를 깊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것을 찾아 행한다면 수피파는 자신이 믿는 그 ‘신’이라는 것에 도달하게 된다. 






서리는 찰나의 시간이 지나간 것처럼 눈을 번뜩 떴다.

그리고 혼미한 정신 속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그래.. 수피는 그렇게 만들어졌어”


주변은 고요했다. 주변에 많던 수피들은 모두 사라져 있었고 동명의 수피로 추정되는 수피는 서서히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칼디는 아련한 눈으로 서리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황은 난잡하고 어지러웠지만 분위기는 고요했다. 모든 의문에 물음표가 사라진 것처럼 서리와 칼디의 표정은 온화했다. 


“동명의 수피를 찾아냈구나”

칼디의 목소리에는 떨림이 있었다.


“어.. 모든 의문이 풀렸어. 사실 너는..”

서리 또한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지만 말을 끝 마치기도 전에 칼디가 말을 이었다.


“알아. 무슨 말하려는 건지”

서리를 이해한다는 듯이 눈을 지그시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서리는 당황했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무엇을 이해했다는 것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안다니.. 칼디 네가 내 수피라는 걸 알고 있었다는 거야?”

서리는 꾹 참고 있던 감정을 터뜨리듯 칼디에게 새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부터 알던 건 아니야. 네가 그것들을 깨달은 순간 나도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 너와 나는 결국 하나니까”


“믿어지지 않아. 동명과 함께 만들어낸 꿈의 이야기들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니..”

서리는 눈에 고이는 눈물을 흐르기 전에 닦아냈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사이 동명의 수피는 이미 사리진 후였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에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 서리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해야 하는 일을 아니, 하고 싶은 일을.


눈에 눈물이 다 마를 때쯤 서리는 쓰러져있던 다리를 일으켜 세우고 결의를 다진 듯 칼디에게 말했다.


“그래, 여긴 내가 만들어낸 이야기의 세계야. 나는 이세계 카페와 연결된 현세계 카페의 사장이었고 그곳에서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지.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어. 마냥 그들에게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에는 현실적인 부분이 가로막았지. 노래를 하던 아이도, 그림을 그리던 동명도 이곳의 커피를 마시며 꿈을 키웠는데 결국 나로 인해 가로막혔어. 근데 나의 수피 그러니까 칼디 네가 나를 다시 찾아와 깨워준 거야.”

칼디는 서리의 말이 끝나자 눈시울이 붉어지며 서리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귀에 작게 속삭였다.


“아냐, 네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와 만난 거야. 정말 고마워. 사실 너무 외롭고 무서웠거든. 네가 나를 잊진 않았을까. 내가 너의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들로 말이야.”


“고마워. 나를 믿고 꿈을 키운 다른 사람들의 수피들도 보살펴줘서. 이미 많은 수피들이 사라졌지만.. 나 다짐했어 다시 돌아가서 모두 되돌려 놓을 거야.”

서리는 전과는 다른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두 손을 꽉 쥐었다.

칼디는 아련하게 말을 붙였다.


“이제.. 이제 가는 거지?”


“응, 내 자리로 돌아가야지”


“항상 너의 곁에 있을게. 서리 너 스스로를 믿고 확신하며 살아”


“아.. 알았어. 나 이제 어쩌면 신이 계신 곳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서리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자신의 어깨를 잡고 눈물을 흘리던 칼디의 모습을 뒤로한 채 서서히 눈을 감았다.

서리의 앞은 어둠으로 매워지기 시작했고 그 어떤 것도 상상할 수 있었다. 간절히 바랐다. 


이제 현실세계로 돌아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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