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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잔 Jun 28. 2024

고무줄 넘기 기계

여성으로 태어난 사람

타원형의 동그란 검은색 고무줄 안으로 글자들이 지나가고 있다. 고무줄은 위아래로 늘어날 때 진한 회색이 되었다가 원래 상태로 돌아오면 검은색이 되었다. 고무줄이 늘어날 때 글자들은 재빨리 원을 통과해야 한다. 고무줄이 원래 형태로 돌아오면 문이 닫힌 상태와 같다. 문이 닫히면 글자들이 끼어서 다칠 수도 있고 목이 베일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가 장난을 치다 문 사이에 끼었다. 편집자가 가보니 이미 '여'자로 붙어 더 이상 글자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한 명의 여성이 되어 있었다. 편집자는 상부에 보고하고 결재를 기다렸다. 사장은 '여'를 해고하고 나머지 글자들의 안전교육을 강화했다.

 는 외형적으로는 한 명의 여자라도 마음에 독립성이 각자대로 남아있어 서로를 이간질하기도 하고 미워했다. 지금의 붙어버린 '여'는 거대한 의미에 갇혔다. 고무줄 넘기 회사에서 쫓겨난 여성은 죽을 때까지 여성의 삶을 살아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늘 의견이 달라 지친 그들은 오랜 시간이 지나 한 가지 관점에 도달했다. '고무줄 넘기에만 집중했던 때가 낫다.' 담을 넘어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 고무줄 넘기 기계는 꺼져 있었다. 빨갛고 두꺼운 레버를 올려 기계를 가동했다. 덜컹! 소리에 고무줄이 줄을 늘였다 줄였다 하며 움직였다. '여'는 50m를 달린 후 고무줄 사이로 몸을 던졌다. 이번에는 넘어서기 위해서가 아니라 끼이기 위해서였다.


반토막이 날 줄 알았던 몸이 기대와 달리 손톱의 끝부분만 조금 잘렸다. 아침에 출근한 편집자가 여성을 발견하고 손가락에 밴드를 붙여주었다. 보건실로 옮겨졌다.

"외상은 없습니다만, 기억의 절반을 잃었습니다." 의사가 말했다.

"어쩌자고 기계에 몸을 끼운 겁니까?" 편집자가 말했다.

"지쳤어요. 의미 같은 것에. 살아보니, 별로였어요." ㅕ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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