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퍼스타 Jun 07. 2023

14. 매력

트레킹 일지 Chap.3 하늘을 향한 길, 안나푸르나 트레킹


 드디어 도착한 ABC(안나푸르나 베이스 캠프). ‘쏘롱 라(Thorung La)’, ‘푼 힐(Poon hill)’을 거쳐 세 번째이자 마지막 정상 목적지라 할 수 있는 ABC. 로잔, 시바, 마유 등 길에서 만났던 모두를 이곳에서 만났다.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다며 위로를 건네듯, 날씨는 쾌청하기 이를 데 없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산행의 진리와도 같은 날씨랄까? 배낭을 숙소에 내려놓고 밖에 나와 벤치에 앉으니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시원섭섭함이 들었다. 마차푸차레를 비롯한 안나푸르나의 거대한 봉우리들이 나를 중심으로 둘러싸고 있으니 마치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된 것만 같았다. 


 안나푸르나 라운드 코스를 위해 ‘베시사하르(Besisahar)’부터 시작한 길. 저 멀리 구름 사이로 흘끗흘끗 바라보던 봉우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접하니 참 많이도 걸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맑은 하늘과 산을 바라보며 지금까지의 산행을 곱씹는데 길에서 만난 친구들이 손짓했다. 며칠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늑한 롯지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 나눈 시간은 빠르게 정을 키웠고, 우리는 이 만남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푸르던 하늘은 어느새 색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슬쩍 기운 해의 빛에 마차푸차레 봉우리는 붉게 물들었다.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닮은 마차푸차레 봉우리가 붉게 물들자 마치 죽었던 물고기가 살아나 힘차게 꼬리를 흔들며 헤엄치는 듯했다. “밤이 됐으니 이만 자러 가 봅니다~”라며 거대한 히말라야의 바다로 잠수해 사라질 것만 같은 마차푸차레. 그렇게 ABC를 둘러싼 거대한 봉우리들이 하나둘 잠들기 시작하고 어느새 달빛이 날리며 마지막 밤이 시작됐다. 


 ABC에 있는 모두가 기다란 테이블에 늘어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몸을 녹였다. 그렇게 모두가 기다란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새삼 ‘어찌 이 각국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있을까?’라는 놀라움이 들었다. 세계평화나 기후 문제 논의를 위해 모인 각국의 정상들처럼 안나푸르나를 위해 모인 세계 각국의 사람들. 전 세계 사람들을 이렇게 외진 곳으로 모이게 할 수 있는 산의 매력과 힘에 대해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안나푸르나, 히말라야의 힘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일단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거대한 스케일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은 산에 들어서는 순간 절로 겸손하고도 한없이 작은 나의 존재를 상기시키는, 압도적인 카리스마가 있었으며, 그 어떤 충격에도 굳건히 버텨낼 것만 같은 단단함이 있었다. 이처럼 압도적인 존재 안에서 그 기세를 느끼며 온전히 긴장을 풀지는 못하나 한편으로는 보호받는 듯한 안도감도 있었다.  


 청아한 하늘과 티 없이 맑은 햇살, 오염되지 않은 물과 초록의 산림은 영원한 풍요를 이루는 듯 보이나, 밤이면 매섭게 떨어지는 기온과 봉우리 정상에서 신처럼 군림하며 버티고 있는 만년설은 또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은 히말라야의 삶을 암시하기도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해의 이동에 따라 히말라야 안의 수많은 존재는 빛을 달리하며 그 모습을 바꾼다. 정확히 정의하기 어려운 오묘한 자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산속의 존재들에 의해 “산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하나 싶다. 매번 매 순간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산이기에 감히 누가 안다고 할 수  없으며, 그렇기에 영원한 매력을 내뿜으며 전 세계의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한다. 나 역시 그런 산의 매력을 듬뿍 느끼며 ABC에서의 밤을 즐긴다.

이전 14화 13. 깨우침의 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