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당 하나와 알베르게 하나가 전부인 듯한,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도 작고 아담한 ‘산 후안 데 오르테가(San Juan de Ortega)’에 짐을 풀었다. 길진 않았지만 가파른 산길과 거리감을 상실한 거짓 이정표 때문에 피로도가 다른 날에 비해 배였던 날. 오늘의 걷기 파업 선언을 하며 알베르게에 배낭을 던져두고 주린 배를 채우러 식당으로 향했다. 험했던 길에 쌓인 건 피로뿐 아니라 허기짐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런 날 어깨빵이라도 당하면 바로 상대방 머리채로 손이 날아가는, 예민도 극상의 상태였다.
그런데 나의 예민함을 더욱 자극하듯, 식당은 초리조 몇 조각에 퍼석퍼석 탄 식빵만을 내놓았다. 다양치 않은 메뉴야 그렇다 쳐도 있는 음식이라도 제대로 돼야 할 텐데, 모래를 씹는 듯한 식빵에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며 “이걸 음식이라고 내놔? 어?!”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터진 건 화가 아니라 웃음이었다. 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약속이라도 한 듯 식빵 한입에 모두 웃음이 터졌다. “하… 씨… 이게 뭐야… 크큭…”, “아놔… 크크크. 배고프고 짜증나… 크크크”, “아… X 나 맛없어… 크큭!”, “오… 신이시여 왜 우리에게 이런 시련을…” 왜 사람이 진짜 힘들면 미친다고 하지 않던가? 한번 터진 웃음은 옆 사람에게 전염되고 또 옆 사람에게, 그리고 또 옆으로 옮겨가며 끊임없는 웃음 무한궤도를 만들어냈다.
“하… 그만해… 배고픈데 웃으니까 더 배고프잖아… 크크크.” 극도의 굶주림에 웃음마저 힘없이 피식피식 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다 보면 이처럼 고난과 역경의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커다란 배낭을 메고 하루에 수십 킬로미터씩 걷는 것 자체만으로 충분한 고통을 받고 있지만 내 체력이 허락하는 정도만큼 걸으며, 경치를 즐기고, 숙소에서 쉬고, 마을을 구경하며, 새로 사귄 사람들과 담소도 나누는, 그야말로 허용 가능한 고통범위 안에서의 여행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 세태가 언짢은지 길은 때때로 이렇게 느슨해진 우리의 정신을 채찍질한다.
“어이 순례자 양반. 내가 우습나? 그렇다면 오늘은 시련 한 스푼을 추가해 주지!” 이처럼 길의 변덕에 예상치 못한 시련이 추가되면 멘붕이 오게 되는데, 길이 가진 패는 다양해서 어느 순간에 어떤 시련이 엄습할지 종잡을 수 없다. 하지만 모두들 허투루 이 길을 걷는 건 아닌지, 우리의 멘탈은 스페인의 뜨거운 태양에 무르익고 한발 한발 내딛는 걸음에 꾹꾹 눌려 어느새 단단해져 있었다. 그리고 이런 길의 역경에 다져진 우리는 어느새 힘들 때 웃을 수 있는 일류가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