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하고 따뜻했던 화려한 내복
엄마와 대화하던 중에, 엄마가 친구분이랑 같이 "그때는 왜 그렇게 내복만 입혔나 몰라~"라고 이야기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겨울 내복뿐만이 아니라 여름 내복도 사서 입혔다면서요. 여름 내복은 잘 생각나진 않지만, 내복을 많이 입었던 기억은 있습니다. 실내복이자, 잠옷이자, 겨울에는 보온을 위해 안에 껴 입기도 했었습니다. 디자인도 다양했는데 기본적인 핑크색에 다양한 캐릭터가 들어간 내복도 있었고, 내복에 붙은 그림들이 야광이어서 어두운 데 들어가면 빛나는 내복을 입었던 적도 있습니다. 야광 내복을 입고는 너무 좋아서 동생이랑 손으로 동그랗게 그 부분을 감싸서 보기도 하고, 장롱에 함께 들어가서 번쩍이는 모습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사실 저는 어렸을 때 추위를 정말 안 탓었는데, 엄마가 추위를 많이 타셔서 그런지 제가 아플까 봐 너무 걱정되셔서 그랬는지 내복이며 목도리며 꼼꼼하게 옷을 입혀주셔서 너무 답답했었습니다. 어느 날은 다른 집에 갔다가 난방이 너무 잘 되어 있어서 땀을 뻘뻘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긴 해도, 내복 자체는 은근히 편안하고, 안에 입는 거라 그런지 귀여운 캐릭터나 무늬를 아낌없이 넣어서 만들어서 그런지 상당히 좋아했었습니다. 이제는 공주님 잠옷만 입는 어른이 되어버렸지만 가끔은 그 사랑이 듬뿍 담겼던 화려한 내복이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내복하면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어렸을 때 아마 동생과 싸워서 그랬는지 무언가 잘못해서 엄마한테 잔뜩 혼나고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집 앞으로 쫓겨났었습니다. 빌라라서 뭐 너무 춥고 그런 건 아니었는데, 사실 그 빌라에는 저와 동갑인 남자애들이 두 명이나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운이 정말 안 좋게도 핑크색 내복을 입고 쫓겨났을 때 그중 한 명과 어색하게 마주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오래 있던 것도 아니었는데 정말 운이 안 좋았었죠. 너무 부끄러워서 사라지고 싶었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면 정말 다양한 종류의 내복을 입고 찍은 사진들이 많습니다. 싸울까 봐 그랬는지 똑같은 디자인으로 동생이랑 사이즈만 다르게 입고 있는 사진도 많았는데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동생과 똑같은 옷은 입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엄마가 시장에서 사 온 새로운 내복에 좋다고 동생과 깔깔거리고, 땀을 흘리면서도 겨울에는 안에 꼭 받쳐 입고, 또 저에게는 조금은 부끄러운 선물까지 해줬던 내복. 저의 어린 시절 내내 함께해 준 편안하고 즐거웠던 추억 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