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의 미완성이 줄 즐거움
예전에는 저는 제가 꽤나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두가 죄인'이라는 이야기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해서 싫어했습니다. 저는 '죄인'이 아니고 마음씨도 좋고 착한 아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진짜 감옥에 간 죄수들은 물론이거니와 또래의 다른 사람과도 함께 묶이는 것이 아주 기분이 나빴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커가면서 깨닫게 되었죠. 또 수년이 지난 지금, 저는 죽을 때까지 흠이 없는 완성된 한 인간이 될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삶이라는 것은 죽을 때까지 나라는 작품을, 그릇을 빚어나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은 구멍이 생겨서 급히 무언가를 덧대어야 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완전히 무언가가 잘못되어서 다 부수고 새로 만들어내야 할지도 모릅니다. 잘 되나 싶다가 금이 가는 날도, 예쁘기만 했던 색이 바래지는 날도 있어 계속해서 매만져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면 아찔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기대되기도 합니다.
어떠한 도달점이 있다고 해서 거기에 도달하고 끝나는 게임이 아니라는 점에서, 우리는 계속 무언가 배우고, 나아지고, 변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약 2년 전부터 발레를 시작했는데, 자세 하나하나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그리고 누군가 발레를 얼마나 했냐고 물어볼 때, 절대 2년이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어디선가 발레리나도 이 발레를 '죽을 때까지도 완벽하게 완성할 수 없는'것으로 대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점에서 오히려 기쁨을 느꼈습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노력할 수 있는 무언가를 취미로 얻은 것이니까요.
어른이 되면 더 좋은 사람이 될 줄 알았지만, 왠지 예전보다 속은 더 좁아진 것 같고 도저히 뭐가 나아졌는지 모르겠는 상황에서도 곰곰이 살펴보면 무언가 조그마한 성장이 있었습니다. 후퇴한 부분도 있지만, 인지하고 있으니 또 그것을 기르고 보완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나'라는 작품은 내가 죽을 때까지 미완성입니다. 그 말은 즉, 언제든지 우리는 더 나아지고 성장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창조'를 통해서 큰 기쁨을 얻는다는데, 이 놀랍고도 행복한 즐거움을 나 스스로를 통해서 느낄 수 있다니 그것 또한 멋지지 않나요?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게 바뀌기도 하는 세상인데 개인의 성장은 빨리 이뤄지지도 않고, 기분 좋게 눈에 보이게 일어나는 경우도 별로 없는 듯합니다. 수년, 또는 수십 년. 어쩔 때는 모든 인생의 대부분을 바쳐야 조금 더 나아지고, 놓아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도록, 작은 성장과 변화들도 찾아내어서 조금은 칭찬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내가 나아가는 방향을 잃지 않도록 다시금 떠오르게 해주는 것도 필요하고요.
제가 글을 쓰는 건, 저를 위해서이기도 하고 이렇게 삶이라는 여정에 함께 있는 사람들을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작은 성장들을 면밀히 살피고, 함께 축하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길.
그리고 우리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